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앙징맞은 야생화는 꿀풀이다.
어릴때 사루비아처럼 꽃술을 따서 빨아보면 달달한 꿀맛을 주던 예쁜 꽃.
보라색 꽃들은 무조건 용서해주는(잡초에서 제외)
주인덕분에 귤밭 한켠 자갈밭에 귀하게 모셔지기까지 하였다.
아무도 봐 주는이 없어도 저 혼자 피어서 할 일 다하고 가는 자연들이지만
튼실한 귤나무로서도 바람을 못다 잠재운 주인이
꿀풀까지 이렇게 한켠에 모셔 두었다.
그 주인은 이 아이들을 들여다 보면서 히죽거리며 지나 다닌다.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하면 어찌 농부의 지난한 삶을 이겨 내겠는가.
가을이 되기전에 이 미완성 문을 가슴이 콩닥거리는
사립문으로 만들어야 할텐데...
이런 소망하나 품고 이리보고 저리보고
자꾸만 화석이 되어가는 감성을 자극해 보지만...영감이 잘 안 떠오른다.
제대로 하나 번듯하게 해 놓은 것도 없는 삶이면서
자꾸만 스스로를 태우는 성질때문에 가슴에 재만 쌓이고...
그렇게 세월이 다 가버렸구나.
그리움을 잠재우지 못해 이렇게 문도 만들어 보고 길도 만들어 본다.
이 문에서부터 두 갈래 길을 만들었다.일명 귤밭올레길.
문 앞에 하늘색 산수국을 심어 두었다.
귤밭올레(1)에서는 담쟁이가 휘감은 시원한 삼나무 길을 통과하여
창고까지 가는 길.그 아래 겨울에 피는 수선화를 묻어 두었다.
그길도 가슴이 뛰지만...이번에는 작년부터 만들다가 만
귤나무 사이를 지나서 돌담길을 따라 들어가는 아기자기한
또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제주올레길처럼 리본으로
따라가는 방향도 표시해 보고...ㅎㅎ...
이런 소꿉장난 재미있다. 내 삶이 한시도 나를 태만하지 못하게 몰아 부쳤어도
늘...습도를 알맞게 유지할수 있었던 것은
이런 나만의 장난을 하며 나를 달래왔기 때문이다.
서걱 서걱 건조한 사막이 되지 않은 이유.
며칠동안 예지때문에 맘을 부대꼈다.
성적이 떨어져서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
내가 귤 농부로 거듭 나면서 나를 이겨낸다고
미처 아이들을 세세히 챙기지 못한 결과라서
작년부터 또 내 맘이 많이 부대꼈었다.사춘기의 절정에 들어 선 아이와
좌충우돌하면서 명쾌한 해답을 못 찾는 것도 그렇고
철없는 아이가 노는게 좋아서 마냥 놀기만 하려고 하는 것을
어떤 방도를 찾아서라도 아이에게 적절한 길을 찾아 주어야 하는데...
부모로서의 묵직한 고민이 며칠 따라 다니니
급기야 마음까지 무거운 추를 달고 심연속으로 가라앉으려고 했다.
내가 선 이 자리. 내 아이가 선 이 자리.이 시점.
얼마나 중차대한 시기인지...아직 결혼도 안한 선생님 앞에서
눈물부터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주책엄마의 맘을 선생님은 어찌 보셨을까.
길을 만들면서 길을 생각했다.
마음을 비우면 별것도 아닌 것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아직도 비운다 비운다 하지만 제대로 못 비우고 있나부다.
아이 말대로 제대로 해 주지도 못하면서 간섭만 해대니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거겠지.
요즘 아이들,물질 만능의 세계에 살고 있는데
늘 극기하는 것을 먼저 강조하는 구닥다리 엄마 밑에서
아이는 숨이 막혀 하고 반발하고...
나는 늘 그랬지.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것.그런 것은 사소한 것이고
경제적인 이유로 꿈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내 안에 화상의 흔적처럼 남아있는 의식이 부모자리에서
아이에게 늘 극기를 강조하다보니 아이가 어찌 그 부모맘을 다 헤아리겠는가.
요즘 아이들이 우리때같은 꿈을 꾸고 있는지조차 회의하면서도
나는 아이가 올곶게 잘 자라서 자신이 가진 꿈을 맘껏 펼치면서 살기를 바라는데
아이의 꿈이 부모의 무능력으로 좌절될까봐 두려워 했건만...
이 마음을 아이는 언제쯤이나 헤아릴 수 있을까.
아이와 의사소통이 평행선으로만 치닫는 것을 아이 관점에서
헤아려 보려고 자꾸 나를 곱씹어 보지만 답답함은 다 떨칠 수가 없다.
사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은...인정은 하지만...
