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어찌나 쏜살같이 흘러 가는지 호랑이 등에 올라 탄 것처럼 어지럽기까지 하다.
그새 봄이 다 가고 뻐꾸기 소리 요란한 여름이 깊어가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인지 5월초부터 여름날씨가 계속 되더니
이제는 한낮에 일을 할라치면 숨이 헉헉 거리고 더위 먹는다는 느낌이 든다.
여름에는 이른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여 한낮에는 쉬고 오후 서너시에나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 학교 보내고 뒷정리 대충하고나면 9시나 되어서야 밭에 도착하니
늘 뙤약볕아래에서 일을 하게 된다. 피부가 검은 편은 아닌 남편이었는데도
이제는 새까맣게 그을러서 농사꾼 티가 확연하다.
유치원 농부라며 내가 선배노릇하였지만 남편 봄내 업적이 크다.
내가 미처 동동 거리며 해내지 못한 일을 남편이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농삿일 외에도 봄이 되면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많아서
늘 마음이 종종걸음치듯 부대꼈는데 올 봄에는 그동안 미처 손이 닿지못해 미뤄둔 것들을
하나씩 해내었다.밭을 하나 더 장만해서 양쪽으로 다니느라
하루도 쉴 새가 없었고 고사리 타령하면서도 고사리는 한번밖에 꺾지 못하고 봄이 다 가버렸다.
남편과 함께 가는 길인데도 일을 찾아서 하면 끝이 없는 일인지라...
친환경 농사를 지으려면 남보다 수고를
두배이상 각오를 해야 한다.
산딸기풀이 점령을 하여서 그것을 잡느라 양쪽으로 거의 한달이 다 갔는데도
잔뿌리가 남아서인지 또 올라오고 있다.이제는 덩쿨들이 귤나무를 휘감기 시작하니
또 쉴새없이 풀과의 전쟁을 벌여야만 한다.
이렇게 끝이 없는 일이라서 농부들이 친환경 농사를 기피하는 듯하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들이붓다시피하여 길러낸
야들야들하고 모양이 이쁜 농산물들을 먹으며 우리 몸은 산성화 되고 황폐화 되어
병원만 점점 번성하게 되었는데도 아직도 사람들은 자각을 못하는 것 같다.
일개미처럼 열심히 벌어서 먹고, 쓰고 하는 소모적인 일에
모두 소비되는 생활 사이클인데도 그 틀을 못 벗어나던 도시생활에서 조금 비껴나보니
이제사 조금, 사람살이의 자유가 느껴진다.
조급함과 수치화된 계산이 늘 앞섰던 삶에서
넉넉한 자유와 감성과 참살이의 근본이 무엇인지 조금씩 느껴진다.
5학년 농부.이제사 농삿일도 조금 보인다.
일부러 의식적으로 참살이를 외치지 않아도,느리게 살기를 추구하지 않아도
자연속에서 시나브로...자연을 닮아 가는 것 같다.
새내기 농부로서의 들뜸도 가라 앉았고,우왕좌왕 남의 말에 귀 기울이던 태도도 없어졌다.
남에게 보여지는 겉모습에 연연하지 않고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일수 있는 의연함이 길러졌다.
농부의 세월과 자연의 이치가 내 안에 녹아든 까닭이다.
남편과 24시간 함께 가는 길이 미리부터 옭죄어 왔었는데
내가 부대끼던 힘 쓰는 일(^^)을 남편이 많이 거들어 주니
일단 내가 살만해져서 좋았다. 그동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이러면서 농부로 거듭났기 때문에 내 몸이 항상 부대꼈다.
체력이 딸리니 정신력으로도 한계가 와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소홀해지니
마음까지 늘 후달리는 상황이었는데 남편이 내가 하던 일을 덜어주니
내가 주변을 좀 돌아볼수있는 여유가 생겼다.
꽃을 키우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는데 올 봄에는 꽃씨도 뿌리고 꽃밭도 만들었다.
사는 일이 도대체가 무엇인지, 왜 내가 달려가고만 있는지,
내 몸과 내 안의 나가 만나지를 못하고 엇박자를 치니 공허감이 휘감았었는데
조금씩 나를 되찾고 있는 듯하다.
남편도 그동안 조직안에서 기계화된 일개미로만 살아서
좀 느슨하게, 자신을 돌아 보기를 바라며 올 한해는 가능한 한
재충전의 해로 삼을려고 한다. 그동안 너무 내달리기만 한 우리들이라서
내심 피로도가 극심한지라 조금씩 여유를 되찾는 해로 정했다.
