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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여행3(통영)

by 농부김영란 2017. 3. 3.


수원에서  전주까지 기차, 전주에서 순천까지 기차로 갔으나

통영으로 가려니 통영은 기차가 없어서 버스로 이동 하였다.

차없는 여행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불편 하였으나

걸으면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처음 계획은 전주, 순천, 통영,(여수 갈까 말까),부산, 포항(울산 경유), 경주...

그러다가 정동진까지도 내쳐 가볼 수도...하면서...

일주일이 될 수도 있고...내키면 열흘이 될 수도...그런 심정으로 떠났어서 배낭이 제법 무거웠다.

나는 거의 껴 입었지만 예지는 봄맞이 차림으로

샬랄라~하게 여행하고 싶다고 밝은 티셔츠에 치마를 입고 여행을 하며

여행지에서 무엇을 보는가보다도 여행지에서 이쁘게  사진을 찍는

요즘 아이들의 코스프레 여행이 주목적인 것 같았다.

그래서 옷을 여러벌 넣은 배낭이 12-13 kg은 족히 되어서 나중에는 배낭이 큰 짐으로 느껴졌다.

20대와 50대는 나이 차이에서 오는 세대차이도 있지만

다른 문화의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빨리 일어나서 하나라도 더보자는 생각이었으나

예지는 느지막히 일어나서 한 두개 보아도 되고 안 보아도 되고...

그러다가보니 대체로 오전은 이동하면서 다 보내고

순천에서 통영에  도착한 것은 오후 두시를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마침 지인이 전날 통영을 여행하시면서 맛집과 숙소를 소개해 주셔서

동피랑 앞 통영맛집에서 멍게 비빔밥과 굴밥을 조금 늦은 점심으로 먹었다.

나는 굴밥도 멍게 비빔밥도 좋고, 새로운 것, 맛있는 것 먹는데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는데 예지는 멍게도 굴도, 생선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엄마따라 먹어도 먹은것 같지 않다고 볼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자기가 백보 양보해서 엄마 먹자는대로 먹어주었는데

다 먹고나서 "별로네~ ,"그러면서 김 빠진 소리를 해댄다며 드디어 화내기 시작했다.

"내가 기대했던 그 맛이 아니란거지, 너한테 그런게 아니다" 해도

엄마가 큰이모 닮아 간다며 화를 내었다.


큰이모 닮아 간다고? 화들짝 놀랐다.

나의 큰언니는 겨울에 귤 따러 올때마다 서귀포 맛집이란 맛집은 다 데려가도

음식을 앞에 두고 맘에 안든다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데다가

눈치없이 큰소리로 맛없다는 소리까지 하니

함께 밥먹을 기분이 나지 않고 짜증이 나곤 했었다.

큰언니 입에 맞는 집은 열집에 한집 정도도 안되어서  까탈스런 투정이 불편했었다.

 "세상에 제일 밥맛 없는 인간들이

음식 앞에 두고 타박하는 인간들이여~

자기 입이 까다로운게 뭐 대단한 족속이나 되는 줄 알지만

본능에 충실해서 음식 타박이나 하는 소인배란 말이여~" 하며

내가 대놓고 성토하던 큰언니의 행태(^^)를 내가 닮았다고 하네~^^

나도 모르게 닮고 싶지 않았던 그 부분을 답습하고 있는거란 생각에 놀랐다.


싫다고 도리질 하면서 나도 모르게 전염 된 거...

부정적인 견해.부정적인 말, 부정적인 행동...

싫은 것은 싫은 거지...하며 나를 합리화 해봐도

나도 모르게 내 본위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예지가 일깨워 주었다.

그래, 큰언니가 그럴때 참 짜증 나더라~는 생각이 미치자

나는 예지가 내게 화내는 것을 수긍하고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하여 여행 기분을 잡칠뻔 한 것을 면할 수 있었다.


타인으로 하여 내 모습을 보는 것....

통영에서 깨달은 가장 큰 수확은 예지덕분에 나를 바라보게 된 것이었다.

앞으로 성질 까다롭고, 입맛 까탈스런 노인네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알고 조심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영에서는 주말이 되어서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동피랑을 올랐는데

떠밀려가고 사진도 제대로 찍기 어려웠다.

2011년도에 왔을때는 달동네마을의 전경이 그대로 살아 있고

그림도 예술스러웠는데 지금은 온통 카페촌이 되었는데다가

벽화그림도 별로 감흥이 오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동피랑을 내려와서 근처의 이순신 공원을 가려는데

큰배낭을 메고 걷기에는 좀 힘들것 같아서 택시를 불러도 차가 밀려서

오지를 못해서 일찍 숙소로 가기로 하였다.

