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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헌집 수리(이사 준비)

by 농부김영란 2017. 4. 17.

 


세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밤늦게 학교에서 오기에

그동안 서귀포 시내 아파트에서 살았다.

귤밭으로는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동선이 사방팔방으로 나누어져서

그동안 내인생은 더욱더 정신이 분산된 시간들이었다.

네 곳으로 흩어진 귤밭에 아이들 등하교 픽업까지...매일 정신이 들락날락.

지난해 막내까지 대학교를 들어가고나자 나는 긴장이 풀리며

그동안의 피로가 쓰나미처럼 몰려와서 그 피로를 조금씩 풀어내느라고 나를 풀어 놓았다.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픈 안식년은 아니었지만

남편이 멘티와 함께 일을 하여서 나는 귤밭일에서 조금 벗어날 수가 있었다.

오랫동안 온 몸에 덕지덕지 붙은 피로에 쩔어있던 내 모습이

조금씩 생기가 돌아왔다.


나를 들여다 보고

내 삶의 분기점을 다시 정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그동안은 주어진 삶에 나를 맞추며 달려 왔고

이제부터는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아 보자로~~~

그렇게 방향을 잡고 고민하고, 모색하고, 꿈 꾼다.

아직은 세 아이가 자립하지 못한 상태라서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학업을 끝내고 취업까지)

부모로서의 임무를 다해야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거의 경제적인 부분이라서

육아를 돌보던 시간을 내게 투자 하기로 마음 먹는다.

아이가 생기고부터 얼마나 오랫동안 꿈꾸던 나만의 시간.^^

그런데 그 시간이 20년이 넘고보니 나를 찾는 방법도 모호해지고

내가 누군가~하는 생경한 물음마저 든다.

매순간 살기는 열심히 살았는데 무엇을 해 놓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삶 전체가 달리기만 해서 천천히 걷는 법도 잊은 듯.

이제 온전히는 아니지만(그래도 아이들에게 내 시선이 거의 가 있지만)

나를 찾아서 나에게 집중해 보려고 노력해 봐야겠다.


나의 헌집 인생은 신혼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졌다.

옥탑방에서 시작한 신혼을 둘째 낳을 때까지 살았는데

둘째 낳자마자 한달도 안 되서 지붕에서 비가 주룩주룩 새서

내가 누울 자리마저도 비가 새서 이사를 하였던 집이

20년이 훨씬 지난 재건축을 앞둔 작은 빌라.

천장에 쥐들이 달리기를 하다가  천장을 뚫고 뛰어 내리기까지 하는 낡은 집이었다. 

보일러실에서 끈끈이 쥐잡이를 두었는데 하룻밤에 쥐가 5마리나 잡힌 적도 있었다.

다행이 이듬해 재건축이 되어서 새 빌라에 입주해서 3년을 살았는데

어인 일인지 나는 새집에서 숨이 막혔다.

남편은 새집에 사니까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흡족해 하였는데

나는 숨이 막히고 답답해서 뛰쳐 나가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옥탑방도 지붕 마당이 있었고,

 이사한 낡은 빌라도 작은 마당이 붙은 1층이었는데

 넓고 새집이었지만 마당없는 빌라는 내게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30년이 된 낡은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해서

온갖 수리를 다하고 전원생활 폼을 내며 살아보려는데

제주도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했다.

본사에서 명퇴바람이 불던터라 길어야 3년이나 버틸까~ 하며

그사이 제주도살이나 한번 해보자며  내려왔던 제주도에서 나는13년을 살았다.

마흔 넷 나이에 와서 쉰일곱의 나이가 되었다.

그때만해도 내가 제주도에서 귤농부로 이리 오래 살게 될 줄 몰랐다.


지금은 내 운명의 신이 나를 등 떠밀어서 제주도로 와서 농부의 삶으로 이끌고,

 나를 자연속에서 살 수 있도록  큰배려를 해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2-3년에 한번씩 이사를 하던 기동력과 추진력으로

나는 오자마자 제주도가 내가 꿈에 그리던 장소라며

귤밭 하나를 덜컥 사서 곧바로 농부의 삶에 뛰어 들었다.

그것도 유기농으로  바로 돌진~~^^



혹자는 내가 선견지명이라도 있어서 일찌기 제주도에 터를 잡아서

자리 잡았다고 칭찬(^^)을 하나

나는 너무나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사람이라서 치밀한 계산을 하지 못한다.

오직 본능과 감각이 이끄는대로....

자연이 좋아~. 자연속에서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아 볼거야~하는 본능이 이끄는대로...

