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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성신문

언니, 치매는 안돼!

by 농부김영란 2021. 10. 31.
라이프 언니, 치매는 안 돼!■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
농촌여성신문  |  webmaster@rwn.co.kr
  승인 2021.10.29  11:07:24  

 

     

"생의 에너지를 다 퍼서 썼는지
이제 언니는 빈 껍질만 남아서
자신도 잃어버리려고 하고 있다..."







“021551, 99100121535 0125623121!”
“언니, 치매는 안 돼!”
“0120032623 6121815 8812193255 832 02178535 01581210,
83835523  01550218210122  88121!”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인생,
스스로 일어서야 해!”


이 숫자 부호는 치매가 진행 중인 큰언니에게 핸드폰으로 문자 보내기를 가르치려고 내가 만든 숫자다.
요 며칠 큰언니에게 문자를 가르쳐서 쓰게 하려고 문자 쓰는 법을 가르치다가 내 머리가 지진이 났다.

며칠 다니러 온 큰언니의 치매 진행을 막아보려고 앞으로는 문자로 소통해야 한다며 가르치는데,
단순한 글자는 따라오는데 복합적인 글자는 인지가 잘 안 된다.
내 생각으로는 이미 50% 정도의 치매가 진행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78세의 큰언니는 넷째인 나와는 17살 차이다.
어릴 때는 하늘 땅 차이처럼 서열 경계를 분명히 해 동생들이 꼼짝 못하게 군림하는 존재였는데,
내 나이 50이 넘어서니 “알고 보니 종이 호랑이군!” 하며
발칙한 동생인 나는 장유유서가 물구나무를 섰다며 경계를 무너뜨리곤 했다.

시대의 변화를 못 따라가는 언니가 답답하고, 대화가 잘 안 되는 것을 날이 갈수록 느꼈는데,
몇 년 사이 해마다 인지능력이 감퇴하고 몸도 쇠약해지면서 매년 10%씩 퇴화한다고 느껴졌다.
지난해는 큰언니의 하나뿐인 아들이 뒤늦게 아들딸을 낳아서
손자손녀 돌보느라고 해마다 귤 따러 오던 것을 건너뛰고 올해 2년 만에 만났더니,
그새 20%의 치매가 진행돼서 내가 보기엔 50% 정도의 치매 수준이 된 것 같다.
옆에서 본 지인들도 심각하다고 말한다.

치매를 막을 방법이 있을까?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주고받는 대화가 원활치 못하고),
금방 주고받은 대화를 기억 못하고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말만 되풀이 한다.
시간이 멈춘 듯, 현실과 5차원 세계의 경계에서 오락가락 하는 것 같다.

6.25전쟁 전에 태어난 세대가 겪은 인생여정이 순탄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마는
큰언니는 독특한 성격 때문에도 인생이 더 힘들지 않았나 싶다.
젊은 날 자존심과 기상으로는 주변에 따라갈 자가 없었는데,
현실은 따라주지 않으니 성격이 왜곡된 부분이 많아졌고,
독불장군 성향이라서 사람들도 큰언니와의 소통을 기피했었다.
남편의 외도도 있어서 큰언니는 이혼을 하고 혼자서 아들 하나를 키웠다.

갖은 고생을 하고 꿈을 이루려는 순간, 성공의 직전에 또 다시 좌초해
그 충격으로 쓸개즙이 간을 덮는 화병까지 얻어서 몇 년을 병원에서 투병하고 살아났다.
파란만장했던 한 사람의 인생을 어찌 몇 줄의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그 이후 큰언니는 서슬 퍼렇던 자존심도 빛 바래가고,
날개가 꺾인 짐승처럼, 연민의 대상으로 변해갔다.
인생 굽이굽이에서 생의 에너지를 다 퍼서 썼는지,
이제 언니는 빈 껍질만 남아서 자신도 잃어버리려고 하고 있다.

이 난관을 어떻게 넘지? 하고 고민이 깊어가는 요즘.
노인문제는 가정이나 국가나 큰 문제인 것 같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웰빙(well being)하고, 웰다잉(well dying)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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