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청춘, 딸에게>
사랑하는 나의 딸 예슬아,
이십년 품안에 품고있던 널 대학 기숙사로 떠나 보내고
엄마는 한동안 너의 부재로 인한 공백을 달래지 못해서
매일 전화하고 문자 보내고 하였었지.
하루도 눈을 떼지 못하고, 물가에 노는 어린애 지켜보듯 하던 마음을
선뜻 내려 놓는 것이 쉽지가 않았어.
이런 엄마와는 달리 너는 둥지를 떠날 준비가 된 아기새처럼
너의 세계로 거침없이 날아가서 너의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뒤늦게 깨달았어.엄마에게는 영원한 아기이지만
너는 이미 엄마의 둥지가 비좁은, 혼자 비상할 꿈을 품은 청년이 되었다는 것을 그제사 깨달았어.
갈매기 조나단이 생각이 났다.
“이미 네게는 내가 필요치 않아.
네게 필요한 것은, 매일 조금씩 자기가 진정하고 무한한 플레처임을 발견해 가는 일이야.
그 플레처가 네 교사야”
보다 높이 날아 올라서 보다 멀리 볼수있는 눈을 키우기를 바란다.
이제 엄마는 인생의 멘토 역할은 가끔 해줄 수가 있겠지만
너는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꿈꾸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
너가 꿈꾸던 세상을 너 스스로 길을 찾고, 길을 만들고, 고뇌하고, 사색하여야 한다.
예술의 세계가 멋있어 보였지만 예술가의 삶은 웬지 험란할 것 같아서
너가 미술전공을 하고싶다 했을 때 선뜻 허락하지 못했었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이라 요원하기도 하였고,피상적인 관찰로는
그 삶이 지난하고, 자기와의 끝없는 싸움이라
겉멋이 아니라 깊은 내면의 멋이 농축된 깊이있는 작가의 세계를
지향할 수 있을지 막연하여서 말리고 싶었었다.
가보지 못한 길을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하여, 시도도 못해본 사람의
옹색한 자기변명이 아닐까하는 자각이 밀려왔다.
너가 원하는 길이라면, 그리고 너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면...하고 단서를 달고
허락한 너의 길이었다.그러면서도 미리 염려하여, 작품에만 매진하겠다는
너의 소망을 일축하고 교직이수를 단서로 꼭 달았었다.
그 모든게 엄마의 기우였다는 것을 너가 통쾌하게 보여 주기를 바란다.
장마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날 친구와 둘이서 올레길을 떠난 너가 불안하여
내내 좌불안석이던 엄마와는 달리, 완주를 하고 조금 지친듯해도
아무렇지도 않은듯한 널 보며 젊음의 한가운데, 너의 찬란한 청춘이 부러웠다.
이제 한 개체로서 당당히 홀로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고 안도했다.
성장하는 내내 자신감없는 이야기를 내뱉으면서도
너는 언제나 끈기있게 고비를 잘 넘겨 주었었다.
엄마의 일욕심으로 너를 떼어놓고 직장을 다니다가 너를 극도의 분리불안증에
몰아넣어 아기답지않게 무표정해지고 정서불안하게 만들어서
그 감정의 상처를 회복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었지.
내 일의 성취감과 아이의 장래를 저울질 하다가 엄마는 일을 포기했었다.
그 후 보이지 않는 정서불안을 평안하게 되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너는 어눌한 듯,어설픈 듯 해도 내면이 단단한 아이로 잘 성장해 주었다.
언제나 2% 부족한 듯 불안해 보여도 나는 너 안의 빛나는 재능과 감성을 믿고 있었다.
너무 예민한 아이라서 쉽게 상처받고 마음의 문을 닫았던 것도 엄마는 알고 있었다.
초보엄마가 뒤늦게 깨달아서 시행착오를 하였지만 너를 극복하는 과정중에
너는 또 하나의 축복을 만들었다고 엄마는 믿는다.
너의 안을 들여다 보는 연습은 예술가에게는 필수적인 자세라고 생각해.
앞으로 너가 보여줄 환희의 세계를 엄마가 기대해도 될까?
관객이 되어 지켜보는 엄마가 가슴 뛰도록 아름다운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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