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밭은 관리해 주실 분을 찾아서 심적 부담은 덜었는데
(귤에 대해 문외한이라 배우기위해 관리해 주실 분을 찾았다.)
귤밭 주변을 정리하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라
어수선하기 그지없는 주변 정리를 짬짬이 하는데도 아직도 절반도 못하였다.
씨를 뿌려야 하는 시기인데 정리가 못되어서
내 맘이 다급해져서 좀 무리를 했더니 그예 몸살 감기를 앓고...
그리고 그 휴유증인지 요 며칠은 일어 나지를 못했다.
눈만 뜨면 농장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몸이 전혀 반응을 안하고
마음도 웬일인지...밭에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냥 식물인간처럼 늘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이었다.
쉬엄쉬엄 가자하면서도 씨 뿌리는 것을 더 미룰수는 없겠기에 마음이 앞서 내달렸었나부다.
그렇게 3일을 아무것도 않고 뒹굴거리니 좀 살만한 것 같아서
오늘 남은 씨앗을 뿌리려고 밭으러 향했다.
얼마되지도 않는 것을 세번에 걸쳐서 뿌렸다.이미 첫째날 뿌린 것은 싹이 파랗게 돋았다.
(부지런한 농부는 하루에 할 일인지도 모르는데...)
밭으로 갈때 내가 꾸리는 배낭 속에는...녹차 보온병(세잔정도), 커피 두잔정도 보온병,
뜨거운 물 보온병, 머그잔...오늘은 무우 말랭이로 간단히 말은 김밥 두줄에다가
국물용으로 컵라면 하나...먹으러 가는 것인지...일하러 가는 것인지...^^
그리고 디카 챙기고...챙 넓은 모자에 마스크까지(햇볕에 덜 타려고...),일할때 입을 여벌옷...
밭에 도착하면 내가 올 봄에 장만한 소품들이 있다.
반짝이는 손수레(거금 12만원 줌),쇠스랑, 삽,호미, 낫,손도끼,톱,전지 가위,장화...
요즘 주로 쓰는 연장은 호미와 손도끼이다.
호미는 밭을 일구고 이랑을 만들고 씨앗을 뿌리는데 쓰고
손도끼는 엉키고 설킨 나무 뿌리들을 잘라내는데 쓴다.
오늘은 그저께 뿌리다가 남긴 호박씨,나팔꽃씨,오이씨등을 담벼락으로 돌아가면서 심어놓고
실험삼아 사왔던 고추 씨앗들도 뿌렸다.고추씨앗으로 하는 것보다
모종으로해야 고추를 제대로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안되면 고춧잎이라도 먹지 싶어서 씨앗을 뿌려 보았다.
진짜 농군이 보면 거의 장난 수준일것임에도 내가 봄내 어수선한 주변 정리하여
손바닥만한 공간을 확보한 것도 내겐 큰 일을 해낸 것처럼 여겨진다.
오늘은 지난번 정리한 곳에(위의 사진) 밭이랑을 만들어서 씨앗을 뿌리기 좋게 만들었다.
3여평 정도의 땅인데도 흙속에 엉긴 뿌리들을 제거하면서 이랑을 만들자니 몇시간이나 걸렸다.
처음에는 옥수수를 심을 요량으로 만들었다가 오후 1시가 넘어서자
키 큰 삼나무때문에 그늘이 지는 것을 보고 열매 달리는 것보다는 엽채류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마당에서나마 체득했던 경험담으로는 일조량이 하루종일 풍부한 곳이라야
열매 달리는 식물을 제대로 수확을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꼈기에
엄마가 보내 주신다는 들깨를 심어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들깨가 안달리더라도 깻잎이라도 넉넉히 먹을수 있다면 싶어서였다.
몇시간을 호미질을 했더니 손아귀가 아프고, 팔이 뻐근하였다.
왼손으로도 번갈아가면서 하면 좋은데 오른손잡이라 왼손이 더디어서 오른손으로만 하니
아침에 오른손이 붓는 것을 느낀다.아직은 내 몸이 내 마음만큼 따라 주지를 못하니
천천히가자고 스스로를 자꾸만 달래야한다.
귤밭 오는 길에 누가 버려 두었던 전선 감는 둥근 탁자를 지난번에 아이들과 굴려서 가져와
간이 식탁으로 쓰고 있는데 일하다가 그곳에 앉아서 차도 마시고 점심도 먹는 시간은
내가 진짜 농부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포만감이 밀려온다.
