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고 동창 박찬례는 지금 히말라야에 가 있다.
2014년 경기도 줌마탐험대에 발탁되어
히말라야를 다녀 온 후 올해 또 다시 히말라야에 갔다.
박찬례를 조금만 아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만 보고 "멋있다` 부럽다~"하지만
그녀의 삶을 속속들이 아는 난 "존경한다,인간승리다.거인이다"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우리집보다 2년전 명퇴를 하였다.
남편이 명퇴하여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 우리들 인생이었지만
명퇴금으로 초기 투자를 잘못하여 그녀의 삶은 경제적으로 지하2층으로 추락 했다.
남편이 팬션을 하고 싶다하여 강원도에 장소 물색을 하였는데
처음에 잘못 땅을 사서 명퇴금은 개발할 수 없는 땅에 다 묶여 버리고
그녀가 평생 장만한 아파트 한채가 고스란히 팬션을 장만하고 유지 하는데 다 들어가 버렸다.
지금은 결과적으로 편션도 처분했지만 들어간 돈의 절반도 채 못 건지고 손을 든 셈이 되어 버렸다.
집을 팔고 전세로 가고 다시 월세로 가고...
그사이 아이들이 둘이나 대학생이 었었다.
큰 아이가 5살때부터 삼성생명에 입사해서 20년이 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녀 남편이 명퇴를 하여 팬션을 하는 동안 그녀가 경제적인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했다.
주말이면 남편이 하고 있는 강원도 팬션으로 운전하고 가는 도중 그녀는 늘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그녀가 졸음을 쫒기 위해서 전화를 하고 있다고 느껴서
그녀 전화는 그녀가 끊을때까지 받았었다.
피곤하여 목소리가 갈라지고 쇳소리가 나는 것을 감지하며
동병상련의 아픔을 진하게 느꼈었기 때문이다.
남자 혼자서 한번도 안해본 서비스 직업인 팬션을 성공적으로 해내기가 쉬운가?
한철 반짝 성수기로는 팬션유지비 나오기도 쉽지 않았을 터.
지금은 팬션도 헐값에 넘겨 버리고 집만 날리고
뼈아픈 교훈만 남게 되었다.
그 암울한 터널을 지나 오면서 그녀는 극심한 피로를 감당 못하여 급성 간염에도 걸리고,
병든 닭처럼 계속 졸려서 운전하다가 접촉 사고를 내기도 하고,
건강도 한계에 달하게 되었다 한다.
그녀는 살기 위해, 그때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 했다 한다.
몸도 마음도 극도의 피로에 쩔어서 업무능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삶의 의욕도 바닥으로 추락하게 되었을 때...
살고자 찾게 된 산.
시간만 나면 가까운 산을 처음에는 간신히 기어 올랐다 한다.
매일, 매주 밥 먹듯이 산을 올랐더니 조금씩 힘이 생기고 기운이 돋더란다.
2년 쯤 그렇게 하고나니...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더란다.
삶이 즐거워지기 시작 하더란다.
그 즈음에 그녀는 내게 전화해서 "난 지금 행복해~"라고 말했다.
나더러도 산에 가라고 마구 권유했다.
산은 몸도 치료하고 미음도 치유해 주더란다.
그녀는 경제적으로는 바닥으로 추락하는 경험을 했지만
그사이 두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아이는 중소 회사에 취직을 했고
큰 아이는 몇년 준비한 공무원 시험에 얼마전 합격했다.
에베레스트를 가기 전 주에 최종 합격 발표가 있어서
그녀는 하루종일 눈물이 주체 할 수 없이 흘렀다 했다.
나도 내 딸이 합격 한 듯 뭉클하여 진정이 안 되었다.
그녀 남편은 팬션을 접고 다시 회사에 취직을 했다.
예전만큼 월급을 받진 못해도 이젠 모든 것이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한다.
나는 그녀와 여고동창의 인연이지만 아이들 일로 그녀의 집을 들락거리며
그녀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었는데
두 아이들과 원룸 방 한칸에 살때도 굳이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붙잡아서
나는 그 어떤 호텔보다 더 좋은 집에서 잔 것처럼 즐거웠었다.
그녀에게 찾아온 가난은 좀 불편할 뿐이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그 좁은 집에 누구라도 불러서 정성의 밥을 대접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직장맘이면서 그녀는 맏며느리이기도 하여 제사도 지내야 하고
간간히 아프신 시어른들 수발로도 바쁜지라,
내가 내 삶을 조금이라도 투정을 부리는 맘이 생겼다가도 그녀를 보면
즉시 꼬리를 내리고 " 나는 그녀에 비할 바가 아니네~" 하며 나를 추스리곤 하였다.
이 모든 극한 상황을 이겨 나오는 동안도 그녀는 늘, 웃는 사람이었다.
신세한탄 한다고 더 나아질 일도 없거니와 오히려 일이 더 잘 안 풀린다며
무한긍정 에너지를 자가제조 하면서 그녀는 삶과 맞장을 떠서 멋지게 이겨 내었다.
그리고 그녀는 건강도 회복하고 2년전 에베레스트까지 올라 갔다.
25명 선발대원중에서도 마지막까지 완주한 14인에 당당히 들었다 한다.
올해는 자비로 다시 에베레스트를 도전 중이다.
지금은 에베레스트 어느 산정을 도전하고 있을 것이다.
5월3일까지 보름 예정으로 떠났는데 4월 21일 보내온 소식과
2년전 카스에 올라온 사진을 발췌하여 그녀 이야기를 기록 해 본다.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올리는 것은
어려운 환경을 잘 극복하고 잘 살아낸 사람과 삶을 통하여
희망을 전파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불평, 불만,부정이 나무나 만연해 있어서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하는 일을 누구라도 해야만 할 것 같다.
나도 이 사회의 어른의 반열에 드는 나이가 되어서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이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그 어떤 황무지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친구 박찬례는 지금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다.
그녀가 삶의 에베레스트를 정복 하였듯이
이젠 그녀에겐 극복 못할 시련이 없을 것이다.
온 몸으로 희망을 이야기 하는 내 친구 박 찬례를 존경하여 이 글을 쓴다.
4월21일 날아온 소식...
4월 18일에서 5월3일까지 희말라야에베레스트ebc트레킹을 왔습니다.
여긴 3400m남체롯찌
어제 7시간을 걸어 도착
새벽 3시26분
조금씩 고산증이 오는 사람 발생
희말라야 영화에 나왔던
무척 높고 긴 출렁다리 건너 왔습니다.(박찬례 통신원^^)
4월 21일 날아온 소식
에베레스트를 가기 위해 주말마다 강훈련을 하였다 한다.
2014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