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에 눈이 멀어서, 쓴 수기글(상 받으면서 부끄러워서 고개 들지 못함)
감귤박람회 영농수기 공모에 낼까 말까 고민 하다가,
마감 한시간 전...쏟아내 듯, 쓴 글...(사실 이렇게 쓴 글이 심중의 글이긴 하다)
우수상 1명, 가작 3명 중...가작으로 뽑혀서 상금 30만원 받았다.
올해는 귤이 최악의 상태라서 귤로는 상 받지 못하고, 글로서 상 받았다.에고...
동기가 부끄러운 글이지만...좌충우돌 내인생...
글이라고 할 수 없는 여과 없는 배설물, 나의 글이...나이지 않겠는가?
언제나...수고 많이 하시는 감귤박람회 운영진에 감사 드립니다.(수혜자로서)
내가 심어 놓은 꽃 속에 살지만...
꽃다발 화환은 또 다른 설레임이 있구나....
<감귤 영농 생활수기>
<길> 김영란
*길
입추가 지나고 나니 바람결이 달라졌다. 그 무덥던 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는 가을 기운까지 느껴지니, 드디어 내 마음이 결기를 도모한다.
올해는 유난히 더워서 에어컨 없이 살던 나도 에어컨 예찬론자가 되었다.
여러 가지로 기후 위기를 실감한다. 40여일이 넘은 장마와 연이은 폭염에,
바깥일이 밀려서 농장 풍경은 정글이 되었다.
“이제 일해야지~” 농사는 온 몸으로 말하는 기도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낫을 벼리며 다짐했다. 이제 마음 동여매고 다시 온 몸으로 일해야지.
낫 하나와, 장갑 한 켤레와, 전사처럼 무장한 내 마음이면 태산인들 못 넘으랴~
아득하기만 한 일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끝장나게 되어 있다.
농부 되고나서 깨달은 삶의 지혜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이다.
낫을 벼릴 때면 내 마음도 벼린다. “할 수 있어” 하는 마음 무장이 태산을 넘게 한다.
그렇게 20년을 단련해 온 내가 2년 전,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큰 난관이기도 했던 행정심판 소송사건.
잔류농약검사에서 농약이 검출되어서 유기농 인증이 취소되어,
불복한 나는 행정심판청구소송을 냈고, 승소했다.
농부가 이긴 사례가 없다하여 매스컴이 찾아오고, 방송 신문에서 보도까지 했으나,
승소한 당사자인 농부는 파김치가 되어서,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왔으나
온 몸이 부상당하여 불구가 된 노병의 심정이 되었다.
상처뿐인 영광이라며 자조어린 한숨을 내 쉬었으나,
나의 도전은 유기농 농사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계기가 되었다고 다들 말하였다.
덕분에, 나는 길을 하나 만든 사람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나는 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을 답습하며 걸어왔다.
극소수이긴 하나, 유기농법에 길을 낸 선배님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서 걷기만 하는데도
유기농사는 만만치 않았었다. 경제논리 일색인 농업정책에 반하는,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인 농법이라며 천대받고 공공연히 멸시당하는 유기농업을
농사농자도 모르던 내가 도전하여...20년이 되었으니...
나는 스스로를 바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제개념이 없었기에 오늘까지 버티어 온 것이라고.
계산이 빠르고, 행동이 민첩했다면 남들이 다 어렵다고 포기하며 비난하는 길을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세월을 버티고 이겨 나올 수가 있었겠는가?
묵묵히, 우직하게,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우물 파는 미련한 성정이
20년차 유기농 농부가 되게 하였으니,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칭찬해주련다.
농사를 몸으로 체득한 사람들은 농사가 결코 낭만적인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텃밭 농사로도 유기농법을 해 본 사람들도 손사레 치는 농사를
생계수단으로 택한 유기농부는, 정신세계가 유별난 신인류쯤으로 취급 받는 것이
황당한 논리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행복의 잣대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유기농 농부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을 만들어 간다. 나도 어려움은 많았을지언정, 유기농부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떤 논리에도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소신을 갖고 살 수 있었음에 만족하며,
대의적인 차원에서도 친환경농업을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청춘과 열정과 헌신을 다 바쳐 온 길. 그 길에서 나는 살아남았고,
헹복한 바보 유기농 귤 농부의 이력을 가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선 자리가 나의 고향이며, 천국이 되고 싶어서 귤밭 주변을 모두 꽃으로 단장하여,
지나며 오가는 이와 나 자신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려고 곷 동산을 만든 것도 잘한 일이었다.
일에만 매몰되어 무미건조한 삶이 되고 싶지 않아서, 짬짬이 시간 내어서
배우고 즐기는 생활을 도모했다.
꽃과 예슬과 다양한 문화를 늘 접할 수 있는 제주도는 낭만 농부로 살기에도 족한 곳이었다.
이제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라, 뒤돌아보며 반추하는 일이 잦아졌다.
후회 없는 삶이 있으랴만 이만하면 족하다는 생각이 포만감을 주는 요즘이다.
부귀영화 누리지 않았어도 온 몸으로 일하며 땀으로 옷을 적시는 삶이 건강하고 밝았다.
손마디가 노동으로 휘었고, 관절이 성하지 않아서 골병 들었다며 엄살을 떨어도,
나는 내 농부의 삶이 행복한 여정이었다고 담담히 말할 수 있다.
땀 흘려서 노동하지 않고, 수확할 수 없으니, 땀의 댓가 그 이상을 바라지 않으며
헛된 욕심을 내지 않는다.
유기농부 20년 동안 내가 만든 길은 몇 가지 있다.
나만의 방법으로 벽을 뛰어 넘은 것은 생산과 판매에서 차별화를 했기 때문이다.
생산에서 차별화 한 것은 em을 활용한 유기농법이었고, 수확 시에는 철저하게
완숙과만 수확하여 맛을 차별화 하였다. 판매는 전량 직거래 방식을 택했고,
회원제를 도입하여 미리 회비를 받아서 수입의 안정화를 꾀하였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하기 위해서는 수입이 안정되어야 했고,
고객을 만족시키고 고정 고객화 시키기 위해서는 품질의 극대화를 위해 완숙과만 수확하였다.
이 모든 과정은 남다른 노력이 뒷받침 되어서 가능했다.
감귤박람회에서 매년 친환경부분에서 상을 타서 자타가 공인하는 유기농 귤 맛이고,
남다른 노력을 기꺼이 몸으로 감당해 왔기에 이룬 성과였다.
앞서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을 내가 걸어왔고,
나는 또 나만의 길을 만들어서 뒤 따라오는 그 누군가의 등대가 되겠지.
이 사회의 어른의 나이가 되고 보니, 어깨가 무겁고,
내 발자취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 보다 나아지는 세상이 되는데 일조하였으면 한다.
남은 길도, 명랑하고 밝은 기운 뿜어내며,
아름답고 품위 있는 길을 만들려고 노력해 봐야지~
'귤밭'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차 귤을 보내고 나서 (0) | 2024.12.02 |
---|---|
회원1차귤 11월 25일 발송 (1) | 2024.11.23 |
풀과의 전쟁 (0) | 2024.08.27 |
7월 귤즙 편지 (0) | 2024.07.03 |
6월 귤즙 편지 (0) | 2024.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