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우울증>
이 무거운 주제를 언젠가는 한번 다루어 보아야겠다고
얼마전부터 생각이 들었다. 사전적인 의미는 차치하고...
내게 찾아온 그 현상을 그렇게 명명하여도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도 한동안 스스로 통제가 안되는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고
그것이 평소와는 다른 나의 모습이고, 원하지도 않은 모습이고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불 유쾌한 심리전이었기에...
이제 그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듯하여 내게 찾아온 갱년기 우울증이라는 주제를
경험에 비추어 다루어보고자 한다.
그동안 나를 피상적으로 아는 지인들은
아니...그토록 늘, 씩씩하고 활기찬, 단세포 동물 아줌마가
웬 그런 복잡한 감정을 소유 하게 되었냐고 의아해 할지 모르겠으나
나를 좀 더 깊이 느끼는 지인들은
나의 내면의 신경줄이 거미줄처럼 섬세한지를 간파하여
때론 작은 자극으로도 몸살을 심하게 하곤 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성숙한 사람의 대명사인 <외유내강>함이 아니라
나는 정제되지 못한 <외강내유>로 극과 극을 달리는 감정의 기복에
내 인생 전체가 쓸데없는 크고 작은 상처들로 얼룩져 있는데
지천명이 내일 모래인 이 나이에도 여전히 드러내놓지는 못하지만
내 안에서는 감정이 들 끓을 때가 있다.
젊은 날은 그 혈기를 다스리지 못해 바깥으로 다 내 뿜기도 하였으나
이제 나이값을 좀 해야만 사람 구실을 할것같은 생각이 들기에
안으로 삭힌다는 것이 ...또 안에서 몸살을 하는지...
그것이 한 해면 두어번 감기 앓듯이 연례 행사로 지나가곤 하였는데
(그럴때는 몸과 마음을 끙끙 앓고나면 웬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2년전서부터는 그 증상이 상당히 깊고, 주기도 길게 다가와서
아예 내 안에서 둥지를 틀고 떠날 생각을 않는 것이었다.
생의 반환점에서 다리가 후들거린다느니,
날개 쭉지가 부러진 느낌이라느니...하며 내가 이 블러그에 와서도
간간히 정체모를 감정에 사로잡혀서 살짝 내 증상을 엿보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내게 다가온 괴물같은 그 정체 모호한 우울증은 약해져가는 나를
통째로 삼키려고 덤비더니 급기야...저항력이 떨어진 내가 함락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외부적인 요인으로는 이런 것들이었다.
숨쉬는 것조차 한번 고르지 못하며 달리듯이 열심히 뛰어와보니
내 앞에 해 놓은 것이 대체 뭐냐...하는 자성에서부터 시작되어
남편이라는 작자는 자기만 위해달라하고
내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보듬어 줄줄도 모른다느니,
내 인생 전체를 헌신한(?) 아이들은 내 기대치에 미치지도 못하는 것 같고,
최선을 다한다며 살았다 해놓고 돌아보니...무엇을 최선을 다했다는 것인지...
내가 쉼없이 질주하며 이루어 놓았다는 것이 티끌같이 하찮게 여겨지고
다리힘도 빠지고, 흐느적거리는 내 육신...
탱탱볼처럼 활기차게 뛰어 오르던 내 정신조차도 후즐근하게 지쳐서 탄력을 상실하고...
총체적인...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내 시선의 각도가 360도로 회전하여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기 시작 하였다.
내 삶이 별 볼일 없게 된 것은 별 볼일 없는 남편을 만난 때문이며,
열심히 살면 지금쯤 장미빛 인생을 맞으리라 꿈꾸며 달려 왔는데
현재 보이는 미래는 현재보다 더 불안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무능하고, 거짓말을 일삼는 위정자들때문이라며 시국을 개탄하며,
아이들이 매사에 1등을 달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대치에 못 이르자
그 나물에 그 밥(남편의 혈족들)들이라며 탓하기 일쑤고,
내가 체력관리 못한 것을 가족들에게 헌신 하느라 그리 되었다며 화를 내고...
내가 받은 것은 기억나지 않고 내가 해 준 것은 일일이 떠오르며
이젠 나도 받는 것만큼 되돌려 준다며 혼자 거친 숨을 내뿜고...
현실은 어느 것도 달라진게 없는데
내 시선의 각도가 달라지니 온갖 사물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감정의 덫...수렁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짜증이 나기 시작 했다.눈물샘도 동시에 자극을 받기 시작 하더니
모든 것이 회색빛으로 투영되기 시작했다.
