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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밭

<꿈>밭 이야기

by 농부김영란 2015. 4. 19.

 

2005년 1월에 1300평 <희망>밭을 장만 하면서

반디농장이 시작 되었지요.

2004년 5월에 남편이 제주도로 발령이 나서 전가족이 따라 나섰는데

이듬해 1월에 귤밭을 장만 했으니 제가 예나 지금이나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저지르는 성미는 타고난게 분명 한 것 같아요.ㅎㅎ...

제주도로 발령이 난 서울에서 온 직원은 사원 아파트를 제공 하여서

서울집 전세준 돈으로 뒷일 생각 안하고

일단 귤밭을 사고 싶은 마음에 저지른 것이 제가 귤농부가 된 단초가 되었지요.^^

http://blog.daum.net/yeainmam/1174058(세자매 불란지농장)

 

아무것도 모르고 귤밭이구나~ 하고 장만한 첫번째 귤밭.

첫번째 조건은 집에서 차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밭이면서

길이 양호한 밭을 조건으로 하고

귤나무 상태도 모르고 밭도 모르고

그냥 좋아라~ 하면서 장만 한 밭이었어요.

우리밭 한가운데로 길이 난 것도 모르고

지적도에는 내 땅인 길이 귤밭 한가운데로 나 있는 제주도 땅의 특성을 모르고

덜컥 장만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 땅에 버젓이 아스팔트 길이 나 있는거예요.

지금도 여전히 길이 우리 땅에 나서 길은 더 정비 되었고

내 속쓰림은 10년째 계속 되고 있네요.TT

 

하여간에 저는 2005년 1월에 <희망>밭 하나를 장만 하면서

대망의 귤농부가 되었습니다.

3년 후 남편이 명퇴를 하면서 아예 농부로 살기로 작심하고

서울 집을 정리 하면서 귤밭을 더 장만 해야 했는데

<희망>밭 바로 옆에 있는 밭을 사서 붙이면 가장 좋겠다는 생각에

옆밭에 물어보니 파실 생각이 전혀 없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신효동에 믿음밭을 1200평 장만 했는데

첫해는 수확이 많아서 2500평 농사로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제 수입 목표가는 남편이 직장 다닐 때 받는 월급 정도 였거든요)

그런데 그 다음해는 믿음밭에 귤이 정말 하나도 안 열린 거예요.

상품귤 10상자 정도로...완전 해걸이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혼비백산하여서 그 다음 해 다시 1400평 <기쁨>밭을 장만 했어요.

 

혹자는 제가 제주도 와서 귤농사 지어서 돈을 벌어서

 귤밭을 해마다 샀나~하고 물어 보시지만

서울집이 귤밭으로 바뀐 것이지 농사 지어서는 사실

먹고 살기가 빠듯하다는 것을 지금까지 느꼈어요.

그래서 밭이 3군데로 나누어지게 되었고 그 이듬해 지인이

귤밭을 장만 하시면서 은퇴 후에 오신다고 저희더러 관리해주라고 하셔서

1700평 귤밭을 임대하여 경작하게 되어 귤밭이 네군데로 나누어지게 되니

동서남북으로 이동하면서 귤밭을 관리하자니

일의 능률이 떨어지고 어느 한 밭에 시설화를 할 수 없으니

모든 것을 몸으로 때워야 하는 상황이라

정말...무지막지하게...일을 해야 하는 운명과 만나게 되었지요.TT

임대밭까지 왜 욕심내서 했냐고 물으신다면

유기농 재배를 하면서 점점 더 떨어지는 수확량 때문이었어요.

유기재배 5년차 이후는 처음보다 거의 절반 정도로 수확량이 줄어 들었거든요.

험란한(^^) 유기농부의 길을 농사 왕초보가 10년을

거침없이 하이킥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결같이 응원을 해 주시고

어깨동무 해주셨던 회원님들 덕분이었지요.

 

2007년도 남편이 23년 다니던 신라호텔을 명퇴 당하고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저희 집 세자매는 큰 아이가 중3,둘째가 중1, 막내가  초 4학년이었으니

그때부터 저의 삶은 호랑이 등에 올라 탄것처럼 혼비백산한 시간이었지요.

