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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성신문

자식, 자발적 은둔

by 농부김영란 2022. 7. 4.

라이프

                                                     자식■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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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24  10:17:46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일으켜
힘이 돋기를 기다려줘야 한다.
60세가 넘은 나도 꿈속에서 
엄마 손을 잡고 힘을 낸다..."







밤새 잠을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까무룩 잠이 들었다.
대개 초저녁이면 잠이 쏟아져서 잠들었다가 한밤중에 한두 번 눈을 뜨지만
다시 잠을 청해 아침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는 게 나의 잠 습관이다.
그런데 어젯밤은 도무지 잠이 들지를 못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가 매주 보내야 하는 농촌여성신문 원고를 써야 해서 일어났다.
원고를 보내고, 오늘도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하는데 수면부족으로 괜찮을지 걱정된다.

며칠 전부터 신체 리듬이 깨지면서 열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한림에서 직장에 다니는 둘째아이가 몸에 큰 염증이 생겨서 병원을 드나들면서,
서귀포-한림-제주시, 다시 한림, 다시 서귀포를 4~5시간 운전하면서 다닌 것이 내 기를 넘게 한 것 같다.
아픈 아이를 태우고 병원을 드나들면서 내 마음이 노심초사해 더욱 몸살을 초래한 것 같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자기주장이 강해 엄마랑 자주 부딪혔다.
엄마의 관점에서는 아이를 바로 훈육하기 위함이었었는데,
사춘기 이후부터는 마음에 빗장을 치고 소통을 거부했었다.
밤새도록 게임을 해서 엄마 분통을 터지게 했고,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것을 어르고 달래서 한국농수산대학을 보냈다.
학교생활이 재미없다는 걸 낙오만 하지 말라고 달래서 겨우 졸업시켰다.

둘째는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농사를 짓고 싶어 하지 않았고, 나도 세상 구경을 실컷 하고 돌아오라고 했다.
이것저것 다 해보고 가업을 이어받아서 농사를 짓겠다는 때가 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내 생각에는 농업분야가 미래비전이 있고, 앞으로는 더욱 먹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둘째가 그런 마음이 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우리가 자랄 때와는 많이 달라서 부모의 고정관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알바를 하며 세상 경험을 하다가 몇 개월 집에 와서 함께 하는 동안
나는 다 큰 자식과는 함께 살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밤새 게임을 하며 생활이 불규칙한 자식을 보는 눈이 도끼눈이 되고, 잔소리가 절로 나가니 관계만 악화됐다.

그러다가 국비로 청년창업혁신센터가 생겼는데, 그곳에 지원해 합격했다.
평소 게임을 즐겨 해서 걱정했는데, 컴퓨터에 능하니 전공도 하지 않은 웹디자인 분야로 일자리를 얻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게 돼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런데 게임도 같이 하고, 종종 만나서 밥도 함께 먹던 과 동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받은 충격과 파장이 어떨지 내심 걱정돼 둘째를 살폈다.
둘째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며, 불규칙한 식습관과 생활태도가 건강을 무너지게 하고 있었다.
아이의 병이 깊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울증으로 몸과 마음이 스스로 제어되지 않는 상태가 된 것 같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둘째에게 엄마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다’고 아이가 느끼고, 스스로 자신을 일으켜 세울 힘이 돋기를 기다려줘야 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차 안에서의 4~5시간에 사랑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60세가 넘은 나도 꿈속에서 엄마 손을 잡고 힘을 낸다.

나는 꽃으로 달래야겠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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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꽃과 노는 게 
재미있고 번잡한 생각을 
씻어 내려준다~"





장마철에 접어들자 날씨만큼이나 감정도 출렁거린다.
폭우가 내렸다가, 흐렸다가, 안개가 자욱했다가, 천둥번개까지 동반하기도 하니
기분도 날씨 따라서 우울했다가 음산해지기까지 한다.
습도가 높아서 사방이 곰팡이가 피어나서 쾌쾌한 냄새에다가,
공기 중 습도가 높아 몸까지 수분을 흡수해서 천근이니 기분이 쾌적할 리가 없다.

나무들이 비를 만나서 맘껏 물을 들이켜 초록은 더 싱그럽고,
풀들조차 내세상이 왔다며 정글을 이루는 것도 이 장마철이다.
아열대성 기후로 변해가는 제주도는 이맘때 식물들이 폭풍성장을 하고,
유기농 농부는 병해충 관리에 가장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고온다습해 충과 균들이 기승을 부리니 방제소독에 신경을 많이 써야만 한다.

비가 오는 날에도 기온은 높아서 꿉꿉하고, 소독하고 돌아서면 비가 오기도 해서 소용없게 만들기도 한다.
제주도의 기후는 특이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의 이웃마을에 비가 왔어도
옆 마을은 전혀 비가 안 오는 경우도 많다.
5분 거리의 지형은 늘 안개가 자욱한 곳이고,
같은 밭이라도 바람이 지나가는 바람골도 있어서 냉해 등을 입기도 한다.
똑같은 방제 레시피를 적용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농장의 특성에 맞게 관찰해 방제와 관리를 해야만 한다.
초보시절에는 잘 몰라서 똑같은 방식을 적용해 나무도 사람도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생명 있는 것은 모두가 자신만의 생태시계를 가지고 적응하고 살아가는데,
사람들은 획일적인 잣대로 가늠하는 우를 범할 때가 많다.

각설하고, 비오는 장마철에, 나는 나름 바쁘다.
귤밭 관리는 이제 남편이 거의 하고 나는 꽃밭을 늘리느라고 바쁘다.
장마철 이맘때가 모종 옮겨심기에 적기다.
특히나 삽목하면 공중습도가 높고 기온이 높아서 성공률이 높은 편이다.
수국을 모두 삽목으로 늘려서 이제는 제법 수국동산이 됐다.
자꾸 영역을 넓혀서 이것저것 삽목해 번식하다 보니 늘 종종걸음으로 바쁘다.

삽목은 한 뼘 가지를(두세 마디) 잘라서 뿌리내리게 해 번식하는 방법인데,
돈은 별로 안 들지만 공은 많이 든다.
두어 달 아침저녁으로 물을 줘서 뿌리내리면 다시 포트에 옮겨 심었다가 땅에 옮겨 심는다.
나는 이렇게 대부분의 꽃나무들을 번식했다.
그동안 재미로 조금씩 했는데, 2년 전부터는 남편에게 귤밭을 일임하고
나는 더 많은 꽃을 심어서 꽃밭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부터 삽목 수를 늘리고 있다.

사람들이 꽃동산을 만들어서 입장료를 받는 일을 연상하는데,
나는 좋아하는 꽃을 원 없이 심어보고 싶어서, 그리고 돈만을 위해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 노년에 무슨 부귀영화를 더 누리겠다고 모든 것을 돈에 초점을 맞추겠는가.
하고 싶었던 일을 원 없이 해보고 싶어서다.

조경업자들이 한 해면 만드는 정원을 나는 10년 만에 묘목을 키워서 내 손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요즘 자발적 은둔을 하고 있다.
혼자서 꽃과 노는 게 재미있고 번잡한 생각들을 씻어 내려준다. 
삽목 하느라 잘라낸 꽃들을 접시에 담아두고 꽃놀이를 하면서 이 장마철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내 영혼이 꽃같이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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