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6포기만 하면 두달을 먹으니 김장이라는 단어가
어디까지 적용되는지가 모호한 시절이지만...
늦가을에 나는 배추로 다섯포기 이상만 하면 김장한다해야 할듯 하다.
이곳 제주도에 오니 육지배추, 육지 무우로 김치를 해야 무르지 않고 아삭거린다고
이웃들이 가격을 더 주고 육지 배추로 김치를 하는 것을 보았다.
내게는 아직도 육지라는 말이 생소한 단어로 들리는데
이곳 사람들은 육지와 이곳 섬을 그렇게 구분짓고 있었다.
섬으로 이사왔다해도 통신이 잘 발달되어 택배에다가 홈쇼핑에다가 인터넷에다가 ...
이곳 생활이 육지와 고림된 섬이라는 느낌은 거의 느껴지지가 않는데
내가 굳이 육지와 섬을 구분 짓자면...비싼 항공료로하여 명절등
친지를 자주 찾기가 버겁다는 느낌을 받았는 것이 내 느낌의 경계선이었던 것 같다.
남편과 난 둘다 막내에 속하여(난 남동생이 있지만) 시어른도 모두 돌아 가시고
부모님이라고는 친정 엄마 한분 살아 계신다.
친정에서 난 넷째딸이며 막내딸이라 친정 엄마 연세도 내년이면 팔순이 되신다.
엄마는 친정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 하시고, 건강이 나빠지시자
요양차 찾아 드셨던 물좋고 공기 좋은 두메 산골에
(지금은 도회 사람들이 찾아들어 고즈녁한 곳이 없을 지경이지만)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나서도 그곳이 좋다시며 혼자 그곳에 사시는데...
특출나게 성공한 자식이 없어서 편하게 모시지 못하여 늘 죄스런 마음이다.
엄마의 가장 큰 희망이자 삶의 원동력이었던 외아들이 연거푸 사업에 실패하자
엄마는 딸네집에도 오시지 않고 오매불망 아들 잘되어 함께 살기만을 소망하시는지라
딱하게 여기는 딸들이 함께 지내자하여도 일편단심 아들과 함께 살게 되는 날을 고대하고 계신다.
요즘 시절에 형편이 된다해도 며느리가 꼭 모시라는 법도 없건만
종부로 한세월 희생으로 살아온 엄마의 의식으로는 시집간 딸네집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 마음으로 허락되지가 않으신 모양이다.
그래서 할수없이 큰 언니가 장만해 드린 땅에 소일삼아
농사를 지으시면서 지내시는데 그것도 때로 버겁다셔서
그냥 쉬시라 하여서 원가도 나오지않는 농사를 매년 짓고 계신다.
농사라야 콩이나 팥을 심으시는데 콩은 심어서 메주 쑤어 아들네로 주는 것을
낙으로 여기셔서 하는 것이고,팥은 왜인지 모르지만 늘 고집 하신다.
약을 치시거나 비료를 주는 것도 힘에 부치시니 잘 안쳐서
저농약 유기농에 가까운 물건들이어서 속으로는 내심 탐나지만
혹여 형제간에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주고의 형평에 어긋나 의 상할까봐서
일체 엄마가 지은 농사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는데
엄마에게는 그 농삿일이 그나마 사는 낙이시라 우리가 왈가왈부 하지 않고
무엇을 심으시든, 심어서 어떻게 하시든 일체 간섭을 않기로 하여서
엄마의 농산물을 제대로 얻어먹는 자식들도 없다해야 할것이다.
요즘 믿을수없는 먹거리 투성이인데 마음으로는 엄마가 키운 농산물을
얻어먹고싶은 맘이 굴뚝 같으나(^^) 엄마가 어떻게 하시든
좋으실대로 하시게 두기로 하였기에 엄마의 농사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였다.
올해의 엄마의 농사는 콩은 거의 소득이 없고 팥은 팔아서 쌀 한가마 산것이 전부라하니
여름내 엄마가 쏟은 정성은 고사하고 비료값에다가 씨앗,품삯,약값을 따지면
턱없이 밑지는 소득이라 해마다 그냥 두고 노시라하여도
손해나는 그 일을 반복 하시는 것이 엄마의 유일한 낙임을 알기에 우리들은 일체 함구 하고있다.
안부차 전화를 드렸더니 마당 한켠에 심은 배추가 제법 속이 찼는데
이웃집 도회에서 살다 이사온 사람이 하도 탐을 내기에 모두 팔았다 한다.
노인네가 농약없이 기른 것이니 얼마나 탐이 났겠는가마는
먹는이 없다며 덜컥 다 팔았다니 내심 너무 서운하고 안타까왔다.
딸 아들 모두 멀리 있으니 엄마 드실것만 남기고 모두 팔았다는데 단돈 이만원이란다.
속이 안찬 배추는 남기고 팔았다니...시집간 도둑딸이 눈이 번쩍...
"엄마, 나 속안찬 파란 배추 너무 좋아 하는데..."
이런말 듣고서는 제주도가 아니라 외국이라도 보내주고 싶을 엄마이기에
늘 뭐든 아무것도 필요없다 했지만, 그 파란 퍼진 배추가 눈에 아삼거려서
기어이 그말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 다음날 저녁늦게 난 배추값보다도 훨씬 더 비싼 택배비(착불)를 물고서 엄마의 배추를 받았다.
