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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내 눈에 티끌

by 농부김영란 2016. 9. 28.



다혈질인 나는 감정의 반응이 너무 빨리 와서

살면서 힘들었을 때가 많았다.

남들이 잘 못 느끼는 것을 빨리 느끼는 게 장점이기도 했지만

대체로 예민하고 섬세한 그 감정은

사는데 불편함과 부대낌을 더 많이 준 것 같다.


"한번 참으면 석달이 평온하다" 는 말이

"한번 화내서 석달이 괴롭다"로 귀결 된 경우가 더 많아서다.

아주 가볍게 즉각 반응 하는 것은 아닌데

서서히 반응하여 소처럼 되새김질 하고, 곱씹고 하는 성질이 있어서

화 나는 일이 있으면 가볍게 흘리지를 못하고

속에서 들 끓고 부대끼고...심지어...늪에 빠져서 허우적 거릴 때가 많았다.

겉으로는 소처럼 웃고 있으나, 속으로는 승냥이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분노를 이글 거릴 때도 많았다.

좋게 해석하면 정의감과 의협심이 많은 것도 있어서인데

나쁘게 해석하면 넉넉하지 못하고 옹졸한 품성에다가 자만심이 뼛속까지 스며있기도 해서였다.

쓸데없이 예민하여 남의 눈에 미세한 티끌까지도 다 보이는 것도

축복의 성품이 아니라 천형이기도 했다.



젊은 날 그 성질때문에도 삶이 더 힘들었어서

나는 나를 무디게 만들려고 애 썼다.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내가 오히려 무엇하나 진득이 한우물을 파지 못하여

원숭이처럼 잔재주만 부리다가 제대로 하는게 없다는 자각이 와서

"단순하고 무식하게~"란 모토를 내 인생에다가 적용하려고 애 썼다.

 유기농 농부로 10년을 넘길 수 있었던 것도 스스로에게 자꾸 주문을 걸었기 때문이다.^^

잔재주, 잔머리로 하지 말고 미련한  듯,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이룬다며

내게 계속 주문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예민했기때문에 머리속은 총알같이 반응하여

둔한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까지 생겨서 내가 시련을 겪지 않았더라면

참으로 인간이 안될 뻔 했었다.

청년기에 우리집이 몰락하면서 한 때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었는데

부정적인 시각에 머물러 있는 내가 너무나 힘들었다.

세상 모든 것이 부정과 긍정의 양면을 가지고 있는데

부정의 시각이 먼저하여 비판이 앞서고 불만이 터져 나오고...

그런데 그런 상태가 되니 가장 힘든 것은 바로 나였다.


내 눈에 티끌은 모르고 남의 눈에 티끌이 보여서 비판, 지적, 충고를 하게 되니

표정도 경직 되고, 마음은 지옥이 될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태생적으로 교만도 하였지만 밝기도 하여서

가끔은 내 모습도 잘 보여서 반성도 잘 하는  장점도 있었다.

상대방의 단점이 보여서 충고를 하고나면 상대방이 그 감정을 추스리기도 전에 나는 벌써 반성이 와서

먼저 사과하기 일 쑤고 자아비판을 하여서 꼬리를 내리는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 대표적인게 남편과의 사이에서 한번도 이길 수 없었던 게  내 성격 때문이었다.

비판하는 즉시, 반성 모드가 나를 자책하게 만들어서

심지 굳게 밀고 나가지를 못하니 백전백패 하는게 대부분이었다.


머리는 비상한데 현실세계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우월감에 빠져서,

세상을 비판하는 기능만 점점 진화하여

그다지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그런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세상과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제3자가 보기에는 불행해 보이고 안타까와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자각이 온다.

이 대표적인 인물이 우리 큰언니이다.

(혹시 언니가 이 글을 본다면 원수가 될까?^^

나는 느끼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요런 말은 안하는게 이익인데도^^)


 머리나 감정이 남보다 월등히 예민하게 타고난 사람들이

살면서 겪어야 하는 적은 바로 자신일 것이다.

