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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밭

자연에서 배우며...

by 농부김영란 2009. 7. 16.

 

귤농부인 내가 가장 신경이 예민해 있는 때가  장마철인 이맘때이다.

고온다습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비가 찔끔거리니 충과 균이 기승을 부리고

풀들도 일주일이 멀다하고 한길씩 자라니 친환경 농사가 어렵다는 것을 이맘때 가장 실감한다.

봄 내  쉬지않고 풀을 제압했다고 생각 했는데도 잔뿌리가 남은 산딸기, 넝쿨 식물들이

다시 기세좋게 귤밭을 점령하여 한숨이 절로 나오는 때이고 충들을 즉사 시키는 살충제도  쓰지 않고

균들도 깨끗이 박멸하는 그 어떤 화학약제도 쓰지 못하고

 예방 차원에서 친환경 자제로만 소독하는 정도라 그나마도 자주 소독해 주어야

외관상 봐줄만한 수확을 할수 있으니 일기예보에 초긴장을 하고 주시하고 있게된다.

일주일 내내 질금거리는 비때문에 예정된 소독날짜가 지나 노심초사하는데

2-3일 반짝 하는 날씨가 된다하여 소독을 서두르게 되었다.

봄날내내 남편에게 소독하는 법, 나무 관리, 거름 만들기 등등 전수(^^) 하면서 선배농부라고 뒷짐 지고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이면서 남편을 유치원 농부라며 5학년 농부 여유을 보였는데

장마철에는 비상시국이라 3일 화창하기가 어려운 날씨라 하루에 몰아서 소독을 마쳐야 할 상황이라서

남편을 효돈밭에 태워다 주고...오늘은 혼자서 감당 하시라며 나는 호근동밭으로 내달렸다.

각자 임무 완성하기.서로가 한밭씩 맡아서 소독을 해내야 한다.

 

 

 

 

 

 

남편이 소독을 할때는  내가 두어시간마다 교대해 주면서 담배도 피우고 물도 마시고 잠깐씩

쉬라고 교대를 해주는데 남편은 회사 다닐때처럼 그렇게 잠깐씩 휴식을 취해야 능률이 오른다고 하는데...

나는 농부가...그래서야 어디~~~하면서 그동안 나는 오전 8시부터 시작해서 점심식사 대충 때우고

오후 6시까지 쉬지도 않하고 일한 전력을 들어가며...그런 호사스런 소리 말라고 핀잔을 주는데

아직은 남편이 농삿일에 푹 젖지를 못하였지만  성실하게 하려고 애 쓰는 것을 보니

선배인 내가 관용의 눈으로 그런 남편을 보아준다.대부분...남편이 귀농하여 마지못해

부인이 끌려오다시피 귀농하는 경우가 많던데(^^) 우리는...아내가 먼저 귀농하여 남편을 귀농시킨...

흔치않은 전력이고보니...남의 호기심을 자극할 충분한 소지가 있는 듯하다.

자연과 야생화를 지극히 사랑하던 여자가...농사도 식물 키우기라며 도전하였던 것이

귀농농부가 될 줄은...나도 미처 예견했던 일이 아니었다.

제주도에 와서...내가 귤농부로 살리라는 것은 서울에 있을때만해도 상상치도 않았던 일이었다.

다만 자연에 목말라서 늘...식물을 키우며 갈증을 달래던 나였지만 농부까지 될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호기심 왕성하고, 생각이 떠오르면  발이 먼저 내달리는 호전적인 기질때문에

제주도에 와서 귤밭을 샀으니 내가 관리해야만 될 상황이라 도전한 농부의 길.

첫해는 농업기술원에  문턱이 닳게 드나들며 하라는 고대로 하니...

제법 뿌듯하게 농사가 잘되었는데 지나고보니 그것은 하늘이 도와준 것이었다.

 

 

 

 

 

 

그 후 친환경농업의 메카인 EM환경센타를 알게 되어 나로서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듯 반가왔다.

없는 길을 만들면서 간 선배들이 계시다는 것만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하라는대로, 배운대로 고대로 정직하게 따라 하기만 하면 되니 친환경농사가 무엇이 어렵다고?

