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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나의 둘째딸 예지에게!

by 농부김영란 2020. 10. 6.

 

 

스물일곱해를 엄마딸로 산 예지야!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기 연습을 하고 있는 너의 모습 지켜보며

엄마는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너가 꿈꾸는 곳으로 바로 직진하지 못하여

방황하는 모습도 지켜보며...

스스로 길을 찾아서 나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 마음을 기록해 두고 싶어.

 

이제 삶의 황혼 노을이 깃들기 시작한 엄마가 보기엔 부럽기만한 나이인데,

너는 방황하는 청춘이라 안타깝기도 하고, 

 뻐근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면서

단단해지고 있는 과정이라며 담담히 지켜 볼 수 있는 엄마는...

 

내게도 아팠던 27살이 있었기 때문이지.

 

스물일곱 너를 바라보며...

 

삶이 아득했던 엄마의 스물일곱살이 떠오르면서

삶이란 무엇인가 되물어 본단다.

 

 

 

 

 

엄마의 스물일곱살은 요리사가 되기위한 학교를 다니고 있었어.

 

원하는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가야만해서(형편상)

 5번이나 대입학력고사 체력장 시험을 보았는데

체력장 시험장에서 고3 담임 선생님을 만났는데 "너 또 왔나?" 하시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 

그냥 아무말도 하지 않고 머리만 한번 쓰다듬어 주셨어도 좋았을 것을...

꿈을 포기 못해서 5번이나 시험 보러오는 제자의 사연도 모르면서...

원하는 학교에는 붙었지만 장학생이 아니어서 (학교를 다닐 형편이 못되서)

더이상 체력장 시험장에서 선생님을 만나지 않으려고

장학금을 주는 학교에  그냥 들어갔어.

기능인이 되어야 적당한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겠다 싶어서

예술요리에 반해서 요리학교에 들어갔어.

재능도 관심도 없었던 분야지만, 뭐든 열심히하는 성격 덕분에 잘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원래의 꿈은 아니었어서 내면은 늘 방황했던거 같아.

 

우여곡절끝에 들어간 요리학교 시절.

과수석으로 들어가서 학비는 면제되었지만 생활비는 벌어야해서

과외를 두 건하고 저녁에는 카페에서 캐셔를 했었어.

과로와 영양실조로 그해 겨울...감기인 줄 알았는데 낫지를 않아서

병원에 가보니 폐결핵3기였었어.

털썩 주저앉았어.머리가 하얘지고...

 

아파트 작은방에 세들어 살았었는데

주인 아줌마가 밤새 콜록거리며 기침하는 소리를 듣고

방을 빼라고 하더군.

 

엄마의 엄마에게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할머니가 진 삶의 무게는 나보다 더 컸었기에 말조차 꺼내지 않았어.

사업실패에다가  중풍이 되어 누워있는 남편수발에,

  하나뿐인 종손아들  대학등록금까지 벌어야했던 엄마가

막내딸이 꿈을 이루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고학으로 학교를 다니다가

폐결핵까지 걸려서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의 엄마는 삶을 견디기 힘드실 것 같았어.

 

엄마에게는 소식 전하지 않고 삼촌에게 편지를 썼어.

그런데 편지가 되돌아 왔어.

 

...................................................

 

 

사방 벽이 쳐진 문이 없는 공간에서

삶을 마주하고 담판을 지을 수 밖에 없었어.

인연이 조금 있는 춘천에서 사시는 의사 선생님께 편지를 썼어.

폐결핵은 잘 먹고 잘 쉬어야 하는 병이라고...

1년동안 약을 먹고 6개월동안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의사선생님께서 속성으로 9개월동안 먹는 약을 매달 보내 주셨고,

주사는 가까운 병원에서 맞으라고 하셨어.

주사비용도 아껴야해서 먼거리에 있는 친구가 근무하는 병원에 가서

매일 주사를 맞으려고하니 번거로와서 친구에게 주사 맞는 법을 배워서

내 엉덩이에 내가 주사를 놨어.

매일 주사를 맞으니 엉덩이가 딱딱해져서 주사 바늘이 들어가지를 않곤 했어.

