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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기(서귀포신문)

지난해 겨울

by 농부김영란 2011. 6. 8.

 

<지난 겨울 한파에 기력이 소진한 귤나무가 아프다,

<일어나, 힘내!> 봄내 기운을 불어넣어 간신히 살아난 귤나무

못 일어난 나무도 여러그루 된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큰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충격으로 눈 앞이 캄캄해지고, 무릎팍에 생채기가 나서 피가 줄줄 흘렀다.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수가 없었다.아득했다.

 

지난 겨울은 그랬다.수십년만의 폭설과 한파가 제주도 전체를 휘몰아치면서

귤나무에서 갓 수확하여서 내보내겠다는 회원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귤나무에 매달려있던 귤들을 나무에서 다 얼려버리고 맛 본 그 낭패감은

아직도 가슴에 패인 자욱으로 남아있다.금전적인 손해보다도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

이런 기상재해를 대비하지 못한 내 불찰을 냉정히 헤아리기보다도

달리던 속도감과 비례한 충격이 나를 송두리째 삼켜 버렸었다.

예상해야만 했었던 재난이었었다.지구 곳곳이 몸살을 하고 있는 것을 경외감을 갖고 보아오던 마음에 큰 경종을 울렸었다.

이상 기후,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 재앙의 광폭한 질주를 무심히 지켜보아서는 안된다는 경고였다.

 

한파를 이겨내지 못했던 약한 나무 몇그루는  새 잎을 피워내지 못하고 생명을 거두기까지 하였다.

내 새끼 같았던 귤나무 몇그루를 그렇게 보내고 눈가가 짓무르고 가슴에 통증이 몰려왔다.

고객에게 최고의 귤을 보내 드리겠다고 귤나무에게는 혹독한 시련을 주었는게 아닌가하는 미안함이 밀려왔다.

귤나무로서는  새끼들인 귤을 매달고서 그 새끼들을 지켜내려고 사력을 다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체력이 소진한 기진한 나무 몇그루가 끝내 회복하지 못한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생전에 겪어보지 못한 한파를 이겨낸 나무들도 초췌한 빛이 역력했는데 봄내 영양제와 유기질 퇴비를 주고

살뜰이 거두었더니 다시 기력을 회복하여 만개한 꽃을 피워낸 것을 보니 눈물이 나려고 했다.

기특하다, 고맙다, 대견하다, 감사하다, 귤나무야~

 

이 봄은 온통 기원하는 마음이 되었다.

내가 겪은 한파는 작은 채찍이라는 듯 이웃나라 쓰나미를 지켜본 놀란 가슴은 여전히 얼얼하다.

앞으로 농부로 살아가려면 단단히 마음 먹으라고 일러준다.

농사 7년째 들어섰으니 이제 어느정도 고비를 넘겼는가싶던 안도감을 일시에 무력화 시켰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마음을 그대로 늘어지게 둘순 없었기에 털고 일어서면서

나는 다시 희망씨앗을 뿌리고 있다.올해는 좀 더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기농 농부의 외로운 길에 함께 들어선 사람들에게 내 발자욱이 또 다른 등대가 될지도 모르기에.

남들의 등대가 되겠다는 의지보다도 스스로에게 성취감과 자부심을 갖기 위해서도 담금질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농사 첫해 아무것도 몰라서 병작형태로 농사를 배우면서 겪었던 일,

그 삼촌은 귤값을 더 받겠다고 버티다가 3월말에야 80%는 다 썩혀 버리고 약값도 안되는 얼마간의 소득을 올리는 것을 보고

나는 직거래를 결심했고, 기존 관행농사방식과 유통으로서는 농사는 기피직업이 될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병작한 삼촌이 귤밭에 산더미처럼 버린 썩은 귤들을 접했을 때 나는 첫번째 마음이 무너졌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으로하여 나는 새 길을 모색하였고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내 길을 개척해왔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두번째 내가 상심했던 것은 태풍 나리때 귤나무가 쓰러지고 찢어지고,아수라장이 되었던 때였다.

그것도 추스리고 일어서니 귤나무도 나도 새살이 돋았다.

그리고 해마다 가장 내 머리를 뜨겁게 달구었던 판매는 해마다 조금씩 늘려왔기에 벅차면서도 감당해올 수가 있었다.

아마도 한꺼번에 욕심을 내고 달려 들었었다면 이내 지쳐서 나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한걸음씩 감당할만큼만...그렇게 걸어가니까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있어서 넘치는 욕망을 자제할 수가 있었다.

분수를 알게 된 나이가 된것도 내 길을 담담하게 걸어갈 수가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쉼없이 가르침을 받은 것도 내가 농부로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을 느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걸음씩 다지면서 걸어갈 수 있는 마음 가짐을 농부생활을 통해서 배우고 있다.

 

지난해 겨울은 내가  안도감이 밀려올려고 하려는차에 또 한번 치도곤을 얻어 맞은 셈이다.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재난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상황을 인식시켰다.

그리고 한시도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자각도 일깨웠다.

그동안 일인 다역(생산, 홍보, 판매)을 하며 헤쳐 나왔던 길이라 피로감에 농부에게도 안식년이 필요해~하며 외치던 차에

정신이 퍼뜩 들게 한 상황이었다. 죽는날까지 일할수 있다는 것도 행복인데 베짱이 타령을 한다고

자연이 엄하게 꾸짖는 것만 같았다.일하는 것과 휴식이 하나가 되는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한 자신을 돌아 보았다.

 

나는 지금 삼전사기 중이다.

넘어지는 것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신의 시험이라고 생각하며...

 

<6월 첫째주 귀농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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