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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비오는 날의 단상

by 농부김영란 2013. 4. 24.

 


오랜만에 큰 봄비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기상예보를 미처 보지 못하고 어제 화창한 날 하루종일 귤밭 두 개를 소독을 했는데

효과가 반감했을까봐 아차~싶지만, 그래도 가뭄 해소해주는

오랜만의 단비가 고마운 아침입니다.이제는 귤나무 스스로가 제 몸 추스르는 것을 믿으니

모든 것을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로 인한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막연히 두려울 뿐

귤나무와 한마음이 되어 견딘 시련들이 우리를 더욱 믿음으로 이어준 것 같습니다.

막내 예인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학교와 가까운 <믿음>밭으로 왔습니다.

비 핑계로 하루종일 혼자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볼 생각입니다.

비가 오지 않는 화창한 날에는 누가 무어라하지 않아도 쉬는 것은 편치가 않습니다.

일 중독증상인지 몸이 곤해서 눈이 내려 앉는데도 쉬려고 하면 떠오르는 일, 일...

 

 

 

 

 

그래서 비 오는 핑계가 더욱 반갑습니다.

일하는 짬짬이 마련해 둔 반디카페(^*^)에서 느긋하게 차 한잔마시는 것도

마음 뿐 쉽지 않았는데 집 나설 때 노트북까지 챙겨서 나섰습니다.

머릿속을 맴맴 돌던 이야기들을 정리하기로 하였습니다.

모처럼의 비휴일에 떠오르는 지인들도 오늘은 연락하지 않고

나와 마주하여 내안의 생각들을 만나기로 합니다.

겨울서부터 이어지는 봄일까지 내달리고나면 오래달리기 한 사람의 기진함이 몰려 옵니다.

그래서 늘 4월이면 보릿고개 넘던 시절의 허덕거림을 체험하곤 합니다.

눈이 감기고 몸이 땅속으로 꺼지는 듯한,숨쉬기도 거북한 시간들 맞곤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나는 내 몸을 너무 혹사한게 아닌가하는 작은 소리도 들립니다.

천천히 가도 되는데... 이제 좀 쉬어 봐~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립니다.

 

 

어느 순간부터 정신력으로 제어하던 몸의 기능들이 순조롭지 못하여

윤활유 부족한 기계를 마구 돌리는 느낌을 받곤 하였어도

쉬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여도 일의 관성의 법칙인지

일개미처럼 일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큰 틀을 보면 쉬어줘야 할 때인데도 쉬지 못하고 좌불안석하는 나를

차분하게 들여다보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반디카페에 들어서서 오늘 하루 마음껏 나를 즐기기로 합니다.

커피물을 올려 놓고 장작난로에 불을 붙입니다.

장작난로의 화력이 아주 좋아서 눅눅한 바깥기온과 습도를 날려주고

따뜻함이 몸과 마음을 녹아 내리게 해줍니다.

믹스커피이지만 찻잔을 따뜻하게 덥히고 커피향기를 음미합니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 귤나무와 멀리 보이는 소나무, 키 큰 삼나무들의

초록빛이 내 눈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데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는 애잔하게 합니다.

빗소리,바람소리, 새소리,내안의 소리가 어우러져서 창가에 빗물처럼 흘러 내립니다.

아주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입니다.

이렇게 창가에 흐르는 빗물처럼 내안의 피로를 흘려 버리려고 합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지치게 한 걸까?

일년만 쉬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다가, 한달만,일주일만,

아니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나만을 생각하며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었습니다.

 

 

 

 

 

 

턱을 괴고 앉아서 나를 들여다 봅니다.

쉼을 간절히 열망하고 있는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지쳐 있는건가?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지나치게 애를 쓰는 자신이 보입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함이 맞긴 하지만 넘치면 과유불급이라 했습니다.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은 나자신인 것 같습니다.

주변 상황이 나를 지치게 한 것도 맞습니다.

세아이의 엄마로 살아내고 사오정 명퇴한 남편과 새삶을 개척하느라고

고군분투한 시간들이 나를 지치게도 했습니다.

지난해는 내 평생 씻을 수 없는 불효자가 된 기분을 남기고

고생만하다가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에 기진하기도 했습니다.

새벽마다 우는 애잔한 새소리에 혹시 엄마가 환생하였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초등생이던 세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에 왔는데 올 봄에는 걱정하던

둘째아이까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농부가 되어,남들이 기피하는 유기농 농부가 되어

전사처럼 살아낸 시간들도 몸의 피로를 보탰습니다.

남편의 명퇴가 배수진을 치는 결의를 다지게한 계기도 되었지만

돌아온 남편과의 조화를 찾는 과정도 꽤나 심정적인 피로를 더했던 것 같아요.

직장에서 진이 다 빠져 지쳐서 돌아온 남편이 가부장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한 것과

수입이 끊긴 새출발에서의 결연함, 가장의 역활 바꾸기 과정에서 오는 비장함이

나를 긴장하고 지치게도 했던 것 같습니다.

온 몸으로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나에게 보내주는 따뜻한 이들의 응원에

내 몸에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달린 것도 피로감을 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내달린 8년 시간,

사람들은 나를 성공한 귀농인이라고 마구 추켜 세웁니다.