나는 천성적으로 식물과 친하여 좋아하며 잘 길러냈다.

온갖 꽃을 다 키워보며...나는 자연스럽게 농부의 삶으로 이끌려 왔다.

지금도 간간히 놀라곤 하는데 내게로 오는 식물 아이들이 너무 잘 자라서

이 무슨 조화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특별히 영양을 주지 않는데도 쑥쑥쑥~너무 잘 자란다.

단지 나는 사랑을 넘치게 주기는 하는데 사랑이 그렇게 큰 역활을 하는가?

아이 셋을 농부로 먹여 살려야 하는 생존의 문제에 부딪혔어도

오직 유기농 귤농부로 타협없이 달려 올 수 있었던 힘도

내 안의 식물 친화력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남편이 제주도로 발령 받은 해가 2004년 4월,우리 가족은 5월에 모두 이사 왔다.

그리고 3년 후 남편이 퇴직하고(2007년 6월) 10개월 쯤 다른 회사로 갔다가

 2008년부터는 온전한 전업농이 되었다. 

서울에서 내려 올 때는 사택 아파트로 왔는데 퇴직하면서 근처 아파트로 이사 나왔었다.

아이들 셋이 학교가 흩어져 있어서 중간 지점 아파트에 자리 잡았다.

그러니까 2007년에 퇴직을 하면서 근처 아파트로 이사 했는데 그사이 10년이 흘렀다.

밭을 장만 하느라고 집을 사지 않고 전세+연세로 살았는데

이리 오래 살 줄 알았으면 집을 샀더라면 그사이 연세도 안나가고 집값도 올랐을텐데

이렇게 오래 살 줄은 몰랐었다. 이제 와서 후회를 하지만

누가 미래를 다 알 수 있겠는가? 그나마 서울집 팔아서 땅이라도 샀기에

내 땅에서 농사 지을 수가 있어서 유기농사를 지속적으로 해 올 수가 있었다.


저지르기 잘 하는 나는(10년전만 해도 행동력이 있었음)

제주도 이사 온 이듬해 전세금으로 땅을 덜컥 사버렸다.

"나 이제 서울 안 돌아가~ "하는 맘이 들어서였고

남편이 멀지않아 명퇴할 것을 예감 해서 였는데

명퇴 후 나는 자연에서 살고파서였다.

그때만해도 농사로 세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퇴직 후 과수원에다가 유기농 쌈밥집을 하거나

토종닭을 풀어 놓고 유기농 야채를 직접 따다가 먹는 한방 삼계탕을 할까~

이런 궁리를 하며 귤밭을 샀었다.^^

귤나무 아래 테이블을 하나씩 두고서...이런 꿈을 꾸며 첫번째 귤밭을 샀었다.

역시 예감대로 3년 후 남편은 명퇴를 당하였

나는 그사이 농부 연습을 3년 하고나니...

일단 농부로 살아보자고 내친 걸음을 내달렸다.

아이들이 중3, 중1,초4 학년이라 내가 식당을 벌리면 아이들과의 시간을 함께 하는게 어려웠기에

부족한 수입은 까 먹더라도 일단 아이들이 대학 갈때까지는 농부로 살기로 결심 했었다.

그 후의 일은 그 후에 생각 하자~~


남편이 명퇴 후 처음 산 귤밭 하나로는 도저히 안되서 두번째 귤밭을 구입했다.

신효에 있는 믿음밭.(2009년 1월에 구입)

그곳에는 다 쓰러져 가는 작은 돌집 관리사와 귤창고가 하나 있었다.

먼저 돌집 관리사를 수리 했다.방2평 정도,작은 연탄부엌1평 광2평정도를 벽을 헐고

원룸형으로 화장실 하나와 작은 부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물탱크가 있던 부분도 헐고 다용도실 창고로 만들었다.

마침 그때의 기록이 남아 있어서 다시 반추해 보는데 도움이 되었다.(기록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더 실감)

그 다음에는 귤창고를 아궁이 방으로 만들었고

그 후 뒷마당쪽으로 다락방 있는 부엌을...그리고 참다래를 올리려고 설치했던

나무 기둥위에 지붕을 얹어서 비 가리는 야외 작업장으로...

그러다가 이번에 그 야외 작업장을 실내 작업장으로 다시 개조...

이런 식으로 이어 붙이며 수리를 하다가보니...나중에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났다.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배우는 꼴이 되었다.

헌집 수리는 돈 먹는 하마처럼 끊임없이 돈이 들어 갔다.