남편도 무겁고, 아이들도 무겁고, 내 육신 조차도 무겁게 느껴지기만 했다.
날씨도 잿빛이고, 바람도 황량하고, 그토록 예쁘던 야생화들도 무의미하기만 하였고
하늘은 왜 그리 칙칙하고 희뿌연하기만 한 거야.
내 마음이 순식간에 사막이 되어...나는 방랑자가 되었다.
내게 무거운 짐처럼만 느껴지던 것들에 무관심하고
나만을 위해보자던 그 마음인데도 왜...행복해지지 않는거야.
내 안의 반란을 다스리려고 혼자 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어도 그 순간 뿐이고,
내 안의 영혼이 빠져 나간 것 같은 느낌...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황량한 사막에서 꽃을 찾으니...찾을 수가 없다.
내 스스로 통제가 안되는 경험을 나는 하였다.
현실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나를 지탱하던 가치관이 흔들리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작은 것들이 하찮게 여겨지고
내 주변의 나와 연관 된 것들이 어깨의 무거운 짐처럼만 느껴지고,
세상에 날 위해주는 인간은 없고
바라기만 하는 인간들 뿐이라며 개탄을 하고
다아...싫어라!
어느 순간...사막을 방황 하면 할수록 내가 오아시스를 찾기는커녕
신기루에게 현혹당하고 있다는 자성이 작은 소리로 말을 건네왔다.
외부에서 해답을 찾지말아...답은 너 안에 있는거야...하는 속삭임이...
늘 너 자신과의 싸움에서 당당하게 너의 주관대로 살아 왔으면서
이제와서 왜 그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리려고 하는거니?
주변 상황이 변한 것이 아니라, 너가 너와의 싸움을 회피하고 있는거야.
자신감을 잃은 것도 너이며, 무능력한 것도 너의 준비가 부족한 탓이며,
체력이 떨어져 흐느적대는 것도 너의 나태에서 오는 결과이며...
미래가 불안 한 것도 너가 자신감이 없어서이지 그 누구의 탓도 아닌 것이야.
스스로를 질책하는 것을 두려워 말고 맞서서...싸워서 이겨라~~~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빛이 보이지 않던 터널을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우선 내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아무도...대신 해 줄 수가 없는 부분이야.
스스로 이겨 내야만 하는거야. 침몰하면 인생 패배자가 된다.
그리고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동시에 불행해진다.
나는 지금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그 가치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을 뿐이다.
나는...갱년기 우울증이라는 괴물에게서 탈출하기위해, 떨치고 일어나기 위해서...
봄내...내 체력과 내 정신력과의 싸움을 했다.
자연은 그 푸른 기상으로 나의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감싸 안아 주었다.
조금씩...제 자리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정신없이 땀을 흘리며 내 체력을 이겨 내려고 노력하니
정신도 원래의 자리로 복귀하는듯 했다.
남편도 늘 있던 자리에 있는 모습이 감사하고
아이들도 큰 탈없이 쑥쑥 자라주며 나름대로 제 몫을하는 모습이 이제사 다시 보인다.
내가 소홀했던 살림의 흔적들이 ...그동안의 나의 방황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몹시 미안해진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고 바로 내 자신이었던 것이다.
냉장고에는 묵어서 시어 꼬부라진 김치들만 가득했던 것을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오랫만에...햇김치도 담그고
오이 소백이도, 총각 김치도,고들빼기 장아찌도 담그고
마늘 장아찌,깻잎 장아찌도 담그고...아이들에게...엄마표 부침개도 해 주었다.
내가 방황하는 사이...탈 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준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해진다.
여전히 내 삶의 원동력은 내 소중한 가족들인데...
어깨위의 무거운 짐들이라고 부대낀다고 떨치고 싶다며 아우성 치던 것이...
내가 가족들 아니면 무엇때문에 그리도 열심히 살아낼 수가 있을까하고 생각이 된다.
내게 불현듯 찾아와 긴 시간들을 날 점령하여 내게 상흔을 남긴 우울증을
이제는 결코 내 안에 들이지 말아야겠다.
받는 것을 계산하지 말고 주는 행복을 기꺼이 즐겨야겠다.
무엇이든 줄 수가 있을 때가 행복한 것이라고...
이제 세상이 다시 내 중심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원치않던 홍역같았던 내 우울증이여.
영원히 아듀~~~를!
2006.6.30.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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