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다

가을맞이 (2)

by 농부김영란 2010. 9. 27.

 

 

 

 

 

 

<더덕꽃>

 

17코스 올레 개장식 후기를 올리던 어제 아침만 해도 내 기분은 맑음이었다.

물집 잡힌 발바닥도 자고 일어나니 통증은 있어도 견딜만 했기에 두편이나 올린터다.

추석연휴 낀 긴 휴가동안 가족들 세끼 밥 해먹이는 고충 외에는

모처럼 망중한인터라 늘 혼비백산 헉헉거리던 숨고르기도 좀 하였다.

그런데 한 순간에 내 기분을 180도 뒤바뀌게 한 일이 일어났다.

천재지변도 아니고,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내 기분이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3자가 들으면 별것 아닌걸 가지고...하는 그런 것인데

내게는 첩첩이 쌓인 유사한 것들까지 한꺼번에 오버랩 되어서 그것이 분출하게 된것이다.

 

 

 

 

아침에 비가 온것이 발단이다.

3일전에 남편이 효돈밭에 가서 내가 그동안 애지중지 말리고 있던 고추와 토란대를

밖에다가 그냥 널어두고 와서 비와 이슬을 맞으면서 다 물러버려서 그동안 공이 말짱 도루묵이 된것이다.

나는 며칠 못 갈것을 대비하여 방바닥에 널어두고 온터라 아침에 내리는 비에도

별 걱정도 없이 늦은 아점을 먹고 카페와 블로그에 올레후기까지 느긋하게 올려두었다.

밭을 돌아 보려고 나가려고 남편에게 함께 가겠냐고 하니까 할일도 없는데 뭐하러 가느냐며

TV채널을 돌리고 있길래 비요일이 비 핑계로 쉬는 날이라 나 혼자 다녀오마고 하였다.

그제서야 남편 왈...토란대와 고추가 비에 젖어서 못 쓰게 되었을거라고 한다.

 

뭣이라고라? 밖에다가 그냥 두었다고?

그런데 왜 이제서야 얘기해? 비가 올것 같으면 밤에라도 가서 걷어야지.

순식간에 혈압이 솟구쳤다.거기다가 눈치코치없는 남편은 태연하게

버려야지 어쩌겠냐고...내가 일부러 그랬냐고...

(말이나 안하면 덜 밉상스러울텐데...)

그 대목에서 기름에다가 불을 확 지른 셈이었다.

일부러 안 그랬으니 비난하지 말라는 투인데...

그런 태도가 더욱 나를 화나게 하였다.

 

그냥 바깥에다가 3일동안 널어두고 무심하게 둔 것이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고?

똥 뀐놈이 성낸다고 외려 역정 섞인 말투까지?

 

 

<드디어 고대하던 유홍초가 피기 시작한다.>

 

 

순간 자제심을 잃을뻔하여 일단 화장실로 가서 양치질을 잇몸에 피가 나도록 빡빡 해대었다.

가라앉지 않는다. 점점 더 화가 파도처럼 밀려 오기 시작한다.

이성은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일을 확대하여 애써 유지하던 가화만사성을 무산시킬 필요가 있냐고 속삭이는데

감정은 그동안 그런류의 쌓인 것들이 잠복해 있었는지 일시에 궐기를 할 태세이다.

 내가 4년동안 키워서 이젠 내 키만큼 큰 녹차나무에 꽃망울이 수없이 달린 것을 보고

가슴 뛰며 올 가을에 원없이 녹차꽃으로 꽃차를 만들어야지 했던 꿈을

너무 어이없이 짓밟아버린 사건까지...

 나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귤밭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녹차 나무를

뿌리만 남기고 다 가지를 쳐버린 것을 보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사건까지

분통이 한꺼번에 몰려 왔다.자기는 녹차 나무인줄 몰랐다는게 변명이었다.

몰라서 한 행동은 다 면죄받는다고 생각 하는지?

 

 

 

 

미안해하고 고마와하고,상대방을 배려하고

그런 부분이  결핍된 것 같아서 가끔 아득해질 때가 있다.

 

결정적인 큰 일은 오히려 대범하게 마음 접는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누적 되어서 먼지 쌓이듯이 켜켜이 쌓였다가 폭발 하려고 한다.

주말 부부인 친구가 우리 나이에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주말 부부라던게 공감이 간다.

주말부부나 월말 부부는 상대를 사사건건히 마주 치지 않으니

가족 위해 일하는 상대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늘 들터이다.

출퇴근하는 직장인도 아니고 퇴직하여 24시간을 함께하는 처지에

고분고분 말을 잘 듣기나하나,

뭐든 물어 보지도 않고 자기 맘대로 저지레를 저질러 놓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할줄 모르다니...(사실 속으로는 미안할지도 모르지만)

50년을 제 고집대로 살아온터라 바꾸려고도 안하고

젖은 낙엽처럼 휘감긴다더니 딱 그 모양새다.

(열 받으면  과잉으로 흥분되어 평소에는 눈에 거슬리긴 했어도 참을만 했던 것들까지 참을수없다고 생각된다.)

