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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 (건강한 밥상)

가을맞이 (1)

by 농부김영란 2010. 9. 22.

 

 

 

 

제주도에 와서 처음 본 것 중에 하나가

시장에서 양하(양애라고도?)를 만난 것이다.이 맘때쯤 양하가 시장에 나는데

작은 소쿠리에 담겨서 5천원이길래 파시는 분께 "이것은 어떻게 해먹는 거예요?"

"볶아 먹으면 된다"고 간단히 말하길래 한국음식 조리법 다 거기서 거기지 뭐...하며

제대로 알아 보지도 않고 딱딱한 껍질은 벗기고 4등분하여

 갖은 양념 넣고 나물 볶듯이 볶았다.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이라

입맛을 다시며 한 입 맛 보았는데 "앗...퉤퉤..."

입안이 아리고 떨떠름 쌉쌀한 것이 이게 대체 뭔 맛인가 싶었다.

양념해서 볶은 것이 아까와서 다시 억지로 입에 넣어 보았지만

혀가 강력히 거부하는 바람에 그냥 버린 기억이 있었다.

잘 삭힌 홍어를 처음에 만났을 때도 내 입의 반응이 그러했으니

참고 먹어 보려했지만 익숙치 않은 맛에대한 거부반응이 그 이후 다시는 양하에 관심을 갖지않게 되었다.

 

 

 

처음 귤밭을 샀을 때 귤밭 주변에 생강같은 것이 무성하게 자라길래

이게 대체 무엇인가하며 이웃에 물어보니 양하라는데

이곳 사람들은 그 나물을 귀히 여겨 제사상에까지 올린다하며(산적에 꿰어서)

내가 안 먹으면 달라고 눈을 반짝이는데 내가 맛본 안좋은 추억(^^)때문에

기어이 그 양하들을 다 캐서 버렸는데도 끈질긴 번식력때문에

남은 잔뿌리에서 자꾸만 싹이 나왔다.

그런데 올 봄에 장만한 밭 주변에 또 양하가 보이길래 그것을 캐내던질 기력도 없는지라

그냥 나두었는데 내 조리법이 잘못 되었는가 싶어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살짝 데쳐서 강회를 해 먹거나 나물로 볶아 먹던지

장아찌로 담그어 먹으면 그 향과 맛이 독특하며 일미라는 표현도 있기에

그러면 다시 도전해보자며 요즘 양하밭을 헤집고 있다.

 

토란이나 죽순처럼 떫고 아린 맛을 우려낸 다음에 반찬을 하면

독특한 풍미를 가진 장아찌를 만들수 있겠다 싶어서다.

장아찌를 담가서 몇개월 후에 맛이 잘 들면

어쩌면 양하 예찬론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꿈을 꾸면서...

 

 

 

봄에 나온 싹은 이렇게 생강잎처럼 무성한데

그 아래 뿌리 주변에 요즘 죽순처럼 올라오는 싹에서 꽃이 피어 있다.

꽃은 마치 동양란초꽃처럼 생겼는데 꽃이 피기전에 여린 것을 요리로 해먹는다 하는데

나는 꽃이 핀것을 따와서 질긴부분 껍질은 벗기고 살짝 데쳐서 나물 볶듯이 갖은 양념 넣고 볶았다.

떫고 아린 맛을 어느 정도 우려낸터라 살짝 독특한 맛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두릎이나 향 있는 나물 즐기는 취향이면 매니아가 될듯도 하였다.

일단 한접시 분량 볶아서 거의 나 혼자만 먹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거부하고 남편도 그리 달가운 표정이 아니었지만

나는 뭣이든 익숙할때까지 도전해 본다.

양하 예찬론자가 있는 것을 보면 나도 언젠가는 양하 찾아 삼만리 하게 될지...

 

 

 

 

 

농부가 되고나서 귤밭 이외에도 내가 짬짬이 도전한 것은 텃밭.

