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핑계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집에서 뒹굴거릴 요량인데
어느새 비는 그쳤고 컴 앞에만 앉으면 눈이 게슴게슴 가물가물해지는게
도통 집중이 되지 않으니 글도 아닌 수다마저도 감흥이 안난다.
영양가없는 블로그를 다녀가 주시는 고마운 분들께 상큼한 안부라도 올려 드려야겠는데
며칠 호되게 몸살을 한 휴유증인지 몸은 늘어지고
눈은 자꾸만 감기고 마음은 절절 끓는 방에서 하루종일 뒹굴라고 속삭이지만
잠자는 시간도 아니니 잠은 오지를 않는다. 춘곤증인지...
몸과 마음이 심하게 휘둘려서 정신이 혼미할만큼 앓고나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찌꺼기 덕지덕지 묻었던 타성들을 떨구고 부시시 일어나서
다시금 추스리게되니 앓는 것도 때때로 필요한 정화작용인것 같아서
일년에 두어번은 이렇게 호되게 앓는 연례행사를 달게 받아 들인다.
어수선한 3월을 농부로서의 직무유기를 한 탓에 맘이 급해진 4월에
밀린 일을 몰아서 하느라 그예 수위를 넘어서 버렸나부다.
웬지 몸도 무겁고 맘도 무거워서 빡세게 일을 해서
2kg쯤 살이라도 빼야 홀가분할 것 같아서 기세좋게 호기를 부리다가
그날부터 호되게 몸살을 앓게 된것이다.
역시나, 미련한 짓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지천명의 이치를 헤아린다며
문자 좀 써보지만 말짱 도루묵,여전히 우매한 급한 성정이 운명을 좌우한다.
봄에는 준비할 일이 많은데 오지랖 넓은 성격이다보니
주변에 온갖것까지 신경 쓰느라 하루도 안 바쁜 날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심한 몸살을 하면서 부득이 드러누워야만 나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여유를 갖게되니
몸살은 내게 필요악이기도 한 것 같다.
손끝마디까지 안 아픈 구석이 없어서 숨을 못 쉴 정도가 되면
그 혈기 왕성하던 기운들이 시나브로 잦아들면서 내게 일러준다.
나의 미련함과 나의 융통성없는 고집을 돌아보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탐욕이 과해져서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른이들이 부대끼게하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과욕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할 여유없이 욕심에 나를 내맡기다가 맑음을 잃어 버리게 될까봐 뒤돌아보게 된다.
내가 소소한 잡다한 일로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을때
나의 텃밭에서는 이미 온 봄을 한껏 맞고 게으른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귤수확과 판매에 매진하다가 미처 수확도 못해서 겨울을 넘기고
봄을 맞아서 꽃이 되어버린 알타리무우, 배추등이 나의 지난 겨울을 반성하게 한다.
심기는 부지런히 심는데...거두지도 못하고 방치된 채 꽃이 된 아이들이 텃밭에서 아우성을 하고 있었다.
일에 순서가 있으니 몸살을 털고 일어나서 비 그친사이
올해도 다시 모종을 심을 준비를 하였다.
기특하게도 작년에 씨앗을 뿌리기도하고 모종을 사다 심기도 한 곰취는
아주 튼실하게 내 봄날 허기를 달래줄 만큼 실하게 자라고
몇뿌리 얻어심은 머위도 꽤 많이 번식해 있었다.
3년전에 두어쪽 얻어 심었던 강황은 작년에 서너배로 번식하였고
지난겨울 미처 캐지도 못하고 땅속에 있는 것을 이제사 다시 파서 쪽을 내어 심으니
올해는 향신료로 쓸만큼 수확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곰취, 머위, 당귀, 부추, 방아잎, 구절초...
내가 궁금해하던 종류의 토종 향신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나의 향수와 갈증을 달래주고 있다. 그새 제법 여러가지가 모였다.
세월이 쌓인 흔적이다.
일부러 꽃을 심지 않아도 평소에 먹거리가 되는 야채들이
봄에는 기가 막히게 이쁜 꽃들을 피워내니 일석이조.
일부러 꽃 사다 심을 일이 없다. 예쁜 꽃 안 피우는 것이 없다.
그래서 이제는 꽃만 보는 나무나 일년초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꽃도 보고 먹기도 하고 열매도 맺는 그런 종류가 좋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보다 내 생활에 요긴하게 쓰이는 것들이 이쁘다.
파꽃도 이쁘고 부추꽃도 이쁘다.
쑥갓꽃도 너무 이쁘고 배추꽃도 이쁘다.
갯무꽃도 방아꽃도 당귀꽃도 이쁘다.
먹기도하고 꽃도 보는 이들이라서 더 이쁘다.
꽃을 피우고 씨앗도 주니...이런 기특한 것들이 있나~
알타리 무우를 미처 거두지 못해서 이런 꽃을 마구 피웠다.
벌들이 웅웅거리며 신이나서 일을 하고 있다.
갑자기 벌들이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을 보니 그들의 먹이가 탐나서
벌통을 하나 갖다놔~하는 욕심이 또 고개를 든다.
욕심을 버리는 길이 내 명에 살길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얼마전 입적하신 법정스님은 키우던 난 화분 마저도
구속이요 욕심이라며 지인에게 건네고 무소유의 맑은 삶을 일깨워주심에 고개가 끄덕였음에도
견물생심은 언제든지 달려와서 유혹하는 떨칠 수 없는 욕망.
아무래도 벌통 하나 갖다 놔야겠어~^^벌들을 보니 드는 생각이다.
유채가 아니라도 나도 이런 꽃을 피운다구...배추가 말한다.
나를 꽃피기전에 다 먹어 버려서 그렇지, 나도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운단 말이야.
가을에 김장한다고 심었던 배추를 봄까지도 못 거두고
꽃이 되게 하였더니 이렇게 배추꽃도 이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내게는 쉰고개가 보릿고개인지...봄 내내 몸살을 달고 가느라
텃밭은 꽃밭이 되어 버렸다.
청개구리...
너를 보니 왜 엄마가 생각 나는지...
불효자는 웁니다~
마산으로 이사가서 한동안 살았던 큰언니네 집에 갔다가
잊을수없는 맛의 된장찌게가 생각나서 물어보니 방아잎을 넣은 된장찌개라 했다.
추어탕은 잘 먹지 않아서 모르겠고(방아잎이 추어탕에 들어간다는데)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된장찌게에 열광하면서 맛난 된장찌개를 그리워했다.
내 기호가 독특한 향이 나는 야채들을 좋아해서인지 방아잎 넣은 된장찌개가 좋았는데
아이들은 싫다고하니 누구나 좋아하는 맛은 아닌가부다.
삭힌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과 기겁을 하는 사람의 차이처럼.
기어이 방아씨도 구해서 작년에 키운 것이 올해는 이렇게 실하게 나오고 있는 중이다.
장아찌를 만들어 볼 요량인데...내가 또 어느 세월에 할지는 모르겠다.
나이를 먹어가니 곰삭은 맛,
세월이 켜켜이 쌓여서 정갈하게 다듬어진 멋이 그리워진다.
세월이 쌓여서 멋스러움을 자아내는 것들이 좋다.
사람 관계도...오래 곰삭아서 자잘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사이가 좋다.
텃밭도 귤밭도 어느새 내 몸의 일부가 된 듯 편안해지는 것이 세월이 쌓였구나~하고 느껴진다.
2010.4.22.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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