소득의 결과를 계산하지 않고 올 한해는 매사를 즐겁게 가보려고 한다.
축제도 해보고,이벤트도 해 보고...
사는 일에 조급하던 맘에서 해방되어 보려고 한다.
그래서 5월 한달은 회원님 나무 정하는 걸로 한달이 다 갔는데
가을이 되면 나는 회원님들과 "살아있음이 축복"이라는 주제로 축제를 해보려고 한다.
다 함께...행복해지기...
사는 맛을 느껴보자! 따뜻한 온기를 나누면서 행복해지자!
내가 올해 추구하는 목표이다.
이이상 어떻게 더 열심히 살지?
그런데도 늘 삶은 산 너머 더 큰 산이 있었다.
어느날 기진맥진 해져서 ... 삶의 의지를 놓고 싶을 때.
그렇게 살다 가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는 자각이 왔다.
그렇다고 취미생활이나 유유자적하게 하며 살수있는 여건도 아니니
내 생활을 취미처럼, 즐겁게 받아 들이고, 조금 덜 욕심 부리고
시선을 낮추고, 목소리도 줄이고,건강하게 태어나서 살게된 것만으로도 축복이며
한가지라도 재능이 있다는 것도 축복이며,
성실함도 축복이며, 건강하게 길러진 픔성도 축복이며, 인내를 안으로 쌓아놓은 것도 축복이며
무엇보다도...좋은 사람들을 알아 볼수 있는 깊은 눈이 길러진 것도 축복이라는 깨달음.
헛된 욕심 버리고, 땀 흘려 일하여 얻은 재물을 아껴서 쓰는 소박함.
허상을 쫓지 않고도 나만의 방식으로 행복할수 있게 된 나이에서 오는 편안함.
"혼자만 잘 살면 무신 재민겨?" 하는 깨달음.
작은 배려인데도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가르켜 준 사람들.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는 것을 행으로 보여준 사람들.
일일이 다 말하지 않아도 내 안의 언어를 다 헤아려 주던 사람들.
그리고...더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감싸주던 사람들.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해 지쳐가는 나를 늘 곧추 세우게 해 주었고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주었던 나의 소중한 지인들.
사랑받는다는 충만함과 기쁨을 주었던 내 소중한 사람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이러니...내가 어찌...작은 계산에 연연하겠는가?
아낌없이 받았으니 아낌없이 드리고 싶을 뿐이다.
오랫동안 내 안에서 그리던 그림이 있었다.
어릴때부터 야생화를 너무 좋아 하였고, 늘 내곁에 자연을 끼고 살았다.
회색빛 도시에서도 나는 늘 자연을 옆에 두지 않으면 숨을 쉬지 못하였다.
어쩌면 운명의 당위성인지...농부는 내게 예정된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아 돌아 온 길에서 지쳐있는 나를 다시 충만함으로 채워 준것도 자연이다.
지금 유행처럼 부는 바람, 느리게 살기나 걷기여행이나
내게는 오래전부터 추구하고 행하던 길이었다.
한때 유행처럼 번지다가 시나브로 꺼져 버리는 문화행위의 일종이 아닌
건강하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추구였던 것이다.
이제 남편이 내 노동의 절반 이상을 감당해주니...
나는 그 안에...내가 그리던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다.
이제는 사는 일에 너무 조급해하지 않고...지금가지처럼 그렇게 성실하게 살면
그 모든게 다 잘될거라는 믿음으로 살아낼 것이다.
그리고...살다가...지친 몸과 마음이 되어 재충전이 필요할 때
고향처럼 찾아줄수 있는 사람이 나도 되고 싶다.
바쁜 봄날 중에도 나는 길을 묻고 길을 찾고
아주 느리게 회복이 찾아 왔다.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고단했던 시간들을 천천히 흘러 보내고 나니
뿌옇던 내 시야가 다시금 맑게 다가온다.
그래서...이제서야...
그리운 그대가 떠오른다.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 준 고마운 내 지인들이...
고맙고 사랑한단 말 일일이 다하지 않아도 통하는 내 사랑하는 분들께
봄날을 다 보내고서야 건강하다고 안부 인사 드린다.
잘 살아내고 있고,
잘 살아낼거라고 약속도 해 본다.
그리고...
언제나 건강하셔야하고, 행복 하셔야 한다고
무조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 어떤 순간도 마음 넉넉히 가지고서 잘 이겨 나가야 한다고
멀리서 안부 인사 날린다.
2009.6.7 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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