무디거나 둔하면 못 느낄 것을 남들보다 더 잘 느끼고, 더 잘 보이니

감정이 반응하게 되니 스스로 대범해지는 게 어려울 것이다.

삶이 죽는 날까지 의연해지기 어려운 것이 감정 때문이다.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마음수련을 아무리 해도

 순식간에 본능의 감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느껴서

나이 들수록 인품이 넉넉해지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나이 들수록 향기가 나고, 의연해지며, 비우고, 맑아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느낀다.

오히려 아집에 빠지고, 욕심을 변장시켜서 미화하고, 잘못된 개념을 정당화하는

못 말리는 노년의 사람들도 더러 보았다.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성숙하지 못한 감정을 매번 확인한다.

상대방이 내게 충고를 원하지 않고 칭찬과 응원을 원하는데도

나는 직설적으로 충고나 지적을 하는 것을 멈추지를 못한다.

내 눈에는 이렇게 하면 더 잘 될 것 같아서인데

사실 충고나 지적을 하여서 한번도 결과가 좋은 적이 없었다.

지인이 나의 이런 고민을 토로하자 자신도 젊은 날 그런 적이 많았단다.

충고나 지적을 해주면 잘 받아 들이고 개선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고.

겉으로는 웃지만 나중에는 원수가 되었다고.

그래서 충고나 지적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사실 나도 누가 나를 지적하거나 충고하면 겉으로는 긍정하는 척해도

속으로는 은근 불쾌하기도 하여서 "너나 잘 하세요~"하는 감정이 생기기도 했었다.


잠깐 다니러 온 예슬이와 이 문제를 대화를 했다.

내가 예슬이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순한 아이가 발끈하며

변명(자기 합리화)을 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감정을 건드리는데 가만 있으면 인간이 아니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 들이면 너에게 도움이 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지인에게 도움이 되라고 충고를 하니까 그 지인이 뭔가 달갑지 않아하니

내가 안타까와서 자꾸만 내 맘을 전하려고 하자

예슬이 그것을 보고 내 발을 탁자 밑에서 밟으며 그만하라고 마구 신호를 보냈다.

나중에 예슬이가 나를 설득했다.

"엄마, 충고나 지적은 받아 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는 사람에게 하면 역효과만 나요."

"나도 친구들이 나에게 지적을 하면 그 말이 맞는대도 기분이 나빠져서

오히려 사이가 나빠졌어요.~" 그러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각자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인데 옆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면

기분만 나빠지는게 인간이다.

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이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자

그를 생각한다고 지나치게(^^) 충고를 많이 하여 오히려 불편해진 걸 느껴서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해놓고서도 나도 모르게

"사랑"과 "관심"이라는 명목으로 간섭과 충고를 하게 된다.


충고나 지적은 남에게 해봤자 소용도 없고 관계 악화만 될 가능성이 높으니

내 자신에게 충고나 지적을 많이 하는게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항상 내눈에 티끌은 잘 안보이고

남의 눈에 티끌은 잘 보이는 게 늘 화근인 것 같다.


전편에 "생각나는대로"라는 글을 올렸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충고와 지적은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들어서

잠시 감추었다가 다시 올려 놓았다.^^

충고와 지적은 기분은 나쁘지만 받아 들이면 분명히 약이 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 대신 정치해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 길을 택해서 간 사람들은 그 길에서 멋진 정치인이 되길 바란다.

평가는 역사가 해 주니까 위대한 정치가가 나오길 바란다.

(사실 너무나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래도 충고와 지적은  내 자신에게 하는 것이 나를 가장 발전시키는 것이다.

내 자신만 잘해도 최소한 내 반경은 환하고 밝을테니까~


"내 눈의 티끌을 먼저 보자"


남의 티끌이 너무나 잘 보이니

그 옆에 반성하는 장치를 마련 해 주신 내 수호신덕분에

나는 매번 충고하고 반성하고,비난하고, 반성하고를 반복한다.


어쨌든 "너나 잘 하세요~"가 정답인 것 같다.^^

잘하고 있는 꽃들이 날 향해 "죽는 날까지 철 들까?"하며  웃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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