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도 러시아와 국교 수교를 맺은 해.
나는 한식 요리사로서 친선 사절단으로 선발되어
kbs국악팀과 <한국요리 페스티벌>에 참여하기위해 러시아를 보름동안 방문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 이야기가 갑자기 떠오른 것은 내가 이번호의 제목을 <서귀포찬가>로 정하고나니
그때 페스티벌을 마치고 가슴 벅차게 불렀던 <서울의 찬가><아리랑>이 떠올라서이다.
그냥 여행객으로 방문하였다면 <애국가>나 <서울의 찬가>등을 부를 일이 있었겠나마는
내나라 문화를 홍보하는 민간외교단으로서 임무를 완수하고 무대위에서 다함께
서울의 찬가를 불렀을 때 우리들 모두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었다.
오랜 동토의 땅이 해빙기가 되어 국교가 수교된 감격도 있었지만
내 나라를 떠나서보니 우린 누구나 절로 애국자가 되는지
한마음되어 <서울의 찬가>을 목청껏 노래했다.
서울이 고향이 아님에도 서울시민으로 하나된 우리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동질감이 이국땅에서 더욱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 25년을 넘게 살고나니
고향은 이미 내 마음속에 추상적으로 자리할 뿐,
내가 사는 그 어디든 고향을 만들면서 사는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을 그리워한다고해도 고향에서만 살수는 없는 처지라면
내가 사는 그곳이 고향이요, 또 고향같은 정겨움으로 대해야만 한다는 것을
오랜 타향살이 끝에 내린 깨달음이다.
서귀포를 올 때만해도 내가 이곳에서 정착하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왔으니 명퇴하면 자연 회귀하리라고 생각 했는데
그 무엇이 나를 사로잡고,내 옷소매를 이끄는지...
나는 어느덧 서귀포 사람이 되어 시나브로 뿌리 내리고 있음을 느낀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서귀포시민으로서의 자부심 하나가 뿌리 내리고 있는 듯하다.
내 아이들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이곳에서 보내고 있고
이곳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아마도 훗날 이곳을 떠나서 산다고 해도
서귀포를 몹시도 그리워하지 않을까싶다.
삶의 풍부한 자양분이 될 감수성도 풍성해질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물론 이질감을 완전히 떨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이슬비에 옷이 젖듯 서귀포에 젖어 드는 것 같다.
첫 한두해는 환희의 해였다.
행복지수가 전국 최고라는 말에도 공감했다.
육지의 그 어느 곳과도 풍경이 다른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시간만 나면 관광을 다녔었다.남국의 야자수에도, 화산석 돌담에도,
하늘 높이 치솟은 삼나무의 시원함과 한겨울에도 피어나던 들꽃들.
11월에 중산간도로를 걷다가 발견한 엉겅퀴꽃,용담,꽃향유등은
내 숨을 멎게 할만큼 취하게 하였었다.사계절 꽃세상인 서귀포.
그리고 그 어느 도시에서도 볼수없는 끝없이 펼쳐진 귤밭에서
가을이면 펼쳐지는 황금빛 향연.겨울에도 꽃이 피는 서귀포와는 달리
한라산에는 만년설처럼 눈이 쌓여있고 산호가 살고있는 청정 바다는
푸른 하늘이 그대로 내려와 앉았다.
서귀포만큼 쾌적한 환경을 자랑하는 도시가 또 있을까?
이렇게 천혜의 조건을 가진 서귀포!
그럼에도 뭔가 2%부족한 것이 항상 느껴진다.
삶이 풍요해지자 빵만 가지고는 살수없는 인간의 다양한 추구 때문에
문화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어야 2%를 채우지 않을까 싶다.
세계적인 명소 서귀포를 위하여, 서귀포 시민이 된것에 자부심을 가지기 위하여
더 열린 마음과 눈으로 바라보고, 다양한 사람과 문화를 포용하고,
독특한 색깔의 서귀포스런 문화를 추구해야지 않을까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2009.10.6 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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