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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살아서 옆에 있어 줄게"

by 농부김영란 2006. 2. 17.

 

 

 

내 마음 한켠에 늘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소식은 아주 가끔씩만 전하는 친구들중에 하나인 내 친구 S는

여고동창인데도 늘...언니같은 느낌을 주는 친구이다.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사는게 요란한 날 늘 부끄럽게 돌아보게하는 친구이다.

늘 고요해 뵈는 친구 앞에서  늘 용천수처럼 솟아 오르고

사방 물방울 튀기는 난  그 친구의 의젓함 앞에 주눅이 들면서도

그녀의 성숙한 자기관리에 존경심과 부러움을 느껴

따라해 보려고 흉내내어도 뱁새가 황새걸음 흉내 내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고 포기하곤 하게하는 친구다.

그릇...의 차이라...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지 아니함을

인정하고 이젠 내 생긴대로 요란하게 징소리내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하고 있다.

 

 

 

 

 

지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그리고 긴 겨울이 다갈때까지...그녀와 난...연락도 없이 지냈다.

나도 그녀를 찾지 않았고...그녀도 날 찾지 않았던 것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그녀도 나처럼 긴...터널을 혼자서 지나가고 있는것이라고...

그것이 건강이든, 주변 요인이든...스스로 힘이 들수록...

다 삭혀낼때까지 소식 단절하는 것을 우린...말하지 않아도 알고있다.

서로에게...행여 짐이 되는게 아닌가하여서...

 

 

 

 

 

밴댕이 그릇인 나는 내 짐을 주변에다가 다 나누어 주어야 가벼워진다 싶어서

힘이 들때면 무진장 수다를 떨며 풀어내는 습관이 있었는데

옆에서 들어주는 사람이 들어주는 자체가 큰 고행의 길임을

언젠가 내가 다른 사람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처한 비관적인(?) 처지를 내가 진지하게 들어준다싶자

시도때도없이 하소연을 하는지라 나중에는 감당하기 어렵게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생각이 그때서야 깨달아졌다.

나는 속에 맺힌것을 입으로라도 풀어내고나면 한결 가벼워지기에 그러했었는데

그 자체가 또 다른 사람에겐 고문이 될수도 있다는 것임을 깨달으니...

의젓한 친구 S가 더욱 믿음직하게 느껴졌다.

 

 

 

 

 

며칠전...S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소식없던 그녀는

역시나 아주 힘든 터널을 빠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릴때부터 건강이 아주 약했던 아이였는데

얼마전 남편과 함께 새로 시작한 사업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무리임을 알면서도 어쩔수없이 강행하다가 거의 실신할 정도에 이르렀다했다.

늘 그랬듯이...다 지내고나서 아주 가볍게 이야기했다.

그녀답게...

그리고는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한다.

"살아서 옆에 있어 줄게.."

그 말한마디에 그녀가 어떤 터널을 지나 왔는지를 다 짐작할듯했다.

 

 

 

 

 

우리는 몇해전에 매스컴에 등장해서 화제가 되었던 산골로 간 다섯남매를 둔

부부 이야기를 부러워 한적이 있었다. 특별한 의식을 가지고

자연에 근거한 산 교육을 시키는 것을,

 특종을 찾는 매스컴이 포착하여 대서특필하다시피 했었는데

얼마전 그 중심에 있던 다섯남매의 엄마가 마흔다섯 나이에 이승을 떠났다는 소식을

네티즌들이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접하고는

나도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었는데 친구가 그 이야기를 내게 물었다.

 

 

 

 

 

산골로 간 다섯남매의 엄마가 마흔 다섯 나이에 저세상으로 가다....니...

무책임한 엄마라느니, 다섯 남매의 장래가 걱정 된다느니...

세상의 잣대로 보는 무수한 비난과 질타들이 쌓이는 것을 보고...

나도 남겨진 다섯  아이들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었다.

그런데...한편 나는 그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았다.

아마도...기력이 소진하여...그냥 그대로...땅에 꺼지듯이 잦아들지 않았을까하는...

소신을 가지고...아이 하나 하나 키워내기가 어디 만만한 일이든가 말이다.

세 아이도 때로 버겁다 여겨지는데 다섯 아이가 그냥 커졌을까...

더구나...생계를 위해 거친 노동에...

기력이 바람앞에 촛불처럼 약해졌을것 같다.

세상의 거친 바람앞에 아이들을 그냥 두고 가려니...

차마 눈인들 제대로 감았을까...

난 어미된 심정으로 그렇게 헤아릴 것 같았다.

 

 

 

 

 

친구와 난 그 엄마를 떠 올리며 서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너무나 아파서 숨을 쉬지 못할때...

친구는 아들에게 "엄마가 살아서 옆에 있어 줄게"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어떻게 살아갈까로 미리부터 걱정하는 내게 친구는 또 한마디 말로서

내 폭풍우를 가라앉혀 주었다.

옆에 있어 주는 것...엄마가 옆에 있어 주는것.그 자체만으로도

그 어떤 시련도 아이들은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될것이야.

"살아서 옆에 있어 줄게"자꾸만 그 말을 되뇌면서...

나도...내 아이들을 생각했다.

 

 

 

 

 

 

2006.2.17. 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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