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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48) 농촌여성신문 | webmaster@rw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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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2.03 1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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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어쩌면 암보다도
더 아득한 질병일지도...
행복하게 이 순간을 즐겨야지~"
귤 수확철만 되면, 유휴노동력인 큰언니가 서울에서 귤을 따러 오셨다.
햇수로 10년 가까이 오셨으니 큰언니도 귤 따는 데는 베테랑이라 할 수가 있다.
지난해 한해를 거르고 올해도 오셨는데,
큰언니의 치매가 많이 진행돼서 조카도 나도 치매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10%정도씩 치매인가 건망증인가 싶은 변화가 느껴지더니,
한해를 건너 띄고 온 올해 보니 확실히 치매성이고,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치매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은 단기기억인지능력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과거의 어느 날은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아주 가까운 어제나 조금 전 일은 잊어버리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상황은 치매라고 보면 된다 한다.
전문가 의사선생님이 “오늘 아침 무엇을 드셨습니까?” 하고 물어보는데,
잘 기억을 못하고 횡설수설하면 치매라고 본다고 하셨다.
큰언니는 함께 일하는 <믿음>씨에게 1시간 전에 한말을 또 하고,
또 한 시간 후에 같은 말을 반복하고, 하루에 네댓 번은 같은 질문을 한다.
<믿음>씨는 신심이 깊고, 2% 부족한 오빠를 돌보고 있는지라 다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일일이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고, 웃어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미안하고 고맙다.
나도 큰언니가 하는 행동들은 치매에서 오는 비정상적인 행동이 많아
환자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니 이해가 되고, 연민이 샘솟는다.
아직은 일상생활은 가능한데 좀 더 진행돼 자신조차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지만,
담대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지 하며 마음을 무장하고 있다.
치매 이야기만 나오면 읽어보고, 들어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정작 당사지인 큰언니에게 치매가 오고 있다고 이러이러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하면 펄쩍 뛰면서
“나는 치매가 아니야~”하며 도리질을 한다.
큰언니보다 나이가 2살 더 많은 마중물 언니는 생활습관이
규칙적이고, 식사, 운동, 사회활동, 소통 등등 젊은이 못지않게 활발하게 지내시니
19년 젊은 나보다도 짱짱하다며 치매예방 비결을 알려주니 화까지 낸다.
아직은 완전 치매로 가지 않았고, 경계선에서 의식이 넘나드니 자존심을 건드린 것인지,
남하고 비교하지 말라고 화를 낸다.
본능만 남고, 학습된 것들은 잊어버리는 치매. 어쩌면 암보다도 더 아득한 질병일지도 모르겠다.
귤 따기에 베테랑급인 큰언니에게
“언니, 잘 익은 귤만 따세요. 큰귤, 못난이 귤, 덜 익은 귤은 따면 안돼요~” 하고 일러줬는데,
10분도 채 안 돼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모두 다 따고 있다.
전 같으면 나는 화를 내며 잔소리를 따발총처럼 쏘아댔겠지만,
큰언니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
자존심마저 없어지면 더 슬프지 않을까?
“비상품은 따로 골라서 주스로 만들어야지~”
이런 너그러운 맘이 내게 언제 생겼는지 모르겠다.^^
제주도의 파란 하늘을 보며 거꾸로 들고 마시고 싶다는 예쁜 시심도 아직 있고,
예지랑날(늦은 오후)에 김장까지 했다고 좋아하는 큰언니.
그림교실에도 함께 가서 동심을 끌어내보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게 즐겨야지~
인생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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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농부의 혹한기■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47)
농촌여성신문 | webmaster@rw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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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26 11: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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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치열한 24시간을 전하면
결코 낭만이 아닌,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한 삶의 현장임을 알게 될 것...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관광섬 제주도에서 귤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대부분이 너무 부럽다는 말이 나온다.
육지의 산골오지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고생스러운 시골살이를 떠올리면서도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심지어 로망이란다.
나도 제주도에 남편 발령 따라 와보니 겨울 제주도가 너무 아름다워서 뭣도 모르고 농부의 길로 들어섰으니,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리 생각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겨울 제주도는 남한 최고봉 한라산이 하얀 눈을 겨우 내내 이고 있는데,
아랫녘 서귀포에서는 초록귤나무에 주황색 귤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그 아래에는 제비꽃, 양지꽃, 민들레가 피어있어서 겨울인지 봄인지 싶다.
온 사방이 귤꽃(귤)이 피어있고, 화사한 동백꽃까지 축제를 벌이니 겨울 제주는 환상적인 모습이다.
을씨년스런 겨울 날씨에 웅크리고 살다가 이런 환상적인 남국의 풍경을 보고는 모두가 반해서
제주도 농부조차 낭만농부로 보이는 것이다.
나도 2004년도 5월에 제주도에 왔는데,
겨울을 지나면서 제주도에 반해서 덜컥 귤밭을 사서는 농부의 길로 들어섰으니 나는 로망을 실현한 셈이다.
그리고 17년의 세월이 지난 후...
낭만농부는 ‘과연 제주도 농부가 낭만농부일까~’하는 환상을 벗겨본다.
사계절 중 겨울의 치열한 하루 24시간을 전하면 결코 낭만이 아닌,
그 어느 곳보다도 더 치열한 체험 삶의 현장임을 알게 될 것이다.
겨울과일인 귤은 11월부터 12월까지 따지만 직거래를 택한 나는 1월에도 귤을 딴다.
그래서 거의 3개월을 바깥에서 지내는데, 제주도가 따뜻하다고 해도 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이 많아서
한라산 눈바람이 섞인 겨울바람은 코끝을 겨자보다도 톡 쏜다.
인부를 동원해 한꺼번에 다 따 내려서 상인이나 거래처에 넘기고 겨울을 편히 나는 귤농부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속가능한 농사를 하려면 일정한 수익구조가 돼야 하기에 택한 방식이 직거래라서,
싱싱함을 유지하기 위해 나무에서 완숙과를 따느라 겨우 내내 몇 차례나 귤밭을 돈다.
귤을 따고, 나르고, 선별하고, 택배포장하고, 택배회사에 실어다주고...
이 모든 과정을 몸으로 해내야 하기에 이맘때는 체력관리에 만전을 기한다.
나와 남편의 배둘레햄(뱃살)이 위력을 발휘하는 때다.
남편은 인간 기중기가 돼서 하루에도 수십 톤을 들었다 내렸다 한다.
우리는 둘이서 몸으로 참으로 많은 일을 해냈다.
이제 일이 그리 두렵지 않고 굳은살이 몸에도 정신에도 박혔다.
나는 낮에는 귤을 따고 밤에는 주소를 정리해 컴퓨터에 입력하고 운송장을 뽑는 일을 하느라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글자 하나가 틀려도 잘못 배송되는지라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해서 이맘때 나는 온 신경이 곤두서있다.
늘어져있던 내 의식을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이맘때가 명징하게 살아있음을 확인할 때다.
벌써부터 한라산 눈바람이 휘몰아치는데,
이 겨울이 다 지나고 나면 조용필님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절절히 노래할 것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 안의 기운을 끌어 올리려고 우주의 온기운을 불러모으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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