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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성신문

말 한마디, 귤편지

by 농부김영란 2021. 12. 26.

 

 

 


 
"남을 고치려 하지 말고 
나를 고치는 게 낫다는 
자각이 왔다... 둥지에 
작은 평화가 찾아왔다"




말 한마디에 모든 상황이 와장창 깨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며칠 전 <겸손은 힘들어>팀의 일원인 자칭 유리공주님네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안주인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하고 있는데,
나지막한 귀를 스쳐가는 소리. “공주 비위 맞추기 너무 힘들어서 식당 접어야겠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공주님 남편의 소리인데, 우리는 둘 다 그 소리를 들어버렸다.
그날은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서 무지 힘들었노라고 유리공주가 나에게 하소연을 하는 중이었고,
나는 그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내서 훌륭하다고 치하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순간 짧은 정적이 흐르고, 유리공주의 눈빛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공중에서 스파크가 터지고, 노고를 치하 받고 싶던 유리공주는 그동안 쌓인 울분이 폭발하고 말았다. 
아차차... 나는 순식간에 칼로 물 베는 부부싸움에 관객이 되고 말았다.
이럴 때 그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는가?
제3자일 때는 객관적인 입장이 돼서 문제점이 보이고, 해법도 보이지만
당사자일 때는 첩첩이 쌓인 해묵은 감정까지 동원돼 이성을 잃고
오직 나의 감정만이 펄펄 뛸 때가 부부싸움인 것을 나도 경험했기에
이럴 때 그 어느 편도 들어주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마흔일곱 살에 명퇴 당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의 24시간 동거는
나의 지난한 귀농생활 중 가장 큰 고충이기도 했었기에 도를 닦아야 하는 심정을 이해한다.
24시간 함께 하면서 충분히 소통하지 못하고 쌓여가는 불만이 팽배할 즈음에,
내 일생일대의 부끄러운 사건이 터졌다. 

남편도 욕구불만이 쌓였는지 어느 날 아주 사소한 일로 의견충돌이 생겼는데, 
남편이 나를 향해 쌍욕을 했다. 귀를 의심했다.
문제의 본질은 다 날아가고, 오직 그 욕만 내 귓가에서 확대 재해석돼 분해서 참을 수 없었다.
명퇴 당해서 집으로 돌아왔어도 이해해줬고,
무기력하게 손을 놓고 있어도 다 이해해줬건만 나에게 욕을 해???

‘이 수치와 모욕을 고스란히 돌려주마...’

그 순간은 얼결에 되갚음을 못해주고, 나는 다음에 또 그러면 두배로 갚아주어서
어떤 심정일지를 맛보게 해 주리라~하며 그날부터 생전 안 해본 욕을 연습했다.
“절묘한 순간에 강펀치를 날려주마~”

기회가 왔다. 또 남편의 입에서 욕이 나오는 순간,
그 두 배로 내가 욕을 돌려주니 남편이 기가 막혀서 버벅거리다가 옆에 있는 물건을 땅에다가 내리쳤다.
그것도 예견해 준비해뒀지. 옆에 준비해 둔 플라스틱 바가지를 박살내버렸다. 
“욕 들은 기분이 어떠셔~” 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잠갔다.

그 후, 나는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서 다시는 이러지 말자고 결심했다.
이 나이에, 이 무슨 유치찬란한 행각이란 말인가?
남의 편을 고치려 하지 말고 나를 고치는 게 낫다는 자각이 왔고,
가정을 깰 요량이 아니라면 내가 변하는 게 빠르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원하는 것을 맞춰주려고 했고, 남편도 조심하는 태도로 변했다.


그리고 둥지에 작은 평화가 찾아왔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라이프
귤편지■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50)
농촌여성신문  |  webmaster@rwn.co.kr

<귤편지>
 
도시소비자가 모르는 농장 상황을 
귤편지가 실시간으로 전하며 
유기농 농부의 고충을 헤아려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겨울 수확 배송기에 전량 택배를 하는 우리는 회원제로 하면서 고객들에게 격주간으로 귤을 보내드린다.
회원님들께는 1~4차 동안 각각의 상황에 맞게 귤편지를 쓰는데,
매년 다른 기상상황과 귤의 특성, 농부의 애환, 감사함을 편지에 담는다.
귤편지와 회원제는 반디농장의 특징을 설명하는 대명사인 셈이다.
도시소비자가 잘 모르는 농장 상황을 귤편지가 실시간으로 전하며
유기농 농부의 고충을 헤아려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21년 1차 귤편지
세상이 아무리 어수선하고 혼란해도 자연의 시계는 어김없이 제 역할을 해 2021년 햇귤을 결실하게 됐습니다.
올해도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 결실한 귀한 열매입니다.
어려움을 함께 겪고 이겨낸 생명체들의 동병상련. “애썼고, 수고 많았고, 고맙구나~”하고 인사합니다.
긴 코로나19의 터널을 지나오고 나니, 오늘을 맞음이 더 감사하고 먹먹합니다.

회원님, 모두 건강하게, 무탈하게 지내셨는지요?
많은 분들이 혼란 가운데 질서를 찾아가며 일상회복을 하셨겠지만
특별히 더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에 처한 분들도 많으셨지요?
소낙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초췌해졌을 분들도, 다시 좋은 날이 올 것을 기약하며 잘 견뎌내셨으리라~
토닥 토닥 토닥... “힘내세요~” 반디유기농귤이 건강을 채워드릴 거예요.
건강만 하면 견뎌낼 수 있고, 또 좋은 날이 온다고 우주질서가 깨닫게 해 줍니다.


2021년 3차 귤편지
이제 수확과 배송의 반환점을 돌며 3차 귤편지를 씁니다.
이쯤에서는 다리 힘도 풀리고 쉬어가고 싶다는 몸의 소리가 간절하지만,
보폭을 조금 느슨히 조절하면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해마다 귤을 보내 드리면서 쓰는 귤 편지가 우리 회원님들께 보내는 연서처럼 저의 마음을 담고,
귤농장의 상황을 알려드려서 “이 귤이 내게로 어떻게 왔는가...”를 알려 드리지요.
오랜 시간 자연의 혜택도 받고, 시련도 이겨낸 건강한 생명력의 결정체임을 알려 드리지요. 

귤농부가 쓰는 귤 편지의 행간을 읽어 주시고
무언의 응원을 아끼지 않고 함께 어깨동무 해주시는 회원님. 또 힘내어서,
남은 시간 임무 완성하겠습니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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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올해도 진심을 담은 귤편지는 사랑을 싣고 회원님에께 귤과 함께 배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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