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나니 희안하게도...바람결이 다른것 같다.
조상들의 절기를 나눈 지혜를 또 한번 실감하며...
정말 더운...이성을 잃을 정도의 무더위였었다.
아주 고소하게 진한 콩국수 한번 해 본다며 벼르다가
벌써 입추를 맞았고...해마다 수십마리씩 끓여서 손님 접대하던
삼계탕도 덥다며 아이들이겐 닭계장과 닭죽으로 그냥 넘긴 여름이다.
여름 다 보냈지만...언제 한번 진한 콩국수 한번 하여 이웃과도 나누어야겠다.
덥다고 컨디션 조절 못하여 여름 감기에 한동안을 시달렸다.
감기약 파동으로 약없이 버티었더니 꽤 오래 흐느적 대었는데
그래도 더위중에도 하루 한번이라도 잘 챙겨먹자 다짐한 덕에
지쳐 늘어지지는 안 한것 같다. 그래...든든히 먹어야 버티는거야.
아직도 후각이 안돌아 왔지만...냉동실을 여니 이곳에 이사와서
쑥을 뜯어다가 삶아 냉동실에 넣어둔 뭉치가 발견되어
쑥향기 나는 쑥국을 먹고 싶어 오랫만에 친정 엄마 방식대로 쑥국을 끓여 보았다.
날콩가루로 버무려 끓인 쑥국이 그리워지는 내 나이.
초봄에 뾰롯이 돋은 쑥은 향기도 좋고 쌉쌀하지도 않아 일품인데
제주도에 이사와서 5월말경에 뜯은 쑥은 벌써 쓴맛이 돌고 향이 진하지만
그래도...귀한 먹거리를 구한양 좋아하며 뜯어둔 쑥이었다.
다시마와 다시 멸치,파, 마늘로 한소끔 끓여 국물을 만들었다.
(가쓰오부시나 소고기 육수도 좋다)
쑥을 꼭 짜서 날 콩가루에 버무려 놓았다가 국물을 약한 불에 끓이면서
살살 쑥을 밀어 넣듯이 한다.한꺼번에 넣어 저으면 국물이 탁해진다.
콩가루와 쑥이 분리되지 않게 약한불에서 조심하여 한소끔 끓여서
거품 걷어내고 소금간하여 먹는다. 콩의 구수함과 쑥의 향기가 일품이다.
갖은 양념을 넣은 국간장을 끼얹어 먹어도 좋다.
나이 40 고개 넘으니...이제 이런 친정 엄마표 음식이 내 입에 정겨우니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이겠지.
이곳에 이사와서 얼마되지 않아 아직 집들이 초대도 않았는데
남편이 퇴근하면서 갑자기 우리집에서 간단히 술한잔 할거라고
연락이 왔다.아무것도 없는데...난 어이 하라고...
이곳 사원 아파트 특성상 함께 퇴근하다가 갑자기 한잔이 생각나면
예고없이 술자리가 마련 된다는데...난 그야말로 준비가 없었다.
할수없이 냉장고 뒤지니 작년 묵은 김치와 찌게용 돼지고기 한토막이 있는지라
김치 찌게를 끓였다.김치전, 김치 찌게.
봄 되면서 식상한 묵은 김치가 여름이 되면 또 그 깊은 맛이 햇김치 맛을 능가하니
김치찌게는 푹 곰삭게 익은 묵은 김치가 제격이라 그날...아주 좋은 평을 듣고
얼결에 첫 손님을 넘겼었다.묵은 김치로 끓인 김치 찌게가 시원하고 깊은 맛이었다
찬사해주니...고마운 구세주 묵은 김치였었다.
작년에 마당에 심어서 속이 차지는 않았지만 키운 갓 듬뿍 넣고
한 김치가 섬유질이 질겨서 금방 했을 때는 별로였는데 이렇게 냉장고에
잊어 버리듯 묵혀 놓았던 김치가 요즘에야 제 깊은 맛을 내고 있다.
푹 곰삭은 깊은 맛...그 어떤 햇 김치가 흉내낼수 없는 맛이다.
(우리집은 김치 냉장고가 없기에 그냥 냉장고에서 오래 익은 것인데
적갓을 많이 넣어서인지 빨리 쉬지도 않고 5월이 지나서야 곰삭은 깊은 맛을
내기 시작 하였다.)
아이들이 컸다고 고기에 붙은 기름을 다 떼어내는지라 요즘은 기름없는
순 살코기를 사니 오히려 값이 저렴하다. 돼지고기 살코기를 결 반대 방향으로
얇게 썰어서 김치 국물에 잠시 제워 두었다가 고기와 김치 함께 넣고
국물 자작하게 끓이듯 국물이 다 졸아들때까지 익히면 완성이니
이렇게 쉬울 수가...잘 익은 김치 국물이 다 간을 해주니 아무 양념이 필요없다.
배추옆에 대충 끼워 넣었던 무우 시래기를 듬뿍 넣었다.
군맛과 신맛을 중화하기위해 황설탕 한스푼.마지막에 신선하게 보이기위해
파와 참기름 한방울 넣었다.
가끔씩 입맛 없을때와 예고없는 손님 방문시에 효자 노릇하는 묵은 김치.
비상시를 위해 냉장고 깊숙히 한통쯤은 갈무리 해 둘 필요가 있는것 같다.
아~~~고기 구어 먹을때도 함께 구어 먹으면 입이 개운하다.
요즘 먹는 묵은 김치...얕은 맛은 감히 견줄수 없는 격이 있다.
2004.8.12.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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