그런데 어려움은 정작 나중에 관리가 소홀했을 때 나무가 고사하는데서 오는 것이라

세월이 갈수록 과수 유기농사는 투철한(^^) 소신이 없으면 흔들리게 된다는 것을

주변 유기농 도전했다가 실패한 선배들에게서 유기농부의 길이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초보지만 나름대로 유기농부가 되고자 했을때 먼저 수확부터 염두에 두지 말고

나무의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는데 중점을 두고 관리를 했더니 나무가 건강해져서

몇년 있으면 나무가 죽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나무를 생각지 않고

수확에만 욕심을 낸 결과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간이 살짝 부어있다고 농삼아 말하는 나는 남이 했다면 나라고 못할쏘냐~식의 기백이

때로 겪지 않아도 될 고생까지 사서하는 때가 종종 있긴 했지만

나름 삶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체험한 것 같다.머릿속에 이론만 무성했다면

내 육체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농부의 길도 그저 공상에 그쳤을테지만

남들이 했다면 나도 할수있다, 아니 해내어야 한다는 각오를 안으로 다지니

그 험란한(^^) 농부의 길로 들어서서 어두운 밤하늘 반딧불같은 희망을 보았기에

남편까지 온전한 귀농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소독할 때를 즐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하루종일 줄을 끌면서 한손으로 소독대를 들고 다니니

손목이 뻐근하고 팔이 얼얼하여 며칠은 팔을 쓰기가 힘들더니만 그것도 이제 단련이 되었는지 

아무렇지도 않고 땀으로 흠뻑 젖어서 끝나고나면 몰골이 말이 아니어도

이젠 신경도 쓰이지 않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친환경약제로 소독을 하니

마스크를 쓰고 소독해도 일주일은 몸이 후달리던 농약칠 때와는 달라서(저농약할 때) 그 다음날도 거뜬하다.

소독할때 구석구석 들여다보면서 나무 하나하나의 변화를 관찰할 수가 있어서 소독을 즐기게 되었다.

처음에 소독할 때는 오직 소독하는데만 집중해서 다른 것은 보이지도 않더니 이제는 소독도 유연하게 하면서

나무도 구석구석 다 관찰하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나는 아주 꼼꼼히 들여다 보면서 소독을 하는데

꼭 운전 초보자가 앞만 보고 달려도 목이 뻣뻣하던 때하고 이제는 좌우 사방 다 살피며 여유 부리며

운전하는 베테랑 운전수가 된거나 마찬가지로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이 헉헉대는 모습을 보면서...쯧쯧~하면서...낄낄 웃는 시건방 떠는 5학년 농부의 여유.^^

이런 여유를 얻게되기까지...그 사이...나도 모르는 한숨도 제법 쉬었지만 그것은 과정이었다.

나는 그사이 땀냄새가 진하게 나는 농부의 모습을 스스로 사랑하게 되었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속에서 넉넉함도 많이 배웠다.

수확을 위해 일하지만 나무에게는 견딜만큼만 열매를 달고 부대끼면 다 떨구라고 속삭인다.

내 몸을 기진하면서 열매를 보전하려고 애 쓸 필요는 없다고 나무에게 일러준다.

전 해에 많이 달려서 나무가 부대끼는 모습이 역력한 나무는 일부러 열매를 다 따준다.

미련하게 자기몸도 생각지 않고 혹사하지는 말라고...너도 살고, 그리고 나는 그 나머지로 살아갈게.

서로를 아껴주며 가야하는 길임을 저절로 배우게 해주었다.

 

 

 

 

 

전정은 기술자가 한다는데 겁없는 나는 두어달 교육받고 그때부터 내 귤밭은 나의 전정 실습장이었다.

누가 태어날때부터 기술자였나~이런 지론으로 마구 가지를 잘라보니...

어느덧 이제 전정도 제대로 보인다. 무조건 햇볕 조건 좋게 해주기, 그래서 올 봄에는

과감하게 가지를 쳐냈는데도 여름이 되니 다시 무성해졌다.

구석구석 들여다보니...보석같은 열매들이 얼굴을 드러내며 귀엽게 웃고 있다.

바라보기만해도 사랑스러운 것들,온갖 잡념들이 무념무상이 되게 해 주는 자연이다.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을 늘...되새기며...(그사이 나무들 좀 고생했니?^^)

그렇게 나무도 나도 비, 바람, 태풍, 눈보라 다 함께 이겨 내면서 한마음으로 지내오니

나는 이제는 그 어느 꽃보다도 내가 키우고 가꾼 귤나무가 이뻐서 혼자 보기 아깝다며

지인들께 손짓하고 있다.가을이면 황금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이 세상 그 어떤 꽃도 이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충만감에 사로잡혀서 나는 봄, 여름, 뙤약볕 아래서도 당당할 수 있게 되었다.

햇볕을 그냥 맞아도 피부에 트러블도 생기지 않으니 내 살가죽도 이젠 농부의 삶에 익숙해진 것 같다.

자연은 내게 도시생활에서의 조급함도 떨치고,긴장하지 않아도 될 일상마저도

숨 가쁘게 내달리기만 하던 시간들을 느리게, 천천히, 여유있게 가라고 일러준다.

무더위에  입이 부르트고,기진맥진하는 뜨거운 여름이지만

삶을 향해 두 팔 크게 벌리고...나는 오늘도 태양을 한아름 맞으며...삶의 향기를 음미한다.

 

2007.7.16

 

 

여러가지로 바쁩니다, 헉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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