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轉禍爲福 (전화위복) 轉禍爲福 (전화위복)의 의미: 재앙과 근심, 걱정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됨.
나는 전화위복을 몇번이나 경험했다.
화가 닥친 줄 알았는데...지나고 보니 , 오히려 복이 된 일을 .....
그 과정 중 절망하지 않고, 문제해결을 위해 전심전력한 후...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나니...화가 복이 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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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盡): 다할 진, 모든 것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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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人): 사람 인, 인간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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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事): 일 사, 행동이나 사건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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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待): 기다릴 대, 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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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天): 하늘 천, 하늘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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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 넷.
남편 회사에서 발령이 제주도로 나면서
나는 아이들 셋을 데리고 서둘러서 제주도로 왔다.(2004년 5월)
회사(본사)가 구조조정 중이라서 몇년안에 우리도 명퇴 당할 것이라는 예감을 했고,
이 참에 제주도살이 해보고, 제주도를 즐겨 보자며,
큰 아이 초등 학년, 둘째 4학년, 막내가 1학년에 서울에서 제주도로 전학을 했다.
응석이 남편이 (아직도 응석이^^) 제주도 낯선 곳에 와서 적응 하느라고,
입이 다 헐었다며 징징대며 호소하기도 하고,
나도 닥칠 시련을 예감해서 마음을 동여매고 있었기에,
나는 서둘러서 집을 전세 놓고 20일만에 남편을 따라 제주도로 이사했다.
3년 안에 돌아올거라고 최소한의 이삿짐만 챙기고, 아이들 셋과 강아지 두마리를 데리고
회사에서 주는 사원 아파트로 이사했다.
2004년 5월 5일, 그날은 비가 세차게 와서 사원 아파트 옆 개울에 냇물이 콸콸 흘렀다.
이국적인 제주도 풍경도 멋진데, 아파트 옆 개울에 물까지 흐르다니...하고 좋아했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개울물이 하나도 없어서 깜짝 놀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주도는 대부분 하천이 건천인데, 비가 많이 와야 개울물이 흐르고,
곧바로 다시 건천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주도는 낭만몽상가인 나에게는 별천지였다.
현실의 두려움(남편이 명퇴 당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는 걱정) 은 내게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
온갖 어려움을 헤처 나오면서 내게 생긴 내공은
"닥치는대로 부딯혀 가면서 나아가리라~"
이런 깡이 내게 시련을 헤쳐 나오면서 생겼기때문에...
나는 온전히 제주도 풍경을 즐기며 힐링했다.
"미리 걱정 하지 말자"
제주도로 올때만 해도 나는 농부가 될 줄은 모르고 무작정 내려 왔다.
지금 20년째 유기농 귤농부가 되어 "농부 김영란"이라고 내 이력서를 쓸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제주도를 내려와 보니, 남편이 머지않아 명퇴 당할 것이 현실적으로 직감 되었다.
" 아직 아이들 어린데 어찌 살아 가지?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김영란이 굶어 죽을 인간이냐? 사막에 가서 길을 잃으면 전갈을 잡아먹고라도 생존할거야~"
하며 호언장담했다.
그렇게 미리 나에게 큰소리를 쳐 놓아야 스스로 기운이 충천하여 용기백배 할 수 있기에,
나는 늘, 벽을 뛰어 넘을 때는 큰소리부터 쳐 놓고 시작한다.
장대높이 뛰기 할때 기함을 넣고 뛰어 오르는 효과를 보기 위해,
먼저 큰소리를 쳐 놓고, 그리고 기운을 모으면, 한결 용기가 나기 때문이다.
물러 설 수 없을 때는 뛰어 넘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절망의 벼랑에 섰을 때,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면, 젖먹던 힘이라도 내어야지~
나는 늘 나에게...이렇게 주문하며, 스스로 용기를 돋우고,힘을 내었다.
감성적이고, 몽환적인 내가 마치 독일병정처럼 스스로를 무장하게 된 것은,
현실의 어려움을 구비구비 넘어야 했어서...
나는 시련과 마주하면 내 스스로와 독대한다.
나와 대화하고, 나를 위로하고, 나를 북 돋우고...그리고..비장한 결심을 한다.
가장 강해져야 할때는 스스로 무장해야 하기에...
그리고 온 힘을 다해서 나를 극복한다.
매일 아오지 탄광으로 출근하는 듯이 등신불상 표정을 하고 회사를 나가는 남편에게
(그 월급 받아서 쓸 때는 심장이 오그라 들어서 차라리 내가 벌고 말지~싶었다)
" 마흔 다섯이 되면 바통터치 해 줄게~" 하고 달랬다.
"차라리 내가 벌고 말지~치사스럽구나~" 싶기도 해서...
남들도 다 하는 일을 왜 저렇게 오만 인상을 쓰고 한단 말인가?
힘들어도 웃으면서 일하면 더 좋을텐데,
남편은 자신이 힘들다는 것을 내게 보란듯이 오만상을 쓰면서 일을 하니,
옆에서 보기가 심히 불편 하였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하면서 내가 일을 하다가 보니...
나는 점점더 바깥양반처럼 되고, 남편은 마누라처럼 쫑알대기 일쑤였다.(역활이 바뀐 것 같아~)
그리고 환갑이ㅡ지나면서 남편은 점점 여성 호르몬이 증가하는지,
사소한 잔소리가 많아지고, 고양이 세수하듯이 일을 하는 남편때문에
나는 부처님 사리를 내 안에 가득 만들게 되었다.(도 닦는다, 도 닦아~)
남자답지도 못하면서 남자다운척 하던 것이 허세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데,
조선시대적 발상을 하면서 내게 밥타령을 하기 일쑤니...
