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알의 귤이 회원님께 가기까지는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요?
귤을 딸때부터 시작해서 다 나갈때까지
귤농부는 마음이 조마조마 하지요.
어떤 반응이 올까~노심초사 걱정 하지요.
모든 귤이 다 너무너무 맛 있지는 않고
조금 부족한 아이도 있고
너무 환상적일 때도 있고...
각양각색의 맛과 변화가 있는데
공산품처럼 그 맛이 그대로가 아니라고 투정하는 고객님도 계시지요.^^
반디농장 오랜 회원님들께서는 11월 첫귤부터 1월말까지
한 겨울을 고스란히 귤나무에서 보낸 귤의 맛 변화를 보시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맛이 아니고 맛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셨을 겁니다.
밭마다, 나무마다, 시기별로 다른 귤맛의 변화를 즐겨주시라고
당부 드리는 것도 귤맛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이 2015년산 귤은 그 많은 비를 맞고도 맛을 지켜서
묵묵히 함께 해 주시는 회원님들께
보답해 드린 마음이었습니다.
(운반기도 한번만 듣고 작동하는 예지...농대생 답군!)
한알의 귤이 회원님 식탁으로 가기까지는
2월부터 시작해서 부지런히 소독하고,전정하고 퇴비를 주고...
가을까지 거의 쉼없이 나무를 돌봐줍니다.
귤이 다 익어서 따야 하는 일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특히나 지난해와 지지난해는 수확기에 내내 비가 와서 혼비백산 하였습니다.
2015년 제주도 귤은 비때문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귤밭에서 손도 못 데고 귤이 매달려 있는 귤밭이 꽤 있습니다.
반디농장도 회원님들께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며
위기를 헤쳐 나왔습니다.
<4차귤때부터 운반기가 고장나서 리어카로 다 날라야 했지요.>
반디농장은 11월 중순부터 다 익은 귤을 따 내리기 시작해서
1월말까지 귤을 따기 때문에 귤따는 인건비도 몇배나 듭니다.
귤을 다 따서도 끝이 아닙니다.
귤을 선별하는 작업,택배를 포장하고 날라서
우체국까지 실어다가 주어야 합니다.
그 과정중에 수백톤을 들고 내리고 들고 내리고...
저도 그 과정을 하느라고 무릎도 나가고 어깨도 빠지고...
노동의 진수를 맛보는 어마무시한 노동이 병행 됩니다.
저와 남편이 이제는 50중반이라 몸이 예전같지가 않아서 부대끼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반디농장 세자매들이 큰 활약을 하였습니다.
(20kg 컨테이너를 들고 나르면 10kg 귤상자는 가볍게 느껴 지지요.
쥬스공장으로 가기위해 선별한 귤을 차에 싣고 있어요.)
올해는 세자매가 다 모였습니다.
둘째 예지는 단짝 친구 윤정이까지 데리고 와서
"여자라고 못 할 일은 하나도 없다"
"열 아들 안 부럽다"를
몸으로 보여주기까지 하였지요.
막내도 올해는 대입수시합격으로 일찌감치 현장에 투입되서
남자일도 서슴치 않고 해냈습니다.
농삿일에 여자일 남자일을 구분 할 겨를이 없지만
귤 수확 할때는 대체로 귤을 따는 일은 여자들이 하고
따 놓은 귤을 끌어내고 나르고 쌓는 일은 남자일에 속합니다.
그런데 과수원 집 딸들은 귤도 따고, 따놓은 귤을 끌어내고,
리어카로 창고까지 나르고, 창고에 쌓고
20kg 컨테이너를 번쩍 번쩍 들어야 합니다.
(일주일 내내 비가 오기도 했던 지난 겨울
택배상자를 실어다 주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닌데
택배가 나가는 그 순간에 비가 그쳐 주어서 실어다가 줄 수 있었습니다.
힘든 와중에 짬짬이 은총을 경험한 해이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자란 예지 친구 윤정이는 농고와 농대를 졸업한 당찬 젊은이입니다.
남녀공학학교에서 학생회장까지 한 야무진 젊은이인데 대학을 졸업하려고 보니
막상 꿈을 이루기가 막막 하다고 하였습니다.
대학은 지식만 전수할 뿐 꿈도 비젼도 제시 못하는 산실이 되어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해 보지도 못하고 방황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윤정아~ 멀리 보고 꼭 꿈을 이루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30년 후 내 나이가 되었을 때 꿈을 이룬 사람이 되어 있거라"고
저는 일부러(^^) 더 빡세게 일을 시켰지요.
"인생의 쓴 맛을 젊은 날 많이 겪을수록 좋다"는 지론에 입각하여...^^
살기위해 절벽에서 기어 올라와봐야
더 삶을 소중하게 치열하게 살아 가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언제 그런 경험을 해보겠습니까?
그래서 일을 빨리 끝내고 영화 "히말라야"를 보러 갔습니다.
여자애들한테 막노가다(^^)를 시키는 에미는 의붓엄마인가?ㅎㅎ...
하지만 저는 딸들에게 독려하며 말 합니다.
"인생의 쓴 맛을 봐야 작은 시련에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좀 더 빡센 일을 시킵니다.^^
임용고시3수생 신분으로 전락한(^^) 큰 딸 예슬이도
5차귤부터 합류해서 막노가다 대열에 합류 했어요.
예지의 단짝 친구 윤정이도 농수산대생답게
"젊음은 그 무엇도 다 할 수 있다"는 내 말에 고무되어
노동의 진수를 맛보고 2주간의 농장 체험을 하고 돌아 갔습니다.
여인천국 반디농장의 유일한 남성 이성호씨는
은근 내심 아들을 부러워하는 말을 내뱉곤 하다가 내게 핀잔을 받곤 하는데
돌튼이 예지의 등장으로 내심 흐뭇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예지의 사춘기는 폭풍 쓰나미였어요^^)
따 놓은 귤을 끌어 내고, 나르고, 쌓는 일을 예지가 대신 했기 때문이지요.
<세자매네 반디농장>은 세자매가 활약을 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저도 이맘때가 되면 녹초가 되어서 정신이 혼미한데
올해는 그래도 아이들이 힘을 합하여 도우니까
"키워 놓으니 이제 도움이 된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아이들 키우느라고 진이 다 빠졌는데
이제 아이들이 그 진을 채워준다고 말하는 해였습니다.
사는게...이렇듯...진이 빠지게 일을 해야만
지탱하고, 유지하고, 이루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몸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말로 해도 고생하지 않은 우리 아이들이 실감을 못하기에
온 몸으로 부딯히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이 힘들다고들 말하지만
"우리 젊은 때는 일주일에 한번만 쉬어도 잘 쉬는 거였고
하루 10시간 이상씩 일 하는 것은 다반사였다"고
지금 그렇게 일하라고 하면 다 도망 갈거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으려고도 않지요.
지금 동남아인들이 하는 일들을 우리는 우리가 다 해서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되었다고 말해도
그 말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청년실업의 시대에 우리 아이들도 고민이 시작되었지요.
매월 월급이 보장된 공무원과 임대업이 최고의 선망이 된 시대에
몸으로 부딯히며 인생의 호된 맛을 가르키고자 하는 저는
시대착오적인 교육인지는 몰라도
제가 살아 가는 모습에서 아이들이 삶을 배우고
<희망>을 꿈꾸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건강한 우리 몸으로 <희망>을 만들자고
말로가 아닌 몸으로 가르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꿈>과 <희망>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난 겨울도 뜨겁고 충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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