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농사는 어떠셨습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나누는 인사는 걱정반 농사 인사다.
선뜻 대답이 안나와서 머뭇 거리다가
"뻐근 합니다"
일년내내 가슴에 통증이 지리하게 오는 것을 누르며
하늘을 쳐다보며 보냈던 나날들이었다.
지난 겨울부터 봄, 여름 내내...
올해는 살아남아 지금 얼굴을 드러내는 아이들은 모두 유관순 귤이다.
그래도 요즘 가을빛이 완연하면서 햇볕나는 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하루가 다르게 색을 내며 제 할일을 열심히들 하고 있다.
햇살이 가득한 날은 나도 행복해진다.
이겨낸 자들의 축제.
이팔청춘 한창 나이에 고3이란 단어만 대비되면 처연해지는 대한민국 고3.
우리 회원님들중에 고3수험생이 몇명 있다.
고 3 수험생이라고 알려준 아이들 이름을 유관순 귤나무에 높이 걸었다.
그 중에 현수엄마는 올 여름 항암치료가 끝났다고
그동안 아이 뒷바라지를 못해주어서 미안하다고 수능대박기원 귤나무를 신청했었다.
엄마의 그 마음이 전해져 와서 나도 한동안 또 가슴이 뻐근 했었다.
그런데 여름내내 날이 궂어서 귤들이 초췌해 보이니
팡파레를 울려 줄 수가 없었다.
이제사 귤나무도 그 오랜 시련을 이겨내고 환한 얼굴을 드러내니
그 기운을 받아서 우리 아이들이 모두 소원성취 하라고
수능대박 기원 플랭카드를 하늘 높이 걸었다.
"현수야, 은솔아, 예슬아, 창민아~~~유관순 귤나무도 해냈데이.
너희들도 수능 왕대박 나거라~~~반디농장 귤이 익는대로 1번으로 보내줄께~~~"
봄에 꽃눈이 필때 냉해가 와서 모조리 꽃눈이 얼어서
꽃이 피지 않은 효돈밭은 거의 전멸이다.
그나마 열흘정도 꽃눈이 늦게 오는 호근동 밭 귤나무들도 고군분투 하였다.
지난 겨울 혹한에 체력이 약해진 나무들이 간신히 피워낸 꽃들.
봄 내내 여름 내내...어찌도 그리 비가 오는지...
비가 안 오면 매일 흐리고...
햇볕 나는 날이 손 꼽을 정도였다.
소독해도 돌아서면 비가 오니 소독 효과도 별로 없고...
그러다가 여름 막바지에 햇살이 너무 내리 쬐어서 또 일사로 터지고 화상입고...
이상기온현상이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무분별하게 지구를 마구 훼손시킨 댓가라는 것.
우리 몸도 무분별하게 무차별하게 마구 섭취한 먹거리로하여 병에 걸리듯이
지구도 성찰없이, 눈 앞에 이익만 바라보고 아껴주지 않은 댓가를 앞으로도 그 댓가를 치룰것 같다.
다 키워서 막바지에 일사로하여 또 이렇게 낙과하고...
마지막까지 버티어 준 귤들은 그야말로 보물인 셈이다.
관행농사를 하는 이웃밭을 둘러보니 이런 낙과는 별로 안 보이는데...
친환경 농사는 농부도 나무도 몇배의 수고와 노력을 하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내 귤을 드시는 분들은 모두 친환경 먹거리가 어떻게 생산 되는지를
함께 고민해주고, 귀하게 여겨 주셨으면 한다.
다 익어서 노랗게 된 것이 아니고 표면에 상처를 입어서 노랗게 된 귤이다.
요즘은 귤나무에게 잘 발효된 콩퇴비와 천일염을 바닥에 주었는데
콩퇴비 준 자리에 이렇게 토착미생물 덩어리가 잘 발효해 주었다.
유용한 미생물을 온 밭 가득히 번식시켜서 땅이 살아나게 하고
귤맛도 풍부하고 깊게 하기 위해서다.
바닥에 하얗게 번식한 토착 미생물 덩어리들.
메주가 잘 뜨거나 김치가 아주 맛있게 발효된 것과 같은 것이다.
흙을 파보면 지렁이가 어찌나 많은지 한 삽 뜨면 수십마리가 따라 올라온다.
꽃처럼 피어있는, 하얗게 피어나는 토착 미생물 덩어리.
땅이 살아나야 나무가 건강 해진다.
나무가 건강해야 병해충을 스스로 이겨낼 수가 있다.
요즘은 생선액비, 키토목초액, 광합성 세균, EM5호(현미식초,과실주,EM, 당밀로 발효),천일염,유용미생물
등을 일정비율로 배합하여 10일 간격으로 관주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내가 만든 유기농귤효소액비를 영양제와 함께 관주하려고 한다.
친환경 농사는 일이 끝이 없다.
그래서 지인들과도 비오는 날 만나자고 하지만 비오는 날은 또
밀린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서 사람 만나는 일이 쉽지않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길.
들뜨면 초심을 잃을까봐 스스로에게 찬물을 끼얹곤 한다.
그래서 농심을 헤아려 달라고 늘 부탁하게 된다.
친환경 농사를 하니까 벌레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살충을 하는 농사가 아니니까 벌레가 많고
벌레가 많으니 새들도 많고 거미도 많다.
귤밭을 한바퀴 돌면 거미줄로 휘감는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거미들의 패션도 가지가지.
거미열전도 올려본다.
내세상
살 통통
포식자
뻐근한 올 한해 농사도 이제 막바지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달여쯤 후에는 올 한해 시련을 이겨낸 귤로서 인사를 드리러 갈것이다.
그 안에 내 마음 담아서.
그리운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주소를 정리 하면서 한분 한분 떠올려 본다.
고마운 내 마음을 전하려고 준비한 <하늘빛 귤사랑>도
언젠가는 모든 회원님들께 혜택을 드릴 것이다.
내가 체력안배를 하느라고 쉬엄쉬엄 가더라도 마음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고 전한다.
2010.10.12 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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