매일 아침 식전에 한웅큼의 약을 먹으니 어지러워서

길을 걸으면 길이 춤을 추곤 했어.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삶의 의지가 그때 강렬해진거 같아.

 

학교도 그냥 다니고, 과외도 그냥 진행했어.

약 먹으면 전파는 하지 않는다고 하여서...

과외를 했던 집 엄마는 나만 가면 진수성찬을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서 주셨어.

창백하고 기운없는 내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어도 아픈 기운을 느꼈나봐.

세상은 따뜻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어서 유지하는 것 같아.

 

 

벚꽃이 화사한 캠퍼스에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비가 천상의 꽃인가 싶었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바라보는 삶.

 

주변 아무에게도 내가 폐결핵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교수님께서 물었어. 어디 아픈게 아니냐고?

말로하지 않아도 새어나오는 기운이 아파 보였겠지.

계절병이라고만 말했어.

 

왜 내가 혼자 감당하려고만 했을까?

왜 내가 인생멘토를 만들지 않고 스스로 헤쳐 나가려고만 했을까?

지금 생각하니...지혜롭지 못했던 내가 보여.

 

 

...................................................................

 

 

9개월 후...

기적처럼 폐결핵이 다 낫고

나는 호텔에 요리사로 입사 할 수 있었어.

감사하게도...신은...내 손을 잡아주신거지.

 

 

 

 

 

 

 

엄마의 이야기는 구태의연한 꼰대 이야기도 될 수 있겠다 싶어서 묻어 두었었는데

나의 딸들이 세상에 나가서 적응하고 홀로서야 하는 시기가 되니까 생각이 많아지네~

 

새싹이 뿌리 내리고 나무가 되려면 비바람도 폭풍우도 다 이겨내야겠지.

 

우리 세대는, 우리 윗세대는 지금의 아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없는 환경이었음에도

불굴의 의지로 살아내었기에

부모와 자식간에 소통하기가 더 어려울거 같아.

 

 

 

 

 

 

 

예지야~

사춘기때부터 폭풍우처럼 쏟아내던 너의 반항이

삶의 또다른 에너지였다는 것을 나는 얼마전에야 깨달았어.

소통이 안되던 너와의 관계에서

엄마의 유연하지 못한 사고를 발견했어.

 

나의 자녀로 온 아이들이 내 소유물이 아니고

나는 너희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손잡아 주는 ...

신이 대신 보낸 엄마라는 것을.

 

엄마도 많이 아파했고, 견디어 냈고, 이겨냈기에...

너의 청춘의 시기도 단단해지는 시기라고 지켜봐줄 수 있게 되었어.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번 뿐.

매순간 행복하게 살아야 함을...

 

시련과 마주하면 속절없이 목숨을 접는 행위들을 접하고 안타까움이 들어.

(너의 학교 친구가 얼마전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어려움을 겪을 때...풀어나가면서...금강석처럼 단단해지고

자기다움을 만들어가게 되더라고.

 

삶을 일주일에 비유하면

하루는 화창하고

이틀은 흐리거나 바람 불고

이틀은 비가 오고 바람 더 세고

또 이틀은 태풍 회오리가 부는거 같아.

 

온실의 화초는 바람이 조금만 쎄도 부러지지만

바깥에서 자란 야생초는 태풍 바람에도 살아남지.

그게 생명력이고, 그게 사는 맛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누구보다도 에너지가 많은 예지가

세상 경험 두루 하면서 단단해지기를 바래.

언제나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이니까 자신을 잘 지키면서

세상에 잘 적응하고 헤쳐 나갔으면 해.

엄마도 아득하던 스물일곱살을 지나와서

지금...살아온 길을 담담히 반추하며...

그 어떤 삶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어.

 

구필화가 임경식님의 그림과 함께

엄마의 스물일곱살을 고백해 보는 것도

우리 예지가 살면서 만날 작은 시련들을 가볍게 잘 넘기기를 바래서야.

 

 

둘러보면...

너무나 감사할 일들이 많아...

너가 해야 할 일도 많고...

 

 

스물일곱살 우리 예지...

예순살 엄마가 늘 뒤에서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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