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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밭

단 비

by 농부김영란 2016. 8. 28.





너무나도 간절히 기다리던 단 비가 와서

 귤나무의 마음이 되어서

내 마음도 밤새 비를 흠뻑 맞고 있다.

한밤중에 내리는 비를 표현할 길을 찾아보니

가로등 불빛에 비친 빗줄기.

빗소리를 음악처럼 들으며 밤을 지새고 있다.

날 밝으면 얼굴 활짝 편 귤나무들을 보러 달려 가야겠다.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기도가 하늘에 닿았군요.

이제 귤나무가 살았습니다"


귤농부도 이제 몸살이 물러 가겠지요.





(달맞이꽃)



봄부터 이어졌던 장마가 지겹다 했는데

장마 끝나고 비가 두어달 안 오니...

또 애간장이 녹았다.


귤나무 잎이 노래지는 것을 보니

내 가슴도 타들어 갔다.

빌레(화산 암반석)위에서 피고 지던

겹 물망초와 낮달맞이는 이미 다 말라 버리고

마른 잎과 줄기만 남겼다,

뿌리는 살아 있을까?

귤나무 뿌리는 물을 찾아 온 사방을 헤메어도

먼지 자욱하게 일어나는 흙속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시들어 가고 있었다.

귤은 더이상 자라지를 않고 시들어 가는 기색이 보였다.


그들의 신음과 그들의 갈증이 내게 전해져 오자

나도 일손도 안 잡히고 몸살이 오기 시작했다.

여름내 그 뜨거운 태양을 이기며 가열차게 일을 했는데

타들어가는 귤나무를 보고나서는

온 몸이 뻐근하고 마음이 잡히지를 않고 일도 하기 싫었다.

귤농부는 귤나무와 일심동체다.

여기저기서 스프링쿨러를 돌리기 시작해서

나도 다음주부터는 귤나무 물주기에 돌입하려고 마음 먹었었다.

청귤 수확은 보류,뒤로 미루었다.

"청귤 수확 할 때가 아니구나~ "하고 직감했다.


청(풋귤)을 따서 막내 등록금이라도 마련해야지~ 했던

야심찬(^^) 계획은 청귤(풋귤)을 첫날 따보고

바로 전략을 수정해야만 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귤이 떨어지고

비가 또 너무 안와서 귤이 떨어지고...

겨울에 수확할 귤도 넉넉하지 못할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청귤(풋귤)을 대대적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반디유기농청귤(풋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지

주문이 가뭄에 콩나듯이 하여서 한편 뻐근하기도 했었다.

우리는 겨울에 내보내는 귤이 10kg 한상자가 일반판매가가 35000원이다.

귤나무 회원가는 30000원이라 시중 유기농귤 최저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기재배 10년차를 넘긴 농부는 이미 온갖 산전수전을 넘긴 상태라서

경제적인 개념은 다 내려놓은 상태다.

그런데 왜 청귤(풋귤)은 시중 최고가로 판매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해야만 했다.

나는 정당한 가격을 책정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훨씬 싸게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우위가 된 것이다.

지금 청귤이 자라서 귤 두박스가 될것이라 청귤값을 그리 책정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찌 완숙귤값에 청귤값을 책정했지? 하는 의문???


나는 우직하고 미련(^^)한 구석이 있어서

유기농농부를 10년을 넘길 수가 있었다.

유기재배 5-6년을 넘기면서 귤나무는 새로 태어난다.

귤나무는 자기 몸에 맞게만 열매를 달고 몸이 부대끼면

다음해는 해걸이를 하기때문에 수입면에서

노동력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피하는 농사이다.

사람들이 돈되는 일에는 하이에나처럼 몰려 드는데

왜 유기농농사는 늘어나지를 않고 오히려 줄어 드는가가 그 답일 것이다.

유기농사 10년을 넘기고 포기하는 선배농부들을 보며

나도 10년차를 넘기면서 내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그래도 이 길을 계속 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


10년이 분수령이다.

이 길을 갈 것인가?

타협 할 것인가?

포기 할 것인가?

나는 길이 막힌  네모상자 속에 갇혔다.

묻고 또 물었다.

또 외로왔다.

(그동안 걸어오는 길도 늘 외로왔다^^)

남들 다 가는 편한 길로 가지 않고

혼자 의로운 척 누굴 위해 그러고 있는거지?하는 자조감까지 몰려오곤 했다.






고군분투 끝에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겨우 현상유지를 하게 된 식당이 하나 있는데

그 집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자

사람들이 그 옆에  식당을 줄줄이 차렸다. 

 "내가 원조" "tv에서 나온 맛집"하며

번쩍거리는 네온싸인까지 동원해서

람들의 이목을 끌어서 호객행위를 하자

진짜원조집에 오던 고객들이 분산되어서

원조식당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자칫하면 거기서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꼭...그런 기분이 든다.

진퇴양난의 기분.


10년을 넘긴 유기농농부가 느끼는 심정이다.

공멸하는 길이로군...하는 느낌.

오래 오래 다지고 공들여 쌓은 탑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평가하고

고객들은 작은 이익에 연연해서 바람처럼 움직인다.


"다 같은 귤이라고?????  천만에..."

유기농사는 흙을 살리는 농사이기 때문에

오래 오래 묵을수록 자연에 가까와지기 때문이다.

자연재배로는 상품귤을 만들기가 불가능에 가까와서

그래도 유기농이 가장 자연에 가까운 농사이기때문에

그 가치가 다른 것이다.

10년을 넘긴 유기농귤나무는 마치 쇠꼬챙이처럼 단단하다.

그 귤나무와 함께 걸어왔던 귤농부도 더욱더 외골수 고집쟁이가 되었다.

타협하려는 유혹이 스며들까봐 더욱 마음문을 닫고 살았기 때문이다.

농산물은 그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가짐을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시련을 뛰어 넘은 내공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를 마음으로 밤새 맞으면서

요즘 뻐근했던 내 마음을 풀어 놓았는데...

밤새 내리던 빗소리가 아침이 밝아 오면서 잦아든다.

비가 밤새 와서 참으로 행복한 밤이었다.

이만큼 비가 왔으면 모두 다~ 살았다.

이제 살아난 귤나무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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