돌아보면 구구절절...블로그에 심중을 풀어 내면서

용기도 얻고, 도움도 받고, 무한 신뢰를 받으면서

대한민국 아줌마의 기백과 깡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예까지 왔네요.^^

 

10년의 고개를 넘으면서 저는 50대 중반이 되었고

아이들은 큰 아이가 대학 졸업하고 둘째가 대학 3년

막내가 고3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다시금 시련이 찾아 온 것은 갱년기로하여

온 몸으로 일을 해내던 기운이 잦아 들고 체력이 급격히 줄어 드는 것입니다.

돌아보니...무지막지하게 일을 해낸 세월이었습니다.

윤활유없이 기계를 억지로 돌리니 기계가 마모되어

어느날 기계가 완전히 작동을 멈춰 버릴 것 같은 느낌....받았습니다.

기계(몸)가 자꾸 슬로모션으로...

몸과 마음이 예전같지 않으니 저는 독수리의 비상을 곱씹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이대로는...더 이상 갈 수 없어~

모든 것을 재정비 해야 해.

남은 삶을 내 몸에 맞게 재단해서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다시 새로 정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 했습니다.

 

밭을 한곳으로 모으고 내 몸에 맞게 일을 줄이고

수입구조를 재편성 하고 ...혁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밭을 한곳에 모으는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았는데

하늘의 도우심으로 지난해 드디어

<희망>밭 옆 밭을 장만 하게 되었습니다.

땅과 부채만 있고 현금이 없었으니 땅을 바꾸는 작업을 한 것인데

제가 원하는대로 일이 풀려서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조상님,운명의 수호신님께서 저의 간절한 소망을

헤아리고 그동안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고

보상을 해주신 느낌입니다.^^

 

새 밭을 샀다고 하니 사람들은 제가 그사이 돈을 많이 벌어서

또 밭을 장만했나~하는 시선을 보내는데

그사이 먹고 사느라 돈을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빚이 늘어 났지만

가진 것이 귤밭이라 <기쁨>밭과 <믿음>밭 일부를 정리하고

<희망>밭 옆에 <꿈>밭을 장만 한 것입니다.

제가 간절히 원하던대로 귤밭을 한곳에 모으게 된 것이지요.^^

http://blog.daum.net/yeainmam/13727468(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래서 올해는 대대적으로 귤밭을 정비 하고 있습니다.

<꿈>밭 이야기는 제가 오랫동안 귤밭을 하나로 통합해서

그 안에서 모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염원이 있었는데

10년을 기다리고 한우물을 팠더니 그 꿈이 이루어지게 되어서

<꿈>밭이라 명명하게 된거랍니다.

 

이제 앞으로는 <꿈>밭에서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믿음밭은 게스트하우스 있는 곳을 남기고

뒤쪽은 팔았지만 사신 분이 퇴직 후에 오실 예정이라서

당분간은 저희가 농사를 그대로 짓습니다.

<기쁨>밭은 올 봄에 팔았습니다.

이런 큰 그림을 그리고 준비 하느라 저의 올 봄은 여전히 많이 바쁩니다.

 

오래 꿈꾸던 꿈, 귤밭을 하나로 만들어서

집도 짓고 내가 그리는 그림도 그리고,

제대로 정비된 유기농 생태농장을 하고 싶다던 소망을

이제 <꿈> 밭에서 해 보려고 준비하는 중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10년 전에

귤밭을 시작할 때 외쳤던 것처럼

그 10년을 우직하게 한길을 달려오고나니

다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일은 세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는 것이고요.

남편이 명퇴하여 수입이 끊어진 상황에서도

제가 소신껏 흔들리지 않고 유기농 농부를 지속할 수 있었던

저에게도 칭찬을 보내고 싶어요.

이제는 상농부로 거듭난 저의 남편의 공로도 치하하지 않을 수 없구요.

그리고 그동안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해주고, 한결같이 함께 해주신

우리 반디농장 회원님들이 계셔서 힘든 순간 이겨내며 나아 왔지요.

 

 

올해는 전체적으로 큰 틀을 다 재정비 하고 있습니다.

 넘치지 않고 즐겁게 갈 수 있는 상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꽃을 키우고 가꾸는 것에서 에너지를 얻는 저인지라

귤밭의 빈 공간을 꽃으로 채우면서

노래 하면서, 내 노년을 행복하게 그려가 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짬짬히 꽃을 심고 가꾸면서 저의 열정을 만들어 왔듯이

앞으로도 제가 그리는 그림을 지켜봐 주시고 함께 손 잡고 가주시기를요.

