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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유년의 추억 1 (국민교육현장))

by 농부김영란 2016. 10. 1.


"응답하라,1988" 드라마 시리즈를 보면서 재미 있었다.

빛바랜 먼지 냄새 나는 책장을 넘기는 기분이었지만

소품들이랑 주인공들이 입은 옷, 행동, 말등이 그 시절의 나로 되돌아가게 하여

깊은 생각없이 편하게 볼 수 있었다.(요즘 드라마는 꼬고, 비틀고, 과거로 현재로 날아 다니니

돌머리를 굴려야 간신히 이해할까 하는데^^)


과거를 반추 한다는 것은 나이를 들었다는 증거이다.

젊은 날은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움켜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시기였다면

중년을 지나 노년의 시기에 접어 들면  살아온 날이 더 많아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그리워하며

좀 더 노년에 들어서면 아예 과거만 곱씹고 사는 세월이 되는 것 같다.

나도 어느새 노년의 시기에 접어 드는가 싶은 것은 몸이 말해 주기도 하고

종종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여서이다.

맹렬히 앞을 향해 전진 하다가, 멈추어 서서 서성 거리며

 지나간 과거를 뒤돌아 보는 것.

 그 증상이 노년에 접어든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좀 더 명확하게 구분 짓는다면 "꿈 꾸지 않는 것"...그것이 노년이라고 생각한다.

신체 나이가 노년이 아니고 정신 나이가 노년인 것은 "꿈꾸지 않고 더이상 도전하지 않는 것"이

노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는 꿈 꾸는 것은  왕성하니 마음은 늘 청춘일 것 같다.

(몸과 마음의 경계를 잘 조율 해야겠지^^)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면서 나도 나의  과거로 날아 갔다.

1988년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올림픽이 열리는 해였어서

나는 요리사가 되기위해 공부하고 있었으므로 잠실 올림픽 경기장에

요리사로 자원 봉사 나간 시절이었었다.

나의 1980년대는 20대였고,홀로서기위해 안간힘을 쓰던 시기였었다.

1970년대는 우리나라가 가난에서 벗어 나려고 안간힘을 쓰던 부흥의 시기였는데

나는 꿈을 키우는 청소년기였다.

"국제시장"영화에서 보던 우리나라를 부흥시킨 주역의 부모님 세대가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역동적인 시기였었다.


나는 1961년에 태어 났기에 베이비부머 세대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가 전쟁의 페허를 딛고 일어서면서 어둠속에서 빛의 세계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는 시기를 살아 왔다.근대사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를 함께 걸어온 셈이다.

1968년에 " 국민교육현장 "이 발표되어 전 국민이 암송하며

매일 정신무장(^^)을 하며 "으쌰 으쌰~ 잘 살아 보세~"를 외치던 시기였었다.

"국민교육현장"과 "새마을 운동 " 노래는 매일 매일 암송해서 지금도 다 기억난다.


"국민교육현장"

"우리는 민족 증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인류공영에 이바지 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반공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년 12월5일 대통령 박정희


나의 초등 1학년 때 발표 된 국민교육현장.

3학년인 언니는 그것을 외어야만 했어서 10리 길 학교를 오가는 길에

매일 외웠기에 옆에서 따라하던 나도 다 외워 버렸는데

그때는 뜻도 모르고 외웠지만 지금 다시 되새겨보니 가슴이 마구 뛴다.

읽어 내려 가기만 해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보니

이런 정신이 내 삶에도 크게 영향을 준 것 같다. 

내용이 지금 읽어 봐도 좋아서 다시 기록을 위해 전문을 올려 본다.

그 누가 뭐래도 박정희 대통령이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초석을 만드신 분이시다.

좌익과 우익, 폐허가 된 나라에서 우유부단한 사람이 정치를 했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도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보다 더 잘 살지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하며 온 동네가 떠나 가도록

확성기를 틀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부르게 된

새마을 노래 등도 지금은 추억의 노래이지만

오늘날 자원도 없는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살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다양성과 개성이 강조되고 개인주의가 점점 팽창하여 우리나라가  걱정될 때가 있지만

월드컵 등 우리나라를 응원 할 때 보면 여전히 우리 안에서 한민족의 뜨거운 피가 끓고 있음을 보았다.

나는 개인적으로도 집이 망해서 가난의 수렁으로 떨어져 헤쳐 나오는 과정을 겪었기에

스스로에게 이런 정신무장이 없으면 운명을 개척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 시절의 국민교육현장과 새마을 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사는 마음이 되었다.


"새마을 노래"

1.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2. 초가집도 없에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3.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 증대 힘써서 부자 마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4.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조국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어찌 보면 좀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노래 가사이기도 하지만^^)


부모님 세대가 전쟁의 폐허에서  흙투성이가 되어 논밭을 일구고 공장을 만들었다면

우리 세대는 그 공장에서 밤낮으로 일을 하여 오늘날의 부흥을 일군 세대였다.

나의 유년기와 청년기의 시대는 대외적으로는 이런 배경이었지만

내 추억속의 고향과 유년은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동네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 던 때가 그립습니다~"

그런 향수가 샘 솟는다.


고향과 추억은 아무리 고생했어도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

내 머리속에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기억들을 불러와서  이제 이야기로 남겨 보려 한다.



이태수 화백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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