중앙시장 활어 시장에도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어디서 이렇게들 많이 왔을까~ 싶었다.

















숙소는 지인이 일러 준

인간극장에서 소개된 허상국씨네 "안티워프"로 갔다.

버스를 한시간이나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결국은 택시를 탔는데

통영시내를 꽤 벗어나서 한적한 때묻지 않은 어촌 마을이었다.

인간극장에 "상국씨가 풍화리로 간 까닭은?" 제목으로 소개된 집이었는데

상국씨 인상은 tv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숙소는 복잡한 문명 생활을 벗어나서 호젓하게 쉬기에 맞는 분위기.

아침에 일어나서 카페에서 본 바다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왔고

상국씨 커피도 향기로와서 통영에서 맞은 아침이 충만해졌다.






저녁에 숙소에 와서 끓여 먹은 오징어먹물라면이

그동안 먹은 다른 음식보다 더 맛있었다.ㅎㅎ...

맛에 감각이 남다른 예지가 오징어와 먹물을 따로 분리하고

라면도 분리해서 끓인 오징어 먹물라면

충무김밥도 곁들이니 성찬이 되었다.


















통영 풍화리의 "안티워프" 숙소

카페에서의 전망과 커피가 일품이었다.




커피와 핸드메이드쿠키로 아침을 먹고 느지막히

미륵산에서 한려수도를 내려다 보기위해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한시간에 1000명씩 탄다는데 한시간을 기다려서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우리는 올라 갈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때는 미래사 쪽으로 걸어내려와서 편백 숲에서도 쉬어보자고 했다.

케이블카 타고 정상에서 내려다 본 한려수도도 장관이었지만

내려 오는 길 예지와 걸은 숲길에서 나눈 대화들이 좋았다.

자기 주장이 강한 예지와는 늘 대화가 핀트가 안 맞아서 투닥거리기 일쑤였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특히나 마지막날 통영에서 숲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우리는 접점이 많이 가까와졌다. 












미륵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통영 한려수도









위대한 불멸의 이순신 장군님을 다시 한번 기려 보면서...












미륵산 정상에서 어젯밤 먹다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와서

점심을 먹었는데 꿀맛이었다.

날씨는 따뜻하였고 바람까지도 잠잠하여

복많은 예지는 날씨도 도와준다며 추켜 세우니

예지도 무거운 배낭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여행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전날  중앙시장 활어시장을 통과하면서 싱싱활어를 보니

나는 식탐이 요동쳐서  회까지 한접시 사고 말았다.

그런데 오징어라면을 먹고나니 배가 불러서

더이상 먹을 수가 없어서 회를 사온 것을 후회했는데

예지가 엄마의 식탐을 비난하며 성토하는데

내성질이 들먹거리는 것을 간신히 참았었다.

엄마가 모처럼 여행 와서 먹고 싶은 것을 먹겠다는데

뭘 그리 비난하냐며 또 우리는 투닥거릴 뻔 했으나

이 귀한 여행을 성질 못이겨서 싸우고 마감하면 말짱 도루묵이 될 터라

간신히 참았는데....역시...참을인자...가 진리다.^^

어젯밤 참지 못하고 내전이 일어났으면...여행기분 다 잡치고

우리는 울그락불그락 씩씩대며 서로를 비난하는 관계가 됐을 것을

성질을 참았더니 다음날의 평화와 행복을 만끽 할 수 있었다.

예지가  나를 성토하자 나는 배가 터지는데도 회를 버릴까봐서  먹었는데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긴 것을 싸가지고 산에 올라서 남은 회를 먹는데 어찌나 맛있는지...

괜히 어제 저녁에 꾸역꾸역 회를 밀어 넣은게 후회 되었다.

아쉬운 듯, 부족한 듯, 먹은 점심이 꿀맛인 것은

넘쳐서, 배가 불러서, 투정을 부리는 것이란 것을 또 깨달았다.






내려 오는 길은 미래사로 걸어 내려왔다.









예지도 엄마와의 여행을 잘 마무리하려고 애 쓰는 것을 느꼈다.

자기배낭이 10kg이 넘는데도 내 배낭을 추켜 주고 밀어주면서

엄마가 힘들까봐 배려 해주는게 "짜식~ 철 들어 가는군~" 싶었다.

 이 나이가 되니 여행지에서 무엇을 보느냐가 관심사가 아니라

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힐링이 필요한거였다.


힐링은 마음을 위로 받는 것.

살면서 그동안 첩첩이 쌓인 피로를 풀어 내기.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 누적이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가족간에도 수없이 불협화음을 조율하고, 서로 맞추고, 배려하고...

그러다가 서로가 성질대로 하면 관계가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내 말에 한마디도 안 지고 조목조목 따지는 예지와 그동안도 많이 투닥거리면서

나는 신이 나보다 더한 인간을 자식으로 보내서 내모습을 깨닫게 한다며 한탄하곤 했었다.