성공이 무엇일까요?

내가 쏟아낸 열정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무조건 열심히 하였을 뿐 경제적으로는 이제야 겨우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엇이 성공하였다는 것일까요?

 

 

스스로 성공을 생각 해 보았습니다.

수지타산 안 맞는다고 남들이 기피하는 유기농 귤농부가 된 것.

그 세월이 8년을 넘겼다는 것. 맛을 조절해보려고 완숙과만 골라 따서

2년만에 따는 귤이 되어 계산의 의미가 무의미해졌어도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걸어온 것.

한파와 태풍에 큰 피해를 입었어도 스스로 세운 신의를 지켜낸 것.

 

 

가장 큰 성공은 인생의 큰 전환기를 맞아 작은 이익에 타협하지 않고

소신을 세우고 차근차근 걸어온 것과 온 가족이 무탈했다는 것일 테지요.

 

 

바쁘다,바뻐를 늘상 달고 사느라 한번도 제대로 나를 진단해보지를 못하고

꽁지에 불 붙은 강아지마냥 내달리던 모습을 오늘 가만히 점점해보니

내안의 피로의 실체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병은 원인을 알아야 치료를 하지요.

 

 

 

 

 

쉼과 힐링을 외치는 내안의 소리가 내게 말합니다.

가장 먼저 쉬어라~

그리고 나를 들여다 보아라.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내 몸과 정신임을 자각하라.

기침감기에 시달려서 밤새 설은 잠을 자다가 깨어,

어느 한순간 고통스런 내 몸을 만지며

“내 몸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야~”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을 나는 그동안 세상에서 제일 소홀히 대한 것을 느꼈습니다.

기침을 하느라 보름여 잠을 제대로 못자고 나니까 밤이나 낮이나 졸립니다.

심지어 운전을 하는데도 몽롱한 것 같습니다.

막내 예인이가 7시에 나가서 11시에 돌아오니

기다렸다가 아이를 데려오고나면 다시 잠 주기가 깨어서 비몽사몽.

그렇게 두 아이를 대학 문 앞까지 손잡고 걸어온 시간들도 몸의 피로를 누적시켰습니다.

엄마로서의 삶이 가장 피곤하게도 하였지만

엄마는 전사도 되고 투우사도 되고,수퍼울트라캡송 원더우먼도 되는 것 같습니다.

모성애,그 힘으로 살아낸 것 같습니다.

 

 

쉬면서 곰곰 생각해보니 정신이 안개 걷히듯 조금씩 맑아 지고 있습니다.

비는 여전히 줄기차게 내리고 오늘 비 예보는 내일 오전까지라하니 마음이 가볍습니다.

비가 이토록 반가운 것은 내안의 가뭄 해갈을 위해서입니다.

난로 장작불을 계속 달아놓고 따뜻한 온기에 내 몸을 내 맡기니

모처럼 몸과 맘이 평온을 되찾으며 상식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지쳐서 아무 것도 생각이 안나고 만사가 귀찮다는 생각마저 밀려 올 때.

휴식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밀려 올 때.

큰 병이 오기 일보전이라고 생각 됩니다.

선을 조금만 넘으면 균형이 깨지는 위태한 순간,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지요.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지요.

내 몸의 소리가 계속하여 신호음을 보내오는 것을 무시하며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꽈당탕~~넘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나만이 아니고 이 시대의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을 해야만 하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무조건 잠을 청했습니다.

몇날 며칠...졸다가 깨다가...한밤중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던 것을 멈추었습니다.

내 몸이 먼저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을 귀 기울였습니다.

이제 조금 살만해졌습니다.눈이 조금씩 떠집니다.

 

 

나를 지탱하게 해 주던 의미들이 떠오릅니다.

천천히 둘러보니 반디 카페안에도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벽난로도 있고 창넓은 창으로 귤밭 전경이 다 들어오는 멋진 풍경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카페 못지않은 풍경이라 생각됩니다.

바깥에는 틈틈이 만들어 놓은 텃밭에서 별별 야채들이 다 자라고 있습니다.

곰취,취,달래, 부추, 돌미나리,흰민들레,당귀,상추,고추,가지,호박,오이...

많이도 심어 놓았습니다. 그것을 하나씩 만들때마다

내 고마운 지인들을 떠올렸더랬습니다.그대에게 기쁨이 되어줄 것들을

짬날때마다 쉼없이 옮겨 심고 가꾸고 하였습니다.

한켠에는 꽃씨를 뿌리고 꽃을 심었습니다.

귤밭에 주인인 귤나무를 최대한 살려놓고 사이사이 틈도 없이 옮겨 심었더랬습니다.

늘, 그대를 떠올리면서요.

언젠가 만날 고마운 그대를 떠올리면서요.

이것이 내가 나에게 주는 유일한 힐링방법이었습니다.

일을 안할 수는 없는 삶,어디론가 마음대로 나다닐 수도 없는 삶에서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꽃을 키우며 그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가 유기농 귤농부로 거듭 나는 동안 물심양면 밀어준 그대를 떠올리며

나는 그대에게 어떤 존재가 될것인가를 생각했었습니다.

삶에서 피로한 그대에게 나도 힐링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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