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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기(서귀포신문)

장마후 우기

by 농부김영란 2011. 8. 21.

 

 

 

한여름 들어서서 한낮에는 너무 더워서 아침 저녁으로 나누어서 소독을 한다.

일을 하루에 끝내자고 욕심을 부려 한낮에 내쳐 일하다가 더위를 먹어

한동안 고생한 후로는 그런 식의 과욕은 피하려고 한다.

더위를 먹은 증상중에 신체 리듬도 잃거니와 일의 의욕까지 상실하여

휴유증이 심각한 경험을 한 후로 무대뽀로 일하던 습관을 고치려 하고 있다.

장마철에는 일기예보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경청하게 되는데

요즘은 정확하게 맞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요즘 날씨는 종 잡을 수가 없고 멀지않은 위치인데도

한쪽은 햇볕이 나고 한쪽은 비가 내리니 기상청도 난감할 수밖에 없을것 같다.

어제도 지역 일기예보를 체크한 후에 밀린 소독에 들어 갔다.

밭이 여러군데로 나누어져 있기에 소독할 때는 남편과 둘이서 하루에 두밭씩

해야 해서 아침 저녁뿐만 아니라 한낮에도 내쳐할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장마철에는 다음날 비가 와도 소독해야만 할때도 있는데 이틀후에 비온다는 소식에

소독을 미룰수가 없어서 어둑해질 때까지 소독을 하고 집에 왔다.

입추가 지나니 저녁해가 확연히 짧아져서 저녁 8시인데도 깜깜하였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낭패감이 밀려 오면서 한숨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이번 여름은 거의 이런 날이었다.

6월초부터 시작된 장마가 소독하고 난 날에는 어김없이

밤에 예보도 없던 비가 내려서 소독효과를 없게 만들었다.

장마가 끝나는가 싶어서 안도한 것도 잠시, 장마후 우기라는 기상청 예보가 따랐다.

 

 

우리나라에도 우기가 있었던가?

열대 우림 기후에나 보던 우기와 건기.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적용이 된것 같다.

태풍도 장마도 아닌 비에 물폭탄으로 예측할수도 없던 피해를 겪는 것을 보며

광폭해진 날씨로하여 오는 재앙이 두렵기만하다.

농사는 더구나 하늘이 짓는다는 말을 할 정도로 날씨에 울고 웃고 하는데

이렇게 날씨가 따라주지 않는 것에 대비한 영농 기술을 준비해야만 할것 같다.

 

이제는 제법 알이 굵어져서 가지가 휘어지기 시작하고 탐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귤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미 겉모양이 많이 거칠다.

긴 장마에, 우기에 예상했던 바이지만 가슴이 옭죄어 온다.

장마철에는 무엇보다도 소독을 잘해야 하는 시기라서 시기 맞추어서

빠뜨리지 않고 하려고 애를 쓴 수고가 허사인 것 같다.

친환경 귤이라서 다소 겉모양이 거칠어도 그리 괘념치 않게 되었어도

심하게 거친 것은 비상품이 될수밖에 없어서 신경이 몹시 쓰인다.

겉모양이 그러해도 맛이 뛰어나면 상쇄될 것 같은데

이렇게 매일 흐리고 비 오고 하면 일조량의 부족으로 맛이 싱거워질 수밖에 없으니

그 또한 슬며시 걱정이 밀려 온다.갈수록 농사짓기가 어려워짐을

길지않은 농부생활에서도 느낀다.

 

이 파장은 농부에게만 오지 않는다.지금도 태풍에 장마에 잠기고 떠내려간

농산물값이 고공행진하여 물가가 치솟는데 직접 영향을 주고 있다.

서민들 삶이 점점 더 팍팍해지는 절대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들 삶도 장마처럼 지루하고 꿉꿉해지고나면 감정 조절도 어렵고

행복지수도 점점 내려갈 수 밖에 없다.

 

귤농부인 나는 하늘의 햇살도 모으고 마음의 햇살도 모아서 결실할 때까지

염원을 담아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날씨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하늘을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긴장마와 우기를 거쳐 오면서 내 마음도 몹시 눅눅하다.

청명한 가을 햇살이 간절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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