나는 "당신 밥 해주기 위해 내가 태어난 줄 알아?"하며 반발하지만...
고리타분한 남편은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한때는 좋아서 결혼 했을텐데~ 살다보니 현실에 부딯히고,
서로 충돌하면서 사랑은 애증으로 변하고, 원수까지 안 간게 천만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내 안에는 "당신을 탄핵 할지도 몰라~있을 때 잘 해~"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이것만은 심사숙고 한다.
(탄핵은 심사숙고해야만 한다.그 부작용은 두고두고 일어난다)
최악의 상황은 서로 만들지 말자~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일이 될 수 있으니,
절대로 선을 넘지는 말자~고 어금니 깨물고 다짐하여...
그래도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여기까지 화목하게(?) 이어져 왔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라") 하면서 나를 돌아보고,
남편도 나와 사느라 불만도 있을 터인데 싶어서,
결정적인 판은 깨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남편은 자신에게 순종하며(조선시대 여자처럼) 자신은 왕처럼 누리고 살고 싶어 하지만...
그러면 "내 인생은 도대체... 뭐지?" 싶다.
(그럼 너가 경제적 능력이 있던가?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그것은 내 뱉어서는 안될 말에 속하여 안에서 사리가 되었다.
남편은 성실하긴 하니까 직무유기는 아니기에...)
내가 가장아닌 가장이 되어, 온갖 일을 다 해결하고,
아이들 셋까지 다 감당하고, 그 와중에 갓한 밥에 갓한 김치에,
재탕한 찌게는 안 먹겠다는 불평등, 불공평의 처지를 강요하니...
내가 어찌...이런...세상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내 발등 내가 찍었구나(내가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 장 탄식 하면서
뒤늦게 돌아보니...되물릴 수도 없게 셋이나 되는 아이들의 운명줄을 쥐고 있으니...
내 운명 앞에서...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는 없잖아~
내 운명이 주저앉아서 여기서 망하느냐~ 흥하느냐~
그런 사생결단의 순간에 섰을 때.....
"떨치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잖아~"
나는 배수진을 치고 운명과 마주하여 담판을 지었다.
마흔 다섯에 유기농 귤농부가 되어서 지금까지 달려 오면서도
나는 여러가지 어려움과 마주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나 자신과 담판을 짓는다.
남편이 제주도 와서 3년만에 명퇴를 당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암담했지만,
떨치고 일어나서...여기까지 달려오고 보니...
전화위복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미래가...나의 절취부심의 노력과, 인내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함이
쓰러지지 않고 나아가게 하였으며, 나를 단단하고 의연하게 하였다.
그 와중에도 나는 자존감을 잃지 않고, 정의롭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자
나를 격려하고, 자잘한 이익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러한 나의 결단이 오늘의 나로 이끌어 왔고,
나는 그사이...많은 것에 초연해져서 사는 일에 궁색하지 않을 수 있었다.
멀리 바라보고, 한 눈 팔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마흔일곱에 명퇴당하였기에, 스스로 떨치고 일어나서,
나의 능력을 키울 수 있었고, 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때는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20년이 지나서야 전화위복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렇게...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일이 몸에 배였고, 일 하는 것이 슬프지 않게 되었다.
내 다리가 휘어지고(무릎관절이 내려앉아서),
손가락 마디마디가 울퉁불퉁 고생한 흔적이 역력하지만...그것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열심히 살았기에 나는 삶에서 당당해졌다.
내 주위에 아무도 기댈 수 없을 때 내가 가장 강해지는 순간이다.
오직 내 자신이 나를 구원 할 수 있다.
이런 내공은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생기는 보석이다.
지금, 이 순간 어려운 사람들에게...내가 인생 선배나 동료로서 해 주고 싶은 말이다.
지금 달콤한 사탕이 나중에 독이 될 수도 있고,
지금 길이 안 보이고 절망 스러울 때, 내가 가장 강해지는 순간이고,
훗날,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큰 나무가 될 수 있는 인내가 길러질 것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곧게 올바른 길로 나아가면, 스스로가 당당해질 것이다.
훗날, 반드시 귀한 열매를 결실하게 될 것이다.
절망스러운 순간은 없다.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보면, 다시 길이 보인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삶의 본질에 충실하여,
겸허히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면...반드시 좋은 날이 다시 온다.
다만...다 비워내고 나서야, 본질이 보이기때문에...
헛된 욕망을 내려 놓아야 한다.
삶은 성스러운 의식이다.
지금 힘든 사람들은....절대로 절망하지 말고,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인생을 새로 셑팅하고, 다시...매일 매일 감사하며 살아내기를...
방 하나면, 단잠 잘 수 있고, 소박한 식사 두끼면, 생명부지에 부족함이 없다.
일부러 운동하지 않아도, 노동하면 사는 일을 해결 할 수 있다.
많은 것을 가져서 행복한 게 아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하여 그런 선택을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또 다른 평온한 삶을 발견 할 수 있다.
다 내려놓고 바라보면 답이 보인다.
누구나 순간적으로 잘못 할 수가 있기에, 잘못했다면 뉘우치고 새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잘못된 길을 인식하면...한시바삐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잘못된 것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어 있기에 ...
크게 인생을 바라보자!
꽃 피는 봄을 즐기면서...
시련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이다.
시련이 신의 은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삶은 언제나 축복이 된다.
여러가지로 힘든 사람들께...기운내시라고 응원합니다.
시련의 끝자락에는 은총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20년이 다 된 내 글에 누가 댓글을 달아서 열어보니...
내가 이런 글을 쓰다니....우쒸...그사이 내가 변한거여, 남편이 변한거여~~~
고생 바가지로 한 내가 변한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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