독립심이 강하고 자아주장이 강한 예지를 자식으로 만나서

나는 내가 부모님께 했던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다.

자식이 부모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예지야~삶은 등에 멘 무거운 배낭 같은거란다.

내 무게는 내가 감당하고 가야 하는거야.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단다.

힘들다고 미리 포기 하지도 말고

포기하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있는게 인생이야.

뚜벅뚜벅 한걸음씩 가다보면 꿈을 이룰 수가 있어.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려오다보니 어느새 미래사에 다다랐다.




















작지만 아담하고 아름다운 미래사.

불자는 아니지만 잠깐 경배를 하고

들려오는 경건한 불경소리가 마음까지 씻어 주었다.

작은 돌탑 하나도 남겨 놓고 왔다.^^

늘 바라기만 하는 기도...

올해는 기도 많이 해야 하는 해이다.



미래사에서 버스 타는 길까지 가려니까 산등성이를 다시 올라가야 해서

무거운 배낭을 멘 예지가 한숨을 쉬어서 카카오택시를 불러보니

아예 올 수없는 거리라고 뜬다.

길은 하나 뿐.

힘들어도 걸어서 내려가야 하는 길 뿐.

여행4일째의 여독도 겹쳐서 배낭 멘 어깨가 뻐근했지만

어쩌겠나~ 다시 꼭대기까지 간다해도 이 길 뿐인 것을.

미리   한 숨 쉬면서 걸어 올라 갔는데

얼마 안가니 다시 하산길로 길이 이어지고 큰 길이 나왔다.

그리고 평지길이 이어졌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다시 예지에게 일러준다.

"이런 길이 나올 줄 몰랐지?

인생도 이렇단다.오르막길만 있는게 아니야~

힘든 길을 올라오고나면 내려가는 길도 있고

평지도 나오기도 하거든.그러니 미리 겁먹고 포기 하지 말아라~"

길이 적절하게 나와줘서 나는 또 엄마의 잔소리(^^)를 곁들였다.













용화사를 지나서 드디어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에 도착하니 4시가 다 되었다.

지인이 추천해 준 분소식당에서 도다리쑥국이랑 쫄복탕을 먹어야 하는데

4시까지라 했는데 시간이 벌써 4시네.

입에 모든 정기가 모여있는 나는 먹는 것과 수다 떠는 것이 낙인지라

쫄복을 못 먹게 될까봐 마음이 급했다.

허겁지겁 찾아간 분소식당은 문을 닫고 있어서

가까운 만성식당을 소개해줘서 쫄복지리를 먹었다.

 시원한 복지리를 원해서 서귀포 복집에 가서 먹으면

식초국인지 아예 식초를 섞어서 나와서 복국의 시원한 맛을 못 느꼈는데

오랫만에 시원한, 내가 원하는 맛의 쫄복지리를 먹었다.

쫄복은 작은 복어새끼라 한다.

배고픈 탓이 컸지만 통영에서 마지막으로 먹은 쫄복지리와

예지와 걸으면서 나눈 삶의 이야기는 내 여행에 행복한 마침표를 찍게 해주었다.

 









일상을 벗어나서 여행을 계획하기는 늘 쉽지 않았다.

 할 일이 많은데...하면서

여행이란 내게 사치라는 생각까지도 있었다.

이번에는 수술하러 떠났다가 수술을 미루게 되어 떠난 여행인데

내 삶의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느냐~

그러니 여행 할 수 있었고,

여행을 통해서 나를 만나고 힐링도 했다.

나 없으면 일이 안돌아 갈 것같은 강박증에서 벗어나서

꽉 움켜쥐고 있던 것을 느슨하게 놓고 마음도 풀어 헤치고

시선도 멀리 바라 보는 것.

집을 떠나서 바라보니 그런 여유가 생겼다.


떠나서 좋아라 하고 있는데

남편은 자꾸 언제 오느냐고 카톡을 보낸다.

"나 없으니 불편해서 그러겠지~

늘 당연히 다 해줘야 한다고 생각 했던 것을 스스로 해내면서

빈자리를 느껴도 봐야 해.

평생, 남편 뒷바라지 자식 뒷바라지만 하는게 당연 하다고 생각지 마시기를..."







나 없어도 일이 되게 만들게 된 세월이 얼마만이던가~~~(남편 스스로 하기)

병원에 입원해야만 휴식이 찾아오는 삶에서

스스로 휴식을 찾게 된 계기가 되었다.

3박4일의 여행은 내게 과분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내게 주는 선물이기도 했다.

통영에서 수원행 직행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녹초가 되어서 배낭에 기대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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