 

흙과 뒹굴면서 비우는 법을 스스로 배웠고,

자연의 이치를 품게 되고, 쓸데없고 번잡한 욕망은 가지를 치고

 일하면서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이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넘치지만 않으면 일하는 그 자체가 축복이지요.

 

 

주변 대정비를 하느라고 포크레인과 담 쌓는 공사를 10일을 했습니다.

 

 

 

친구가 날 보러 왔어도 함께 일하였습니다.

 

 

 

 

 

 

 

 

 

 

 

 

 

 

 

 

주변 돌담을 재정비 하였습니다.

 

 

 

 

 

 

귤밭가에 있던 삼나무를  낮게 자르는 작업과

귤밭도 1/2 간벌하여 작업하기도 좋고 귤나무도 행복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5년전에 종려나무 묘목 사러 갔다가 1년생 묘목을 한그루 800원에 가져 가라는 말에

200그루나 캐와서 귤밭 가장자리에 심어 두었던 것이

이제 제법 자랐는데 <꿈>밭 가장자리로  옮겨서

종려나무와 어우러진 예쁜 귤밭을 만들려고 합니다.

종려나무 , 삽목한 하늘색 수국...그동안 제가 여기저기 심어 두었던

묘목들만 옮겨도 이미 큰 틀은 다 갖춰지게 되어

마치 오늘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것처럼 따로 조경비 안들이고 그림이 정비되고 있어요.

 

 

 

 

 

 

 

 

 

 

 

 

 

 

 

 

경비 절감하려고 대문도 제작하여 제가 색칠을 직접 하였습니다.

최상은 아니라도 늘 최선을 선택하여

제 방식으로 저만의 그림을 그리려고 합니다.

<희망>밭과 새로 장만한 <꿈>밭 사이에는 어수선하기 그지없는

잡목과 덩쿨들이 경계선에 있어서 꿈밭이 가려져서 보이지를 않았는데

잘 생긴 소나무만 남기고 다 정리하니 뽀대나는 소나무가 위상이 늠름합니다.

 

 

 

그리고 <희망>밭 옆에는 하천이 있었는데<여름 장마철에만 하루정도 물 흘러 감)

몇년전에 하천을 정비하면서 하천가로 새 길이 양쪽으로 나서

주변이 말끔히 정리 되었습니다.

그래서 <꿈>밭 앞으로 난 하천길쪽으로 돌담을 정비하고

새로 대문을 내었지요.

새로 대문 난 곳이 환한 이유가 하천을 정비하고

하천 양옆에 새길을 내어서 훤해졌거든요.

하루에 차 몇대 정도만 지나 다니는 조용한 이 길이

어찌나 예쁘고 맘에 드는지 퇴근길에 일부러 이 길로 몇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 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주변 지도가 바뀌었네요.

 

제주도 땅값이 올랐다고 사람들이 저한테 부럽다고 말하지만

저는 땅을 팔아서 새 땅을 장만하였기에(나에게 맞게 바꾼 셈) 

 땅값이 오르든 내리든 관계없이

내가 살고자 하는 방법으로 살기를 바라고

땅을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농사를 지어서 생명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경건한 대상임을 깨닫고 정성껏 보살폈기에

땅이 주는 축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지요.

 

 

 

 

 

 

 

 

내가 원하는 곳으로 뚜벅뚜벅~

쉼없이 우직하게~~

 

척박한 땅 한곳에

꽃씨 하나 떨어져서

그곳이 환하고 아름다운 꽃밭으로 변하게 되는...

그런 꽃씨처럼 살고 싶습니다.

 

세월이 깃든 잔잔한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비오는 아침에

오랫만에 안부 올려 놓아요.

 

 

 

 

 

 

 

 

 

 

 

 

 

 

 

 

 

 

 

 

 

 

 

 

 

 

 

 

 

 

 

 

 

 

 

 

 

 

 

 

 

 

그사이 키워놓은 꽃 친구들

일속에 파 묻힌 나를 위로해주는 꽃들이

믿음밭에서 홀로 피고 지고 있네요.

새우란, 자란,은방울 수선화, 아부틸론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봄이 찬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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