내 손으로 내 푸성귀 정도는 생산해서 먹겠다는 생각에

첫해는 귤밭 주변을 일구었다가 성에 차지를 않아서

길로 내준 우리 땅 대신에 옆에 붙은 국유지 일부를 텃밭으로 쓰겠다 통고한지가 몇해 전.

(몇해 전에 이 과정을 기록한 편이 있다)

가시덤불 밭을 일구어서 몇해째 이것저것 심어보고 있는 중.

부추도 심고, 곰취도 심고, 당귀도 심고, 고추도 심고,가지도 심고,

오이도 참외도 깻잎도 심어 보았다.

봄에는 가지가지 모종을 사느라고 늘 모종값이 사먹는 값을 능가하였지만

거둘때의 기쁨을 생각해서 해마다 심곤 하였는데

다년생 몇가지중에 토란도 끼여 있다.

부추, 머위, 당귀,곰취, 토란등은 다년생이다.

그냥 내버려 두어도 알아서 스스로 나고 자라는 기특한 아이들이다.

 

 

 

 

작년에는 어쩌다가 토란도 못 거두고, 가을배추로 심은 것도 수확 못하고

겨울을 넘겨 버리게 되어서 올해는 일찌감치 토란줄기도 거두어서 말리고 알토란도 캐 보았다.

추석때나 맛 보던 알토란탕은 먹어만 봤지

토란 뿌리에서 캐는 것은 해보지 않아서 몇개 캐서 보니

뿌리에 혹처럼 달려있는 알토란이 보였다.

감자나 고구마처럼 많이 달린 것을 기대했지만 한 뿌리에 한두개 정도 매달려 있고

몇년째 캐지않고 둔 큰 뿌리는 작은 뿌리보다 맛이 부족하였다.

해마다 햇것을 캐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이든 결실을 거두는 기쁨은 충만하다.

알토란을 보니 뿌듯해져서 또 한꺼번에 다 캐다보니 온 몸에 두드러기가 돋아났다.

이제는 가죽이 두꺼워져서 웬만한 것에는 다 이겨낼 수가 있는데도

토란이 뿜어내는 기운에는 못 당하는지 온몸이 가려워서 혼이 났다.

 

 

 

 

 

알토란도 맛과 향이 아리고 떫어서 그 맛을 우려 내려면

쌀뜨물에 삶아서 우려내야한다.

나도 알토란 캐는 것과 손질하는 것은 처음으로 해 보았다.

 

 

 

 

우리말중에 알토란 같다는 말...그만큼 영양이 풍부한 것이라서

 내손으로 생산한 것이니 토란탕도 만들고, 알토란 돼지사태찜도 만들어 보았다.

말린 토란 줄기로는 겨울날 시원한 육개장을 끓여서 입맛을 돋우어 보려한다.

 

 

 

 

 

시장을 가보니 야채값이 몇배나 올라서 눈이 확~ 튀어 나올 지경이었다.

여름내내 날씨가 비가 질금거리고 폭염이 계속되니

견뎌낼 장사가 없는지라 야채들이 다 녹아없어진 상태라는 것을

농부인 내가 너무나 잘 알지만 이렇게 값이 비싸지면 선뜻 살 수가 없다.

비싸면 싸질때까지 기다린다는 내 투지가 또 이글이글...

(이젠 안 이러고 싶은데도 어느새 습관처럼 따라붙는 생각이다)

그럼 그동안 뭐 먹고 살쥐?

그래서 들판으로 바구니 들고 나가보니 질경이가 눈에 뜨인다.

이러니 절대로  우아부인으로 살지 못할 팔자이다.

뙤약볕 아래에서 질경이 한소쿠리 뜯느라 땀깨나 흘렸다.

 

 

 

 

김치가 떨어져서 달랑 달랑 거리는데 배추도 비싸고 무우도 비싸니

어떻게든 묵은 것들을 먹으면서 버텨 보자는 심사이건만

요럴때일수록 왜 김치는 더 먹고잡고 야채는 더 먹고 싶은거지?

비싸면 비싼대로 먹지 못하는 내 알뜰궁상은  저력인가? 지지리 궁상인가?

