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일로 마음이 몸보다 앞서서인지 컨디션 조절을 잘 못한듯 싶었다.
이웃지기님이 일주일을 앓고도 손이 벌벌 떨린다는 소식에
나는 큰감기 몸살 앓지않고 한해를 보내니 내가 많이 건강해졌다고
젊은 날 무쇠돌이처럼 몸을 혹사하던 시절을 흉내내며 몸보다 마음이 앞서 달렸더니...
이미 깨진 항아리 그릇 조각을 이어 맞춘것 같던 내 몸이 급기야 반란을 일으켰다.
오른쪽 검지 손가락부터 통증이 오기 시작하더니 이틀후에는 온몸이 쑤시고
뼈 마디 마디가 욱신대고, 온신경 하나하나가 숨을 못쉴 정도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불혹의 나이를 맞으면서 몸도 마음도 내 뜻대로 잘 움직이지 않던 체험을
몇년간 혹독하게 겪으면서 그것이 내가 내 몸을 소홀히 하면서
기운을 소진시켜 탈진 직전까지 몰아대던 무지한 내 생활 습관에서 오는 것이란 것을 깨닫고
이미 기우뚱한 건강을 회복 시키려고 안간힘을 써온 몇년간이었다.
마음이 앞서 내달리기만 하면 쿵하고 쓰러지듯 몸은 탈이 나고야 말아서
이젠 일정 수위를 넘어서지 않으려 조심하며 가고 있었는데...
농장일을 추진하면서 마음부터 급해져서 몸의 기운을 시나브로 소진시키고 있었나부다.
친구가 불러준 "미련 곰탱이 소"라 불러준 내 이미지가 스스로 너무나 적절한것 같아서
자랑(?)이라고 소개글로 올려 놨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무슨 일을 벌리고
매달릴 때는 앞뒤 계산치 않고 내 힘이 소진되어 탈진할 정도에 이르러서야
속도 조절을 할수없이 하게되는 성미임을 한두번 느낀 적이 아니어서
싫다 싫어를 연발하면서도 내 스스로 그런 미련스런 우직함을 떨쳐 낼수가 없으니
이제 팔자처럼 여기고 스스로를 고달프게하는 그런 성질을 함께가자 위안함에 이르렀는데...
젊은 한때는 산이라도 움직일 양 기운을 써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자고나면 다시 거뜬히 회복하고 하였지만 불혹의 나이를 지나면서부터는
몸이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음을 한두번 느낀 것이 아니었다.
한가지 일에 매달리면 옆도, 뒤도, 앞도 돌아보지 않고 미련하게 푹 파묻히는 나.
그래서 한꺼번에 두세가지 일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그동안 일을 벌리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많이 자제해 왔던 것도 내가 일을 벌리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수가 없을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시절이 춘삼월 호시절은 다갔다고 내게 채근해대니
떨치고 일어나서 달려가 보리라고 결심하고 일을 저지른(?) 것인데...
그새 식단도 소홀히 하고 내달렸더니 내 몸부터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아프다고 마냥 드러누울 처지가 아님을 내 몸이 알아 차리라고
하루종일 고마운 죽마고우가 보내준 홍삼을 씹으며 펄펄 끓는 녹차를 사발로 거푸 들이키니
몸살 기운이 한풀 꺾이는 듯 했다. "아파도 아플수도 없고, 슬퍼도 슬플 수도 없이
그렇게 살아내 보는거야.가시덤불이 있어도 그냥 밟고 지나가 보는거야."
스스로에게 그렇게 주문을 걸면서 강하게,잡초처럼 질기게 살아내 보자고
약해지려는 나를 부추기니 까부러지던 몸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는지
다음날이 되자 개운치는 않아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일로 다가온 구정 설날 준비를 한 두가지는 해야될듯 싶어서 시장을 보았다.
어른이 되고나서야 어릴 때 보고 듣고 자란 것들이 내 근간을 이루는 자양분이 되었음을 느끼니
내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행하는 모든 것이
내 아이들의 모습을 형성 시킨다는 생각이 들어서
평소에는 자주 못하더라도 명절때만이라도 기품이 있는 요리를 만들어 보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평소에도 어렵지 않게 하던 음식들도 명색이 전직 요리사였다는 나는
큰 맘 먹어야 해낼 수가 있으니 선천적으로 타고난 솜씨와 재능이 아니어서인가 싶다.
하기사...스무살이 될때까지 난 부엌 근처에도 가기 싫어하던 아이 아니었던가.
어쩌다가 내 삶이 내 의지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꿈을 궤도 수정하여 선택하게 된 것이 요리사였던지라
요리사가 되어 나타난 나를 주위 사람들과 어린 시절 친구들은 연상이 안된다 하였었지.
