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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 (건강한 밥상)

청국장

by 농부김영란 2004. 8. 15.

나는 다분히 진취적인 성향이 강하면서도 

한편 고루하기 짝이 없는 보수 성향이 있고,

한량없이 온유한 박애주의자일 때가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 날카로운 반골 기질이 돌출 하기도 하고

최첨단 문명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기계치인 구석도 다분한 종잡을수 없는 다혈질 인간인것 같은데...

 

세월따라 풍화 작용을 거쳐서 다소 두리뭉실 해졌어도...근본이 어디 가겠는가?

이제 불혹의 나이 중반에 이미 내 정서는 6-70대 정서 못지않게 보수 회귀 현상을 보인다.

특히나 입맛은 내가 생각해도 의문이 갈 정도로 토속적인 것으로의 집착이 강해진다.

 

10대때는 우아한 양식을 선호하여 엄마의 밥상이 몹시 싫었다.

좀더 감각적으로 연출하지 못한다고 나 혼자 접시에

밥을 양식처럼 담아서 먹는 유난을 떨기도 하였고,

피자가 나오던 초기에는 그런 음식을 즐기는 것이

마치 앞서가는 사람이라도 되는듯 피자 매니아이기도 하였었다.

 

운 좋았던 한때(1990년도) 러시아와 국교 수교 기념으로 개최한

한국 요리 축제팀에 합류하여 소련에 보름동안 체류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이들은 며칠도 못가서 김치 찾고 된장 찌게가 그립다며

느끼한(?) 양식에 손들고 아우성을 치는데

나만 유난스럽게 그 음식들을 거부감없이 즐길 수가 있어서

난 외국에 나가서 살아야 하는 체질이라며 큰 소리 친 적도 있었는데...

 

화려하고 기품있는 호텔 요리, 궁중 요리에 매료되어

마치 내가 그런 음식을 먹고 살아야 격이 있기라도 하듯

손님 초대시 그렇게 연출하려고 안달 부렸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랬던 내가...나이 40고개 넘어서면서...식성이 완전 토속 음식 선호로 바뀌어 버렸다.

내 정서와 입맛이 이렇게 빨리 노쇠 현상(?)을 보이니 한편 너무 빨리 삶의 전환점을 도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직도 아이들은 저리도 어린데 난...폭삭 늙은 몸과 마음으로

어찌 아이들의 치열한 경쟁에 발 맞추어 줄꼬 싶은 막연한 불안감도 자리한다.

이리 사설이 긴것도...노인성 질환의 일종 아닌지?^^

청국장 이야기 하려 들어와서 말이다.

 

젊음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몸도 마음도...싱싱한 기력이 넘치는,삶의 에너지 충만한 나로

회복 시켜야 겠다는 맘이 요즘 내 최고의 목표이다.

빨리 기력을 되찾아서...아직도 요원한 내 인생을 활기차게 보내야지...

각오에 각오를 하는 요즘이다.

그래서 먹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지 모르겠다.

내 몸이 원하는 현상이 내 입맛이 아닌가 싶다.

 

나같은 기계치 아줌마까지 홈쇼핑을 이용하는 세상이 도래했으니...

아마도 홈쇼핑 회사...장및빛 미래가 예감 된다.

알 꽉 찬 간장 게장 나올 때는 침 질질 흘리며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나이지만

나만을 위해 어찌 사나하고 망설이기를 아직도 여전히 하고 있다.

언젠가는 나만을 위해서도 저 먹음직스런 밥도둑 간장 게장 꼭 사고 말리.

 

이웃집에 놀러 갔더니 요구르트 제조기로 만든 요구르트가 맛있길래 덜컥 주문 했다.

요구르트에...청국장까지 한다니...요즘 청국장에 관심 많은 내가

매일 그것을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드디어 사고야 말았다.

홈쇼핑 회사여~나도 드디어 진출 하였소.(장차...내 가계부가 걱정 된다.)

 

요구르트는 흡족하게 잘 되기는 하였는데 배보다 배꼽이 크게 생겼다.

재료비가 만만찮을것 같고(내 생활비 수준에 비해) 청국장은 오늘 드디어 만들어 보았다.

설명서대로 국산콩을 5시간 이상 불려서 센불에서 끓인 다음 약한불에

다섯시간 졸이니 메주콩처럼 색깔이 다갈색으로 변하였다.

그리고서 청국장 제조기에서 24시간을 지내고나니 정말 치즈처럼 진이

끈적하게 묻어 나오는 청국장 콩이 되었다.냄새도 거의 없고...

몸에 그리도 좋다는 청국장...많이 먹고 또 먹어야지...

그래서 청국장을 끓여 보았는데 내가 주로 해먹지 않던 것이라서 실은

맛내기에 아직 그다지 일가견을 갖지 못하였다.

청국장을 기막히게 끓이는 큰 시누이의 청국장을 떠올리며 끓여 보았다.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신 김치 송송 썰고 발효된 청국장 콩을 마늘과

고추씨가루를 넣고 빻아서 두부 넣고 다시 멸치 넣고 끓였는데

맛은 재래식 방식으로 만든 청국장의 콩콤하며 감칠맛 나는 그 맛을 못 따라 갔지만

이제 그 방식을 고수하며 살기에는 너무 번거롭고 냄새가 나니

이 청국장 맛에 길 들여야 할것 같다.

 

내 입에 딱 맞는 청국장 맛을 찾아 내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행 착오를 거쳐야겠지만

기계치 아줌마인 나도 이제 이렇게 기계의 도움을 받으며 편리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고맙기도 하다.

이제...기막히게 맛있다는 청국장을 찾아서 내 촉수를 부지런히 움직여 봐야겠다.

청국장이라 이름하면 다같은 청국장이 아니라고 뽐내는 어딘가의 진짜 참맛을 찾아서...

또 하나의 목표 설정...이제 나도 청국장 잘하는 아줌마가 되어 봐야지.^^

 

..

 

 

 

 

 

 

 

 

 

 

 

 

 

 

 

 

 

 

 

 

 

 

 

 

 

 

 

 

 

 

 

 

 

 

 

 

 

 

 

 

 

 

 

 

2004.8.15 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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