오늘도 가져온 김밥에 컵라면 국물(앞으로는 된장국물을 가져와야겠다고 생각 하였다)로 속을 달래고
디저트로 커피까지 마시며 주변 나무들도 살피고 새소리도 듣고 있는데
어디서 장끼 한마리가 근처에 날아와 앉는 것을 보았다.소리내지 않고 엿보고 있자니
여기저기 활보하면서 다니기에 디카를 꺼내서 찍으려하니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몸을 땅 가까이에대고 살펴보니 멀리서 돌아 다니는 장끼(수꿩)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에 담을 생각에 장끼가 사라진 부근에서 헤메는데
분명히 날아가는 것은 보지 못했는데 어딘가에 몸을 숨겼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어릴때 시골에 살때 꿩들이 씨앗들을 다 먹어 버리고 새싹들을 뒤집어 놓아서
농사를 망치는지라 사람들이 사이나라는 약을 콩에 구멍을 내어서 집어 넣어
꿩이 먹으면 꿩이 죽는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었다.그래서 이웃들이 꿩을 잡았다는 소릴 듣고
우리는 죽이지 말고 생포를 했으면 해서 콩속에 술약을 넣어서 꿩이 먹고 술에 취해
비틀거릴때 생포하면 어떻겠냐고 어른들께 건의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가만히 보니 내가 꿩을 반가와만 할일이 아닌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꿩소리가 신기하고 반가왔는데 이제보니 저 꿩들이 내가 심은
씨앗들을 먹기위해 모여 드는게 아닌가 싶었다.어쩌면 내가 애써서 뿌리는 씨앗들이
새들이 먹고, 벌레들이 먹고...그리고나면 내가 먹을 것이 없어지는게 아닐가하는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했다.농약친 먹거리들이 싫어서 손수 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나.
우선 내가 먹을것만이라도 심어서 먹어 보고자 하는 나이지만
앞으로 만나야 할 여러가지 난관들을 어떻게 잘 해결해 가야할지...
공생을 위한 또 한권의 새로운 드라마가 탄생할 것 같다.
밭 이랑을 만들면서 나오는 지렁이는 햇볕에 몸이 말라 죽을까봐 얼른 덮어주고
무슨 애벌레인지 모르지만 밤만한 굼뱅이들도 다시 묻어주고...
새소리 영롱하여 어서 오라 손짓하고...모두 함께 살자하는 나.
내가 그토록 그리던 자연속에 있으니 마음은 맑은 하늘만큼이나 청명한데
몸은 노동에 단련이 되지않아 하루 건너 하루는 쉬어야 할 상태이긴 하지만
고단한 농부의 하루는 정신은 맑고 더욱 투명해지는 것같다.
요즘은 농사철이라서 이웃 밭에서 들려오는 사람 소리도 정겹다.
이웃 밭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와 새소리,
아파트 5층 높이만큼이나 큰 삼나무를 휘감는 바람 소리들을 들으며...
내가 바야흐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며 이 봄을 보내고 있다.
고단하지만 충만한 하루 일상이 내 안의 티끌들을 씻어 내리고 있음을 살며시 느끼는 요즘이다.
일요일에는 가까운 곳으러 나가니 유채꽃, 벚꽃이 만개 하였다.
이곳 서귀포는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많은 곳이다.
길거리마다 <꿈의 도시 서귀포>라는 팻말이 있는데 정말 공감한다.
아이들에게 가슴속에 이 아름다운 자연을 잘 담아두라고 늘,잔소리를 되뇌는 나이다.
어렸을 때 담아둔 자연 풍경은 살아 가면서 평생동안 자양분이 됨을 익히 깨달았었기에...
자연을 즐길수 있는 감성만 있으면 어디서든 고향처럼 풍요하게 살 수가 있다고...
이곳이 외롭고, 쓸쓸한 타향이 분명한데도,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이 곁에 있어서인지
나는 이곳이 고향처럼 정겹게만 느껴진다.간간히...육지 사람과 구분짓는 사람들에게서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긴 하지만 고향을 떠나서 20년이 넘게 살았던
타향살이(서울)에서 느꼈던 것은 어디서든 정 붙이고 살면 고향이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만난 몇몇의 이곳 사람들 또한 순박하고, 인정스럽고 각박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난 주저하지 않고, 이곳에서 농부가 되기로 하였다.
이곳 서귀포를 오래도록 사랑하고, 고향처럼 생각하고 살고 싶은 생각에
난 이곳에서 행복한 농부가 되기로 한 것이다.
*요즘 예인이가 내 말문을 막히게 했던 질문들*
"엄마, 물은 왜 자를 수가 없어요?" "..."
길 가다가 참새 두 마리를 만났다.
"엄마, 참새는 누가 엄마인지 아기인지 어떻게 알아요?"
"엉? ...자기들끼리는 알아봐" 궁색한 내 대답.
"엄마, 참새들은 좋겠다,"짹"하는 말만 배우면 되니까..."
"엥?...짹...짹짹...짹짹짹...에구구..."
2005.4.5. 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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