상품이 안되는 속이 안찬 파란 배추...난 이런 배추를 너무나 좋아 하기에
엄마의 노고를 알면서도 염치없는 부탁을 하고야 말았는데
도착한 배추를 보고는 눈시울이 뜨거웠다.엄마를 보는듯해서...
엄마는 엄마대로 자식들에게 못해준것만 자꾸 떠올라서 가슴이 아리다며 목소리가 젖었는데
난 내년에도 엄마 배추를 맛볼수나 있을까 싶어서 마음이 아려왔다.
올 겨울 방학에는 배를 타고서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를 찾아 뵈야겠다.
얼마나 더 오래 사실까싶은 마음에 콧등이 찡하다.
시리고 아린 한 세월을 살아오신 엄마의 삶이 얼마나 남으셨을까 생각하니...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것을 다 주고도 못다해준 것들에 늘 가슴 아려하는데
자식은 부모 사랑에 1/10도 못 미치는것 같다.
엄마의 배추가 너무 귀하게 여겨져서 그 밤에 배추가 시들기전에 절이고서
다음날...나름대로 맛을 내보려고 신경을 써서 김치를 담그었다.
위에 찍은 고구마 시진은 배추 사이에 끼워져 온 고구마인데 딱 한번 먹을 분량이었다.
풋내가 날까봐 찹쌀풀을 쑤어서 해야 하는데 이왕이면 엄마가 보내준것으로 하고 싶어서
고구마 삶은 것을 으깨어서 죽을 쑤어 양념장에 섞었다.
배추는 너무 절지않게 약간 짭잘한 소금물에 담그어서 살짝 절였고
조미료를 쓰지않고 감칠맛을 내기위해 갈치와 다시멸치를 끓여서
채에 받혀서 국물을 만들어서 멸치액젓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다.
양파 몇개를 채썰고 무우를 칼로 채썰고,(칼로 채 썰어야 아삭 거린다.)
쪽파를 넣고, 마늘도 손으로 찧어서 넣었다.
(실은 시장에 가기 싫어서 집에 있는 재료만으로 담그었는데
갓과 미나리, 배, 생강등이 빠졌는데도 재료들이 좋아서인지 맛이 괜찮은것 같다.)
고추가루도 지난번에 소박한 밥상지기님네 유기농 고추가루라 맛이 칼칼하여
김치가 익으면 시원하게 맛이 살아 있을것 같다.
(사진에는 배추가 커 보이지만 손바닥만하여 꼭 한끼 분량의 배추이다.)
김장을 하는 날은 보쌈 김치를 해서 수육도 곁들이고, 한잔 막걸리까지 준비하여
이웃과 나눠먹는 풍경이라야 제격이겠지만 점점 일에 꾀가 나고, 번잡한 일이 꺼려지니
이웃 몰래 김치를 담그고서는 수육도 보쌈도 준비하지 못했다.
꼼지락 거리며 하느라 저녁때야 끝이난 김치(많지도 않은 것을)인지라
고기도 사지 못하였고, 생굴도 사지 못했다.
아무래도 김치가 맛있게 잘 익으면 수육도 삶고,보쌈도 만들어서
오랫만에 이웃과 한잔 해 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편에는 보쌈을 준비해서 올려보아야겠다.
요즘 무우 배추가 제철이라 무우 생채도 시원하고 맛이 있어서 며칠을 무우 생채로 비벼먹었다.
무우 생채에는 생강을 넣는 것이 향기롭고 개운하다.
요즘 배추도 싸고 무우도 싸니 보쌈 김치를 하면 값도 저렴하고
제철 음식이라 영양도 풍부하니 요즘처럼 어렵다는 시절에
딱 어울리는 보쌈과 수육,막걸리 한잔이면 푸짐한 손님상 차림도 될것 같다.
*브로콜리가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 하여서 요즘 브로콜리를 자주 쓰고 있다.
브로콜리를 얇게 저미듯이 썰고, 양파, 표고버섯,당근을
장조림하고 남은 국물을 넣고 중간불에 볶았다.
거의 볶아 졌을때 녹말 가루를 약하게 풀어서 국물을 잦아들게 하였다.
*이곳에 와서 내가 즐겨먹는 해수 두부이다.
바닷물을 간수대신 응고제로 쓰는데 간수 냄새가 전혀나지 않고 구수하여
한번 끓여서 갖은 양념한 간장을 끼얹어서 먹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에게
이 해수두부는 아주 간편하고도 건강식 다이어트 음식인것 같다.
해수 두부는 일반 순두부보다 맛이 훨씬 구수한것 같다.
*아이들 간식으로 만든 절편 피자이다.
추석때 송편 빚으려고 담근 떡쌀을 귀찮다며 절편으로 빼와서는(에고...)
냉동실에 두고서는 노릇하게 구워도 주고 때로는 이렇게 변형하여 아이들 간식을 해 주었다.
요즘 아이들 피자를 왜그리 좋아 하는지...
절편을 노릇하게 구운다음 익은 김치, 양파, 갈은 고기를 함께 볶아서
떡위에 올리고 그위에 피자치즈를 뿌려서 살짝 구은 것인데
쫄깃거리는 떡이 잘 어울려서 아이들이 아주 좋아 하였다.
익은 김치가 들어가야 개운한 맛이 나는것 같다.
2004.11.20. 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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