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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밭

하늘빛 귤사랑

by 농부김영란 2010. 1. 23.

 

마음에 열이 많은 한 여자가 있었지요.
그녀는 어릴때부터 꽃만 보면 뻑~가는 여자였읍니다.
꽃이나 초록빛 식물이 없으면 숨을 잘 쉬지 못하는
정서불안이 되는 중증 환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녀가 25년 서울 생활을 하면서 작은 숨이라도 내쉴 수 있었던 것은

방 한칸 셋방을 살아도 절반의 짐은 늘 화초였기에  건조한 정서를 달랠 수가 있었지요.

그녀는 전생에도 농부였거나 화원을 했거나 아니면 아예 꽃이었거나

(어머나 그러고보니, 이름자에도 난초꽃(英蘭)이라는 이름이었군요)

그랬을것 같아요. 그녀에게 온 꽃들이나 식물들은 물만 주어도 잘 자라고

남이 버린 다 말라 죽어가는 꽃들도 그녀에게 오면 싱그럽게 잘 자라곤 했지요.

그런 그녀가 회색빛 건물로 둘러싸인 도시생활에서도 근근히 생명유지를 할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살림살이 절반은 늘 화초들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서울에서 이런 생활을 했다니... 보통 재력이 아닌가벼~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옥탑방 전세(2천만원에서 출발)에서 출발해서

3년이 되기전에 17평 다 쓰러져가는 20년이 넘은 연립주택으로

최초의 내집마련을 했었네요. 하룻밤에 끈끈이 쥐잡이로 다섯마리나 쥐를 잡던

잠자는 머리맡으로 쥐가 뛰어 내리던 집이었어요.

그 집에도 두평정도 마당이 있었는데 흙만 보면 가만 있지 못하는 제가

그 곳 또한 정원을 만들었었지요.

남들이 소위 달동네라 부르던 봉천동 아지매 시절이었어요.

 

위 사진은 그 쓰러져가는 집이 2년후에 빌라로 재건축 되고서

그 새빌라에서 3년 살아보니 숨이 막힌다며

다시 30년이 된 정말 쓰러져가는,

 마당있는 집과 바꿔치기하여 살던 저의 서울집 마지막 집이었지요.

주변 아파트값 정도에(강남도 아닌, 목동도 아닌, 봉천동 아파트) 50평 단독주택으로 이사한거였지요.

 

마당에 있던 한그루 감나무에서 나뭇잎이 지저분하다고 마당을 시멘트로 단장한,

이집을 지으면서부터 사시던 할머니가 집을 가꾸지를 않아서

 주변에 위세등등하게 들어선 빌라들에 둘러싸여

초라하기 그지없는, 불쌍하게 보이던 남루한 쓰러지기 일보전의 집이었어요.

하지만 제게는 마당이 있다는 이유로...

오직 마당이 있다는 이유로, 번듯한(^^) 새 빌라를 팽개치고 쥐들의 천국,이 집으로 이사했어요.

 

 

 그 집이 저를 만나 환골탈퇴 하였지요.

마당에 깔려있는 시멘트를 저는 정으로 다 깨어서 산에서 흙을 퍼다 부었어요.

차도 없었던 저는 아이들 유모차에 흙을 자루에 퍼다가 실어 날랐어요.

2월에 산 집을 그해 이미 마당을 다 바꾸어 버렸지요.

그동안 화분에다가만 갈증을 달래던 제가 한뼘 땅이라도 생겼는데 싶어서

으악~ 소리가 나게 나무들을 사다가 심었어요.

여백이라는 것은 경지에 이르렀을 때 떠오르는 단어지요.

갈증에 시달린 제게는  그동안 심어보고 싶던 꽃들은 다  심었어요.

 

 

서울 도심에서 시골살이를 재현했어요.

저의 기행(^^)은 거기서 멈추지를 않고 달동네 재개발 하는 곳을 어슬렁 거리며

넝마주이처럼 단지들을 긁어 모았어요.