이 길을 누가, 얼마나 다닌다고 내가 열 일 제쳐 두고
이 길을 만들고 있는지...싶지만...
나를 달래려고, 나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소꿉놀이처럼 길을 만든다.
내가 치유 되어야 내 주변이 평화로워 지기에...
늘 삶은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따라 인생이 달라지더라는 것.
뒤늦은 깨달음에 아이에게 길을 인도해 보지만
아이도...엄마처럼...뒤늦은 후회를 할지라도...
그것도 아이의 삶일진데...
부디 멀리 가지만 말아다오. 선택한 길이 정말 아니다 싶으면
간 것만큼 아까와서 그냥 내쳐 가는 우는 범하지를 말기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되돌아와서 나에게 맞는 길을 가기를.
인생은 짧기도 하지만 길기도 하다는 것.
보라색에 그리도 가슴 절절 하더니
얼마전서부터 하늘색꽃에 가슴이 저리다.
하늘빛...맑은 하늘빛...너무나 의연하게 화사하다.
식목일날 시에서 무료로 나누어 주는 것을 이년전에 받았는데
귤나무 사이에서 제대로 대접을 못 받던 것을
내가 작년에 이 길을 만들려고 귤나무 아래에 심어 둔것이
그 새...이렇게 한 아름이 되어서 홀로 빛나고 있었다.
너를 빛나게 해 줄게.
그래서...하늘색 수국이 지기전에 서둘러 오솔길을 대충 완성했다.
길에 작은 잔디 같은 것은 하늘아래 수목원에서
수선화랑 얻어 온 애란인데 그동안 관리 소홀이었는데도
제 스스로 이렇게 풀속에 갇혀서 살아내고 있었다.
세월이 쌓이니 이렇게 제 몫들을 해내고 있는 식물들이 보이고
그 눈물겨운 삶의 노력이 가상해서...나도 눈물이 나려 하지만
그래서 아름답다.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있는 것.
살아내는 것.가슴에 피멍이 들어도 살아낸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 보다도 더 처절하지만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담장너머...돌보지 않는 마을 운동 공원이 있다.
짜투리 땅에 주민을 위한 운동시설을 갖춘 작은 소공원을 만들었지만...
누가 예까지 운동하러 온다고...그래서 나는 호시탐탐(^^)
저건 내 정원이야~하면서...
일년만 방치해도 그 새 풀밭이 되는데 나에겐 그것이 더 반갑다.
말쑥하게 잘 차려입은 공원은 널려있지만
이렇게 풀밭이 된 공원에서는 토끼풀과 망초꽃과 꿀풀과
패랭이꽃,쑥부쟁이,등심붓꽃,사랑초,싱아,강아지풀, 양지꽃.....
이름도 잘 모르는 풀꽃들이 피고 지니 내가 귤밭에서 일하다가도
지금은 무엇이 피어있나하고 보물찾기하듯 찾아보는 이 소공원을
담장을 끼고 도는 것이 좋아서 제주올레길이 열리기전부터
이 길을 만들면서 도라지도 심고 구절초도 심고 했지만 다 스러지고
그동안 나도 방치해 두었다가 이제야 다시 길을 내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나는 내 가슴에 들어와서 간간히 생각나며
사랑하는 것, 정을 주고 받는 것...
베푸는 것, 나누는 것,배려하는 것,
그런 것들로하여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되어 주는 것들을 떠올리고는
지쳐가려는 나를 일으켜 세우리라.
가슴에 쌓아 두어서 병이 되려고 하거든
그냥 다 버리고, 잊고 날아 오라고...손짓한다.
자연에서 치유받은 내가 그대에게 치유를 도와주마고...
길이 끝나는 곳에 귤나무가 가로막고 있어서
귤나무 터널을 만들었다.그곳을 지나면
창고옆에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그 아래...
탁자를 하나 놓을 것이다.그대를 위해.
그 탁자위에...내가 오래전서부터
꿈꾸고 준비해왔던 식탁을 차릴 것이다.
오색찬란한 음식이 아닌, 건강한 밥상을.
소박하지만...품위를 잃지 않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질그릇에
내 마음을 담아내는 음식을 그대를 위해 차려 볼 생각이다.
내가 기른 갖가지 야채에 된장 하나만 곁들여도
그이상 성찬은 없다는 포만감이 드는 건강한 밥상으로 대접하고 싶다.
온갖 호사스런 음식을 다 본 나이지만
이제는 돌아와...자연 앞에 선 내 눈에...
자연 그대로의 건강한 밥상 그 이상의 성찬이 없다는 생각에
나는 그런 밥상을 나를 찾아준 그대에게 차려보고 싶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황금 귤이 주렁주렁 열린 가을날...
그대를 위해 내가 이런 꿈을 꾸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름을 잊고 마음에 행복을 채우고 있다.
2009.6.21 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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