그래도 그 힘으로 여기까지 버텨왔다 했건만 이제는 나도 좀 벗어나고픈데 잘 안된다.

시장에서 가장 싸다고 생각 되는 것이 고구마 줄기.

그 줄기 까느라고 손톱끝이 아리고 꺼멓게 물이 들었다.

꾸벅 꾸벅 졸면서 까고 있는 내 복장을 치면서...

그 고구마 줄기로 김치를 담그었다.

덕분에 오랫만에 특별김치를 먹게 되었다.

 

 

 

 

 

없으면 먹고 싶고 흔하면 먹고 싶지 않은게 사람 심리.

아니 배부른 투정인가부다.

부추밭에 부추를 거두지 못해서 전부 꽃대가 올라온 것을

김치거리 비쌀때 부추김치 먹고 버틴다~~~~

이런 작은 일에 목숨 거느라 요 몇년사이 흰머리 깨나 늘었다.

몸으로 버티지 말고 지혜로 버틸 궁리는 안하고...

그래서 늘 손 발이 고생인 인생.

 

그래도...김치냉장고에 이렇게 몇가지 채우고나니 갑자기 부자된 느낌이네.

 

 

 

 

 

추석날 아침...해외에 산다는 핑계로 서울 큰 댁에는 전화만 하고 명절을 보냈다.

다음달에 조카 결혼식이 있어서 그때 찾아 뵙기로 하고.

추석날이라고 토란국을 넉넉히 끓였다.한 이틀치는 끓였다.

알토란 돼지사태찜도 넉넉히 했다.

그리고 선언했다. 저녁까지 날 일체 찾지 말라고...

온전한 휴식을 취할거라고...

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맘 같아서는 배낭하나 둘러매고 이삼일 걷기여행 떠나고 싶지만

그렇게 몸을 혹사하고나면 일하는데 지장이 있어서

그냥 무위도식하며 쉬기로 했다.

 

 

 

 

 

 이 땅의 큰 며느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온전한 내 삶을 살지 못하는 여자의 일생에 같은 여자로서 아파한다.

비교적 자유로운 나도 어느정도 스스로 옭아맨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데

온갖 형식과 격식과 의무감에 갇혀서 내 인생을 한번도 주장해보지 못한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같은 여자로서 치하하고 박수를 보낸다.

우리들이 이 땅의 희망이고 힘이다.

엄마에게서 받은 그 힘으로 나도 버티고 있고

내 사랑을 내 아이들에게 전해줄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대물림을 할 것이다.

 

 

 

 

 추석전 며칠동안은 햇살이 가득한 가을 날씨여서

나도 귤나무도 행복했었다.

두 팔을 벌리고 환호하며 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귤나무를 보고있노라니

나도 절로 엔돌핀이 돌았다.

 이 가을...햇살이 가득하여 온전한 결실을 이루어 주기를...

 

가을에는 늘 혼비백산 동동 거리며 살던 아줌마도 시인이 되고 싶다.

싯구 한절 읽고 살 마음의 여유없이 내달리다가도

가을이 되면 마음에 단풍이 든다.

 

나도 이 가을에 하루쯤은 시처럼 살고 싶다.

 

 

 

 

 

엉겅퀴를 좋아하여 귤밭에다가 심은 여자.

애잔한 돌밭에서도 도도하게 핀 그 꽃을 좋아해서 귤밭에다가 심었는데

귤나무에 준 거름을 먹어서인지 애잔함은 잃어 버리고

아주 튼실하고 거대한 엉겅퀴 꽃이 되었지만

이 맘때 그래도 내 눈길을 사로잡는 친구이다.

마침 꽃으로 피고진 자리에 씨앗되어 날아가기 직전의 친구를 만났다.

번식을 위한 전략인데 씨앗에 날개를 달아서 날려 보내서 종족 보존을 하는 것이다.

엉겅퀴는 이렇게 대를 이어 간다.

 

 

 2010.9.22. 추석날 한가위 없는 흐린날

서울은 물폭탄이 터져서 아우성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