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대표로 남편 한사람만 큰집(서울)에 추석명절사절로 보내고
명절증후군은커녕 명절음식 먹고파~~~하는 아그들을 달래서
뭘 지지고 볶고 한단 말이냐, 가정경제 나라경제도 어려븐데~~하면서
우리끼리 조촐한 추석을 보내려고 하는데 경비실에서 방송이 나왔다.
경비실로 오시면 막걸리를 드릴테니 오셔서 가져 가세요~~~한다.
오잉! 웬 막거리? 그냥 준다는건지, 판다는건지...아리송하지만
웬지 그냥 준다는 문귀로 들려서...공짜라면 십리는 달려 가야쥐~~~
아그들아...달려가서 받아 오너라.혹시 모르니 돈을 넣고 가서 돈을 줘야되면 한병만 사오고
공짜면 두병을 가져 오너라~~~하고 시켰더니 "엄마, 공짜래요~~~"하면서
아이들이 달려 온다.명절이라고 막걸리 사장님이 주신거란다.
오모나...이런 일도 다 있네. 경제가 어렵다고 맴이 시베리아 한파들이건만
막걸리 두병이 값으로 얼마나 가랴만 기분이 만땅 좋아져서...
그 막걸리 사장님 뒷사연이 어쩐지 모르지만 ...
사장님, 복 많이 많이 받고, 사업 번창 하이소~하는 축원이 절로 나왔다.
음식도 장만한게 없으니 난 뭘 드린다~~~그저께 지인으로부터 받은 잘 익은 파인애플이 있었지.
경비 아저씨 갖다 드리고 오너라...
공짜로 생긴 막걸리...와이리 기분이 좋냐...일단 한병 까서 쭈욱~~~
아이들이 엄마 맛있어요? 한다.혼자서는 절대 술을 먹지 않는데
누구랑 마실려고하면 안주도 장만해야하는게 귀찮아서...
얘들아, 매실장아찌 가져 오너라~~~(엄마는 안방마님^^)
그런데 둘째 놈이 엄마 취하셨다~이런다. 요런 맹랑한 것.
별로 취한 내색한것 없구만 뭘 보고 그러나 싶어서 내가 취한것을 어찌 아느뇨? 하니
엄마는 취하면 차분해진단다. 목소리가 가라 앉는다고...
뭐이 어드래?고이헌 놈,고런 관찰력으로 공부에 집중하면 얼마나 좋으리요.
(일년에 한두번 먹을까 말까 하였는데 언제 관찰을?)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듯한 우렁찬 목소리로 내게 대적하여 번번히 그래...내가 졌다...이런 둘째놈이
떨어진 성적에도 도무지 개과천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에미 애간장을 태우기 일쑤인데
가끔 저게...바보는 분명히 아닌데 하는 예민한 발언을 할 때가 있다.
이눔아, 그래 너 잘 걸렸다,엄마 취하신 김에 또 한마디 해야겠다...
그래서...앞으로...나아가야 할 길을 일장연설을 하는데
슬그머니 꽁무니 빼고 제 방으로들 줄행랑을 친다.
내겐 유언과같은 영양가 있는 훈계이지만 저들에겐 고리타분한 잔소리에 불과하다.
괘씸한 노무 짜식들 같으니라구...
우리 어릴땐 부모님 앞에서 눈물 뚝뚝 흘리면서도 그 훈계 다 들었구만서리...
막거리 한잔 걸치고나니...
생각이 더욱 또랑또랑해진다.
내 나이 마흔 여덟, 적은 나이가 아닌데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부모...아직 갈 길이 까마득하네.
뒤 돌아보면 내 나이에 내 부모님들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고...
한없는 추락을 경험 했었지.꼭 큰 딸 나이에...
가세는 기울고...아버지는 작은 부인까지 두어서 엄마와의 불화가 깊어졌고...
이젠 까마득한 옛 이야기처럼 되새김질 하지만 그 당시 내겐 너무나 힘든 터널이었었지.