하지만 살아가다보니 내가 요리사 시절을 거쳤다는 것이 내 인생을 배려한
신의 큰 뜻이 아니었을까하고 요즘은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현학적인 책들을 가까이 하여서 알맹이없이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던 내 의식들이
기술자, 노동자의 삶을 거치면서 진솔해지고,겸손해진 것도 감사하고
삶에서 먹는 낙이 얼마나 큰 행복이거늘 내가 그 길로 가지 않았더라면 어느 한가지라도
제대로 해내는 음식이 있을까 싶기도 하여서이다.
더구나 세 딸의 엄마가 된 나이기에 살림이라곤 제대로 해내는 게 없을 내가
그나마 이론과 실기를 단련받은 세월이 있었기에 아이들에게 기본은 가르켜줄 수 있게 되었으니
돌아보면 신의 배려가 숨겨지지 않은 부분은 없다고 느낀다.
한때는 고통의 시간들도 지내놓고나면 겸손한 깨달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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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떡집으로 전화를 하니 가래떡을 빼서 배달해 줄수 있다 하여서
이웃에게 인사할 몇집을 가래떡으로 선물하기로 하고 나도 아이들과 며칠동안
먹을수 있게 한말을 주문하였더니 오후에 배달해 주었다.
따끈한 떡들을 꿀로도 찍어먹고, 겉이 바삭하게 팬에다 구워도 먹고, 떡국도 끓여먹고...
한창 먹성이 좋은 아이들이라 가래떡은 요긴한 간식거리이다.
우리 어릴때는 말린 가래떡으로 쌀과 함께 튀밥(?)으로 만들어 과자대신 먹기도 했었고,
화롯불에 다림질하는 인두를 올려놓고 썬 가래떡을 구워 먹기도 하였었지.
명절 전날 떡집에는 가래떡을 뽑는 긴 행렬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떡쌀을 몇말이나 담그어서 겨우내내 먹었던 생각도 아련히 떠오른다.
어려운 시절이었다하나 지금보다도 훨씬 풍성하게 살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배추를 수백 포기씩 김장을 담그어서 마당 한켠에 묻어두고 겨우내내
김치 넣은 수제비나 칼국수, 김치 만두를 빚던 생각이 났다.
잘 익은 김치로 빚었던 김치 만두의 개운한 맛을 떠올리면
요즘의 온갖 좋은 재료들이 들어간 그 어떤 만두보다
맛이 시원하고 담백하고 소화가 잘되는 것 같아서
나도 오랫만에 김치 만두를 빚어 보리라 하고
며칠전에 소금으로만 간을 한 김치를 만두용으로 담그어 두었다.
배추는 슴슴하게 절이고,(간이 약하게) 무우를 많이 넣고(시원하라고),
양파 채썰고(양파는 단맛을), 마늘, 파, 생강 넣고 고추 가루는 적게 넣은 시원한 김치로...
이틀 익힌 잘 익은 김치를 송송 썰어서 물기 꼭 짜고,
두부는 한번 삶아서 으깨어 물기 꼭 짠후 소금간하여 한번 볶아주고,
양파를 잘게 썬 후에 다진 돼지고기를 불고기 양념하여(간장,마늘, 생강, 후추,깨소금)
양파의 단맛과 고기맛이 어우러지게 볶아준 후에
재료들을 치대듯이 함께 섞고 계란을 서너개 풀어서 넣는다.
당면도 넣기도 하는데 나는 소화가 잘 안되어서 넣지 않았다.
김치는 고기와 두부를 합한 양만큼으로 넣었다.
밀가루는 약간 되직하게 반죽하여 하룻밤 젖은 물수건을 덮어서 두었다가
밀대로 얇게 밀어서 적당한 주전자 뚜껑으로 잘라서 만두소를 꼭꼭 다지듯이 넣고 만두를 빚었다.
손이 큰 나는 만두소를 수백개 분량을 만들었기에(돼지고기 3근 반, 큰두부 4모,김치 1통)
만들다가 진력이 나서 점점 만두가 커지기 시작했다.^^
만두는 쟁반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 살짝 겉이 얼면 비닐팩에 옮겨 담아서
아이들 간식으로 주려고 차곡차곡 저장했다.
황해도 출신인 엄마에게서 어릴 때 보만두 이야기를 들었었다.
작은 만두 여러개를 큰 만두피에 보자기처럼 싸서 쪄내면
보자기 만두피를 열면 작은 만두들이 진주알처럼 쏟아져 나와서
아주 아름다운 특별한 만두가 된다는 소리를 듣기만 했었지 해보지는 않았었는데
얼마전에 방송에서 그 보만두를 보았기에 한번 해보리라 다짐하였다가
이번에 구정을 맞아 만두를 빚으면서 한번 해 보았다.
당근즙과 시금치 즙으로 색을 낸 만두피로 밤알만하게 빚은 작은 만두들을 큰 만두피로
복주머니 모양으로 싸서 하나씩 쪄서 접시에 담아 남편과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명절임에도 매일 회사에 출근하는 남편에게 요즘 안스럽고도 고마운 마음을
복주머니 만두(내가 칭하는)로 전하였다.
음식은 이렇게, 때로 내가 말로 표현 못하는 언어를 대신 전달해 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2005.2.10.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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