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예보가 있어서 육지에 간 남편이 일요일에 돌아 오기로 한 것을
급히 금요일 오전 비행기로 돌아 오시게 하였다.
퇴직후 12월까지 맘껏 쉬고 싶다는 남편을 8월 한달동안 함께 있어보니
나는 점점 옭죄어 오는 것을 느꼈기에 세상 공부를 하셔야 한다고
감언이설(^^) 등 떠밀어서 남편을 집 밖으로 나가시게 하였는데
일요일에 올 예정이던 것을 태풍소식에 급히 돌아 오시게 했다.
그동안 겪어보니 기상이변으로 비행기가 뜨지 않는 일이 많아서 미리 대비한 것이었다.
그런데 태풍 전날은 정말 이상하리만치 햇빛 쨍쨍에 바람한점 없어서 의아 했었는데
일요일, 태풍의 눈속을 통과하는지 내가 지금까지 이곳에 와서 겪었던 그 어떤 태풍보다 요란했다.
창문밖에 보이는 아름드리 큰 해송이 마치 집으로 덥칠것처럼 비바람이 세어서
하루종일 촉각을 곤두 세웠는데 오전부터 정전이 되어서 외부 소식이 단절되어서
얼마나 큰 피해가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는데 우리 과수원 바로옆에 있는 과수원을 구입한
친한 이웃이 과수원을 둘러 보고서 연락이 왔다. 과수원이 난장판이라고...
센 바람에 많이 낙과는 하겠구나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란다.
그래서 부랴부랴 달려가보니 가는 길도 나무가 쓰러져 있는것을 간신히 뚫고서 가보니.....
눈이 의심스러웠다.믿어지지가 않았다.처음에는 눈 앞이 캄캄하고 막막했다.
바람이 센 제주도에는 방풍림으로 삼나무가 과수원을 보호하듯 둘레를 둘러싸고 있다.
아파트 5층 높이 이상의 큰 삼나무들이 과수원 둘레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데
그 큰 나무가 뿌리째 뽑혀져서 귤 나무를 덮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일을 어찌해야할지 아무 생각이 안났다.한숨만 나왔다.
농부 3년차...작년에 겨우 제대로 농사짓고 용기백배 하게 되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연초부터 사사건건...쉽게 진행되어 가는 일이 없더니만...
이리저리 마음이 흔들려서 배회를 하다가 간신히 마음을 추스리고 있었는데....
워낙 큰 삼나무라서 들어 올릴수는 없기에 우선 급한대로 작게 짤라서 겨우 한그루
들어냈다.대충 둘러보니 이웃 삼나무가 우리 과수원으로 덥친것까지
10여그루 정도 쓰러진것 같았다. 그 밑에 깔린 귤나무는 20-30그루 될것 같았다.
귤이 바닥에 떨어진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귤이야 내년에도 열리지만 삼나무에 깔린 귤나무는 회생 불가능할것 같아서 한숨만 나왔다.
그냥 톱으로는 도저히 감당해낼 량이 아니어서 전기톱 전문가를 수소문 하였는데
친한 이웃이 간신히 수소문하여 사람을 구하여서 그집부터 자르고 그 다음에 우리것도 잘랐다.
처음에는 치울 엄두가 안나더니 집에 돌아와서 저녁 늦게야 전기가 들어와서
뉴스를 보니...제주도 전체가 아수라장이었다.제주시는 물바다가 되었고
인명 피해도 많았다.물에 잠기거나 재산상의 피해보다도
사망 실종한 사람들 소식을 접하니 나의 피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하던 정리도 전기톱으로 잘라내고 남편과 둘이서
삼나무 가지들을 치워가니 조금씩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망연자실을 떠올리니 내가 겪은 피해는 감당할만한
시련이라고 생각되었다.제주도가 물 난리가 났다고 전국에 보도되자
나를 염려하는 지인들이 걱정하는 전화가 많이 왔다.
나도 태어나서 생전 처음으로 겪어보는 수재이지만...
인명피해보다 더 큰 피해가 어디 있겠는가?
가족을 졸지에 잃은 사람들께 위로와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남은 사람들은 하루빨리 추스리고...다시 희망을 품기를 기도해본다.
늘 우리네 삶이 그렇지 않았던가?
내일은 또 다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2007.9.18.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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