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 카드 | ||||||
<귀농일기> 김영란 시민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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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이 광고문을 들었을 때 묘한 당혹감에 얼떨떨했었다. 보수 세대 마지막 주자인 내 관점에서 들으면 발칙하기도 하고 당돌하기도 하고 “요즘 젊은 것들은…”하고 운을 떼시던 그 옛날 우리를 훈계하시던 할머니 기분이 된것 같기도 하고… 어리둥절한 감정에 사로 잡혔었다.
한마디로 고객을 사로잡아야 하는 튀는 광고문구라서 깊은 의미를 둘것은 아니지만 한동안 이명처럼 뇌리에서 울려 퍼졌다. 나도 모르게 곱씹어지는 효과가 있는 것을 보니 대단한 광고문구임에 틀림없었다.
“검은 머리 파 뿌리가 되도록…”하며 결혼 서약서에 맹세를 하던 우리세대들이 내 감정이 이끌리는대로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광고 문구에 쉽게 수긍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귤 농부가 되고나서 내 귤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 문구가 현 세태이며, 특히나 소비자의 마음은 언제나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생산자이면서 판매자 역할을 하게 되니 소비자의 반응에 민감하게 되고, 그 마음을 사로잡기위해서 고심하게 되었다. 올해의 고객이 내년, 내후년, 영원히 내 곁에서 머물러 주기만 한다면 좋겠는데… 고객의 마음이 나비처럼 이 꽃 저 꽃 맘대로 날아다니니 어떻게 하면 그들 마음을 붙들어 맬 수 있을까하고 궁리를 하게 된다.
어디 가서 체계적인 마케팅 공부를 해볼까하는 생각도 들고 농업경영에 대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온갖 궁리를 하게 된다.
"평범한 것은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귤 농부는 귤로서 말해야한다." 사랑도 머물러 있지 않고, 고객도 일편단심 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평생고객으로 만들 수가 있을까?
내가 소비자의 관점에서 점검해 본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풍성하며, 맛도 있고 가격도 착한 음식점을 발견하면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집이지만 자발적으로 널리 입소문을 내준다. 나도 귤이 아닌 농산물은 사서 먹는 입장이라 믿음이 가는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정직한 농부를 만나면 남에게 사서 선물도 하고 소개도 저절로 하게 된다.
사람마음 사람살이 거의가 비슷비슷하니 내가 소비자였을 때를 거꾸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주인의 맘을 헤아리게 되고 기분이 상해서 발길이 돌려진다. 내 사랑도 절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몇 년 전 이 작은 도시 서귀포에 대형마트 두개가 들어서서 작은 소매점들이 몇 개나 도산하고 시장도 큰 타격을 받았었다. 상인들이 현수막을 걸고 투쟁을 해보았지만 흐름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고 늘 내 가게를 드나들던 이웃들이 야속하게도 으리번쩍한 대형마트에 줄을 섰었다. 속수무책인 사람들은 결국 가게 문을 닫게 되었고, 그 중에서 경쟁력을 갖춘 가게는 살아남아서 지금은 서로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뒤늦게야 오일장과 매일장이 다시 태어나는 아픔을 감수하고 새로운 각오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나도 이제는 오일장에서 사는 물건, 매일장, 대형마트, 소매점들을 골고루 이용하게 되었다.
우리 농민들에게도 FTA라는 대형 쓰나미를 예고하고 있다. 멀리서 무섭게 다가오는, 막을 수도 없는 대세의 흐름에 대응할 수 있는지 점검해 볼 시점이다. 준비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직감한다.
움직이는 사랑을 내 곁에 붙들어 두는 복안. 최상의 귤을 만드는 것도 평범한 진리가 될 때쯤을 대비하면 감성문화의 이 시대에 온 몸을 불태울 비장의 카드 하나쯤 갈무리 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희망스런 몇 가지 요소가 떠오르기에 신발 끈을 고쳐매며 마음을 동여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