사춘기 그시절, 내게도 있었지.
꿈 많던 소녀가 꿈이 깨어지는 아픔을 맛보았던 그 시절이...
그래서 난 내 나이, 부모로서의 내 나이가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 나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기에 더욱 긴장을 하게된다.
술기운이 몸을 감싸자 갑자기...비장한 결의가 샘 솟기 시작했다.
또 다른 새출발을 해야만 하는 시점에서 생각이 많고 정리가 안되었는데
앞으로 10년동안 내내 서른여덞살로 살리라.
나이...그것은 정신의 문제야...하면서...
아이들에게 내일 아침 다섯시에 기상하여 중문까지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걸어보자하고 선언했다.
철없는 아그들은 재미있는 이벤트인줄 알고 그 밤에 입고 갈 옷부터 걱정한다.
아무거나 입어, 누가 너 신경 안 쓰거든.
요즘 한창 외모에 관심들이 지대해져서 매번 옷타령인 아이들이다.
겉이 아무리 화려해도 속이 비면 말짱 도루묵이야...이런 퀘퀘한 충고를 잊지않는 엄마와
대화가 안돼~~하면서 요즘 아이들 운운하는 사춘기 딸들과의 입씨름은 옆에서 보기에
혀를 찰 수준이다. 나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려 하므로...끌끌...TT
비몽사몽 잠이 들려는 찰라...12시 반쯤인가.
문자 들어 오는 소리에 확인해보니 원두커피전문점 오즈 사장님이다.
"주무세요?" "아닌데유?"
띠리리링~~~내일 아침에 어리목 갈껀데 가실래요? 한다.
ㅋㅋㅋ...이심전심이네.나도 심기일전 중문까지 걸어갔다가 오려고 했는데
이왕이면 산이 더 좋겠지요.그래서 아침 여섯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이분들...영업이 끝나고 이제 마무리하고 들어 오셨나본데 피곤하실텐데도
새벽에 일어나서 산에 가자고라? 절로 감탄사가 흘러 나온다.
앞서가는 사람들은 역시 달라.
여섯시에 오즈 사장님네 식구 5명 우리 4명이 만나서 어리목을 향했다.
그런데 내 차는 전날 기름 체크를 해두지 않아서 아무래도 돌아오기까지가 불안했다.
이 새벽에 기름 파는데도 없고...할수없이 오즈사장님네 차에 낑겨 타기로 했다.
겹겹이 이중으로...ㅎㅎㅎ...쌀 세가마를 더 올려 놓은 차를
오즈사장님은 흔쾌히...우릴 운반해 주었다.
아 ~~~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행복하다.
좋은 차에, 운전하는 수고도 없이, 랄랄라~~~
어리목에서 올라가는 어승생정상까지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코스였다.
나처럼 운동하고는 담쌓는 사람도 적당히 올라갔다가
정상을 정복하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는...
어승생악정상에서는 제주시가 한 눈에 보였고 망원경도 있어서 자세히 볼수 있었다.
멀지않은곳에 아름다운 곳이 지천인 제주도...참 좋은 곳인데...
생각이 많은 요즘...내 옆의 좋은 인연들이 내 마음을 자꾸만 붙든다.
내려와서 출출한 배...
엊저녁에 먹은 막걸리 해장으로 딱~인 컵라면(내겐)...을 우리 모두 먹었다.
평소에는 인스턴트 사양하지만...등산하고나서 먹는 컵라면은 그 어떤 음식과도
비교 안되는 일미이다.
좋은 곳도 많고, 좋은 사람들도 많고,
한번밖에 살지 못하는 길지않는 삶의 여정에서...
재미있게, 행복하게, 넉넉하게...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아야지.
남은 삶.
2008.9.15.英蘭
'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0) | 2009.01.01 |
---|---|
구절초 1 (0) | 2008.10.06 |
열다섯 아이의 장례식 (0) | 2008.08.21 |
一月이 如 一日(한달이 하루같네!) (0) | 2008.08.03 |
장마방학 (0) | 2008.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