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피곤해도 잠이 오지를 않는다.
초저녁부터 졸음이 몰려오기 일쑤인데 오늘은 팔목도 시큼거리고
얼굴은 햇볕에 달아올라서인지 피곤해서인지 화끈거리는 열이 내리지를 않고
입안도 깔깔하여 벌써 몇잔째 갈증을 가라앉히려 물을 연신 마셔대고 있다.
피로가 수위를 넘어섰다는 징조이다.
몸은 무거운데 잠은 오지를 않으니 손가락마디도 욱신거리지만 이럴때는 차라리
그동안 못 쓴 농사일기라도 쓰는게 낫겠다싶어 컴퓨터에 앉았다.
이번주에 효돈밭, 호근동밭 두개를 모두 전정을 끝내려고 작심했는데
중간에 조금씩 일이 차질이 빚어지는 바람에, 그리고 효돈밭을 거의 환골탈태 수준으로
강전정을 하느라 일이 많이 더디게 진행 되었다.
효돈밭(무농약밭)은 작년에 내가 관리하면서 지켜 본 결과
올해는 심하게 해걸이를 하게 생겨서 수확량이 1/3정도도 될지말지 한데다가
나무 나이도 많아서 아주 강하게 전정하리라 맘 먹었기에
2년정도 거의 새로 만들 각오를 하고 키를 절반으로 낮추고
묵은 가지도 과감하게 거의 다 잘라 내었다.
이번주 내내 효돈밭 전정에 매달려서 내가 생각해도 심하다싶게
사통팔달 햇볕 안들어가는 구석이 없이 휑하게 전정을 해대니
남편은 한걱정을 한다. 귤을 하나도 못 딸가봐 걱정인데
느느니 뱃살이요 똥뱃짱 6학년 농부는 내가 이렇게 대수술을 하려고
귤밭까지 하나 더 장만했는데 무슨 걱정이야~하면서
거의 일주일을 매달려 잘라댄 가지가 오늘 치우면서보니
가히 집 한채쯤 잘라댄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어마어마하게 잘라 내었다.
혼자서 다 전정을 하기에는 너무 벅차서 이번에 새로 장만한
밭은 전정 기술자를 썼는데 가지 치는 기술자 두분이서 이틀을 하고
자른 가지 치우는 것은 남편과 나 둘이서 했는데
두사람 일당이 20만원에 점심값 담배값등등 50여만원 지불했는데
내가 자른 가지가 그 두배보다도 더 많으니 일주일새 내 일당으로 치면
70-80만원은 벌은 셈인데 남이면 이렇게 과감하게 전정은 못했을 것 같다.
남들은 내가 전정까지 한다고하면 반신반의 한다.
농사를 내가 온전히 다 짓고 수확과 판매를 다 한다고해도
긴가민가하는 눈으로 바라보곤 하는데 더구나 전정까지 다한다는 사실에는
믿고싶지도 않고 믿어지지도 않은 눈치인데
지난 5년간도 나는 한번도 전정 기술자를 초빙한 적도 없고
단 한번 이영민 선생님께서 호근동 유기농 밭에 오셔서 시범을 보여 주신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선생님이 너무 많이 자르시는 것 같아서 아야~아야~하면서
내 팔 자르는 것처럼 엄살을 부리며 잔가지 하나 자르는데도 벌벌 떨었는데
갈수록 내 전정이 과감해지면서 올해는 그야말로 대수술을 집행한 것이다.
"누군 태어날때부터 기술자였나~"하면서
도전 정신 하나는 가히 국보급인 내가 농업 기술원에서 전정 교육 한번 받고부터
내 밭은 나의 전정 실습장이 되어서 그동안 기술자가 보면 혀를 찰 수준이었겠지만
정해진 기술이란게 어디있어~하면서 귤 맛있고 잘 달리면 되는거지~하면서
여기까지 내쳐 달려 왔는데 올해는 심하게 해걸리를 하는 해이기도 하여
작심하고 환골탈태 전정을 감행 하였다.
전정의 기본은 무조건 햇볕 잘 들게 하는 것.
그 어떤 가지도 햇볕을 가리는 것은 무조건 처단하기.
어치피 나무에서 직접 수확해서 내보내기로하여 해걸이는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2년에 한번 수확하는 귤이 되는 것이라 맛을 내는 최고 조건은 햇볕이고
많이 달리는 것보다도 최상의 품질이 되기를 원하기에
점점 더 과감한 전정을 하게 되었다.
해걸이를 시켜 2년에 한번 수확하기.
일부러 눈 맞히고 나무에서 수확하여 내보내기.
겨우내 나무에서 갓 수확하여 내보내기...
등등...지금까지 관행의 방식과는 역행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도전하였다.
<귤농부는 귤로서 말해야 한다>며 나의 봄 날도 여전히 하루해가 짧기만하다.
나는 전정을 하고 남편은 예초기로 벌써 한길이나 자란 풀을 깎아 주었다.
봄날은 지표면을 따뜻하게 해주어야 빨리 개화가 된다하여
예초를 하였는데 작년에 일일이 다 뽑아 주었던 산딸기나무가
뿌리로 번식하여 갈수록 기승을 부리니 할 일은 많고 다 하자니 맘이 급하여
일단 예초기로 제압을 해놓고 짬짬이 뽑을 예정인데
딸기뿌리가 옆으로 한없이 뻗어 나가서 작은 잔뿌리만 남아도
다시 살아나서 산딸기밭이 되려하니 일이 해도해도 끝이없는 이유중에 하나가 되었다.
관행농 같았으면 제초제 한방이면 끝나버릴 일이지만
이렇게 질기게 번식력 강한 놈들과의 끝없는 전쟁을 치루면서
몇배의 수고를 쏟아야하는게 유기농 농사라는 것을 소비자들이 다 헤아려주셨으면 한다.
믿음이 가는 유기농산물은 너그러운 맘으로 귀하게 여겨 주셨으면 한다.
(무늬만 유기농도 있기는 하지요.방치된 채 수확하는...)
전정을 하면서 지난해 나무에 회원님 이름 건 것을 수거하면서
한분 한분 떠올린다.회원님에 가족들까지...
미소짓게 하는 이름들이 많다.
호주로 유학가는 딸이 엄마께 깜짝 선물로 드린다며 신청했던 귤나무.
고마운 분들께 겨우내 귤나무에서 갓 딴 귤을 보내 드리고싶다던 선물 귤나무.
신부님 건강기원 귤나무,
사시합격 기원 귤나무,
대입합격 기원 귤나무.
스님께 공양 선물로 드리는 귤나무.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께 드리는 귤나무.
너무 고마운 지인에게 겨우내 유기농 귤을 보내 드리고 싶다며 신청한 귤나무.
그리고...처음 취직하여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선물로 드린다는 귤나무.
심지어, 분신처럼 아낀다는 고양이에게 주는 선물 귤나무까지...^^
내 가족이 먹을 귤만이 아니라 내 친구, 내 고마운 분들께 드리려고 신청한 귤나무들...
그 이름 하나 하나 되새겨 보면서 올해도 한달후면 나무에 한분 한분
사연을 떠올리며 이름을 달 생각에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절로 행복해지는 날이었다.
2010.4,18 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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