조 위에 장독대가...제가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모은 단지, 약탕기, 소금항아리 등등...

예나 지금이나...제 안의 열기가 식을 줄을 몰랐지요.

이렇게 쓰러져가는 집을 2년동안 옥토로 바꾸어 놓고

저는 제주도 설문대 할망님의 계시였는지 이곳으로 발령이 난 남편을 따라 제주도로 왔어요.

심혈을 기울였던 저 집을 가꾸기만 하고 세를 주고 떠나오면서

저는 삶의 이치를 깨달았어요.

이렇게 만들어 놓고 누리지를 못했다고 안달하지 말고, 그동안 가꾸는 즐거움을 누렸지 않은가?

 

저는 열심히 만들고 그 이후 세입자가 그 풍경을 몇년 더 누렸지요.

그리고 재작년에 이 집은 저와는 영영 이별을 고했어요.

제가 서울로 되돌아 가는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다가 그 보다 수십배가 큰 귤밭으로 바꾼거예요.

저의 귤밭이 어느날 갑자기 귀농을 결심한 사람에게서 나온 작품이 아니랍니다.

이렇듯, 아주 오랫동안, 운명적인 만남처럼 식물을 사랑하고, 식물과 대화를 통해

그 마음을 읽어내던 한 여자가 본능적으로 이끌림에 의해 탄생한 반디농장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이곳에 처음 와서도 겨울에 지천에 야생화가 피어있는 모습에

제가 혼미해져서...매일같이 쏘다녔지요.

처음에는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날마다 헤메고 다녔지만

몇달이 지나자 저는 작은 풀꽃들의 세상에 또 심취했었지요.

 

이제는 꽃을 가꿀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지천이 꽃이고 사계절 꽃인 서귀포에 왔으니까요.

한라산엔 킬리만자로의 눈처럼 하얀눈이 덮고 있어도

아랫마을 서귀포는 제비꽃도 볼 수가 있고 엉겅퀴도 볼 수가 있고, 꽃향유도 볼 수가 있는 이 곳에...

내 운명의 자석처럼 이 곳에 이끌려서 귤농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농부의 세월이 만만치가 않았어도 체력의 한계를 극복해 나오면서

이겨 나올 수가 있었고, 나무를 사랑하고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늘...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 된 것 같아요.

 

 

 

귤나무와 만나고나서 꽃에 대한 갈증이 없어졌습니다.

잘 생기고 튼튼한 귤나무가 봄이면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그 예쁜 귤을 주렁주렁 달아서

저를 일년내내 키우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가 도시에 살면서 건강이 늘 유약했던 것을 이 곳에 와서

농부로 거듭나면서 야생의 건강한 생명력을 흡입하면서 제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읍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추구하여 도시의 내 이웃들에게

내가 도시에서 살때 그리워하던 것을 충족시켜주고

그들이 찾는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여 보내주고

그리움이 가득차면 언제나 달려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의 하늘빛 귤사랑이 멈추지 않게 끝없이 보내 주시는 응원에 힘 내어서

어제도 , 오늘도, 내일도

우직한 소처럼 뚜벅 뚜벅 걸어 가고 있습니다.

 

2010.1.23 英蘭

 

올 연초에 귤밭을 하나 더 장만하여서 귤 수확량을 가늠하지 못하여서

아직도 귤이 많이 있네요.

울 과수원이 화수분처럼 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이제는 귤 막바지 수확중인데 구정때까지는 귤 보내 드릴 수가 있읍니다.

시중에 흔하지 않은 친환경 귤...주변에 널리 홍보해 주시면 감사 드리겠습니다.

수확량을 가늠치 못하고 초기에 홍보를 하지 않아서 저희 귤이 없는 줄 알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귤, 너무 많아서 이제는 고민이예요.에궁...이래서 고민 저래서 고민...

아마도 2010년에는 귤이 모자라서 또 고민하지 싶어요.

해걸이를 심하게 하는지라...(이래저래 세상사 만만치가 않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