헌집 전원 생활을 하려면 거의 집수리공 실력을 갖추어야 할 것 같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보자고 궁리했던 것이

오히려 덧대고 이어 붙이고...하면서 조잡한 조형물에

여기저기 비가 새는 총체적인 난국에 직면하게 되어서

이번에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 갔다.


실은 내가 꿈밭에 집을 지어서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되는 꿈을 꾸고 있어서

그리 할려고 온갖 궁리를 하다가 꿈밭(희망밭과 합친)에 집 신축 허가까지 내어 놓았는데

경제적인 문제에 봉착해서 수십번을 생각하다가

한발 후퇴하여 믿음밭 헌집으로 일단 입주 하기로 정했다.


일보 후퇴, 관망...현재 내 여건으로나 시국으로봐서

헌집 수리해서 이사 하는게 최선의 방책이어서

믿음밭 쉼터를 수리 하느라 이 봄이 어찌 가는지 모르게 분주하다.

둥지를 한번 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내 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무리가 없고, 꿈에 접근하기 쉬운 방법이기에

나는 그동안 내가 터를 닦아 놓았던 믿음밭에서 당분간 내 꿈을  꾸고 매만지려고 한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반디농장 힐링캠프를 믿음밭에서 시작해 보려고 한다.


힐링캠프 이야기는 다음편에...^^





돌벽은 그대로 살리고 지붕 갈고

창 갈고 내부 원룸형으로 수리



외부는 이렇게...




뒷마당에 키위를 올리려고 만들었던 나무파고라(회원의 날 행사 중)




겨울에 눈 비 올때 택배 작업 하려고 나무 파고라 위에 지붕 씌움








늘 바빠서 이런 식으로 만들어 놓고 관리를 잘 못함






지난해는 그 무더위에(8월) 갑자기 전의가 불 타서

이렇게 돌담까지 쌓았다가...





이사를 하려고 보니 이 공간이 너무 어설퍼~

실내도 아니고 실외도 아닌...

그래서 다시 벽을 치기로....














이건 내가 못하는 영역이라 외주로...













간이부엌으로 쓰던 관리사와 귤창고 사이 골목길을 막아서 화장실로...





















이 오래된 돌벽은 수십년째 외부에 노출 되어서

이끼 끼고 먼지 투성이...

잉여노동력(^^) 큰 언니를 또 불러서 표 안나고 궂은 일 하게 함(^^)

이런 일은 시간 많이 걸리고 일 한 표도 안나는 일이었다.


사람 손이 보배다,새 돌벽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 공간이 탄생.

그사이 모아놓은 단지들이 제법 많아서

나는 또...내가 참 못 말리는 인간이라며 한탄(^^) 했다.

언제 단지가 또 이렇게 모였지?







외부로 노출되어 이렇게 때 묻고 색 바랜 나무문을 빼빠로 밀고 하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이 일 하면서 나는 또 나를 책망했다.

왜? 너는 쉽게 살지 못하느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고...

(무엇이든 공 들이고, 돈을 발라야 폼이 나네~^^)

부엌 고방







앞 현관문도 다시 만들고...


그래도 그사이 뜰도 많이 만들어 두었고

정을 쏟고 익숙해진 헌 옷 같은 곳이라서

바로 적응 할 것 같다.

세월의 때가 묻고...나름 운치 있는,

비밀의 화원 같고, 심산 유곡 같은 곳.


5월부터 이제 본격적으로 전원생활에 들어 가려고 한다.

반디농장 힐링 캠프이다.















좌청룡 우백호 우리집 지킴이 청복이와 홍복이가

주인만 사랑하여 누가 근처만 얼씬 해도 왕왕 짖는다.(밥 값 하는거지^^)

우리 홍복이는 머리가 영리한 것 같다.

공사 할때마다 짖어서  귤나무에다 매어두곤 했는데

이 철사로 꽁꽁 동여 매 둔 끈을 입으로 풀고 탈출 하기를 몇번.

노끈으로 했더니 몇번 풀어서 철사가 든 전선줄로 배배 꼬아서 묶은 줄도 풀고 탈주하는 빠삐용 홍복이...

이 아이들 때문에라도 서둘러서 이사해야만 했다.

요즘 우리집 제일 윗 상전이 이 아이들이다.











그 사이 열흘간의 전정과 파쇄까지...

정신없이 봄날이 가고 있는데

사방에서 꽃들이 보아 달라고 야단법석이다.

꽃자랑질 할 시간도 잘 안나네~~ㅎ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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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리 진행 중...^^

(칠하기 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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