 

 

 

 

 

 웬만하면 내 팔자려니, 내복이거니하면서

나를 달래고 다독이면서 마인드 콘트롤을 하고 있지만 시시때때 이런 사소한 일들로

부딫히게 되니...이것도 이혼사유가 되나 하면서 따져보게 된다.

 바람을 피거나, 도박을 하여 가산을 탕진 하거나 그런 이유는 결정적인 이혼 사유가 될수 있지만

이런 시시콜콜한 독선적인 행동까지 이혼사유가 된다면 벌써 쪽박을 몇번이나 깨었을터라

또 내가 참아야지~하며 마음 돌려 먹는데도 쉽사리 분이 풀리지를 않는다.

 

 

 

 

사실 이런류의 속 썩는 일이 비일비재할 우리 주부들인지라

탁 깨놓고 얘기하면 아마도 모두 삼박사일은 쉬지않고 털어놓아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일이다.

내 남자가 이러면 화가나서 씩씩거리며 분을 삭히지 못해

잔소리가 절로 나가고 이성이 조절이 잘 안되는데

남의 남자가 그래서 그 부인이 팔팔 뛰는 것을 보면 그 남자가 귀엽게 보인다는 것이다.

남자 생겨먹은 구조가 그러하니 결정적인 성격결함이 아닌바에야

"오즉하면 철들자 망령난다고 했겠어요~"하며 이해하라고 다독이게 된다.

그런데 그게 내 상황이 되면 감정조절이 안되는 이유는

그게 한두번의 일이 아니고 늘상 반복되는 일이라서 반사적으로 신경이 곤두서며

심지어 비관적인 절망상황까지 떠오른다는거다.

 그런데도 무심한 단세포 남자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하며

대수롭잖게 여기고 평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더 화가난다는 것을 모르는데 문제가 있는거다.

여자에겐 그런 작은 일들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는데서 비극이 발생하는거다.

남자와 여자의 이 간극은 그래서 늘 평행선을 달린다.

 

 

 

 

어제의 분이 계속하여 명치끝에서 맴돌며 콕콕 찌르는데

미운 오리 떡 하나 줘야 할 상황이 생긴 것이다.

오늘이 내 남편 생일인거다.잠시 갈등이 밀려 온다.

하는 짓은 미운데 그렇다고 미역국도 안 끓여주면

자기 잘못은 못 깨닫고 옹졸한 맘에 일년내내 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위인이다.

내 생일날엔  생일 당사자인 나한테서 오히려 미역국을 얻어먹는 눈치코치없는 위인인데...

(명색이 요리사라는 양반한테 내 생일상 한번 못 얻어 먹었다니까...ㅉㅉㅉ...사주는 것은 누가 못하겠나)

그래도 내 본분을 다해야 나도 떳떳하지 싶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미역국도 끓이고

사태찜도 해서 육.해.공군 한상 차려 놓으니 자기 생일을 기억하냐고 묻는다.

그럼 내가 언제 생일 한번 빠뜨린 적 있던가?

 

"쪼꼼만 쎈쓰가 있으면...쪼꼼만 눈치코치가 있으면...쪼꼼만 상대를 배려하는 맘이 있으면..."

사랑 받는 법을 모르는 진화가 덜 된 종족이라고 혀를 끌끌 찬다.

아니 내 남편만 그런것인가? 다른 남자들은 다들 잘하고 있는지?

 

 

 

 

 

옆에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목숨 걸며

사생결단의 감정까지 밀려오는 것이 때때로 삶의 함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또 아이러니 하게도 조물주는 여자란 동물을 얼마나 맹하게 만드셨는지

첫째 아이 낳고는 다시는 아이 안 낳겠다하고서 그것도 배를 세번이나 가르고 아이를 낳는 무모함까지 주셨으니

이렇게  남자란 동물과 여자란 인간이 만나서 엇박자를 치면서도 살게 되는가부다.

어제밤은 분통이 터지는 것을 못 삭혀서 밤 늦게까지 웹서핑을 하다가 늦게야 잠 들었는데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벌써 90%는 잊어 버리고 흐물흐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이 애증을 어이할까나.

 

 

 

 

 

남들 보기엔 대범해 보이는 나도 이런 사소한 일에 시시때때

쪽박을 깨고싶은 충동이 일곤한다.

 

이럴때마다 내게 주문하는 한 가지가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결정적인 상처가 될말은 절대 하면 안된다는 것.

 

전생에 내가 너에게 빚을 많이 진 관계인가부다하며 자신을 달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계속될 이 고행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을 때...

매순간 마음 바꾸는 연습만이 가화만사성의 비결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어도

시시때때 걸리는 악마의 유혹에 흔들리곤 한다.

 

 

 

아줌마 수다로 시작한 블로그가  이젠 사적인 공간이라기보다

귤농부가 되어 홍보창구도 되고 반은 공인이 된 느낌이라

간간히 글쓰기가 제약을 받을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잘 정돈된 유려한 글보다도 소탈하기 그지없는 아줌마 수다가

격없고 사람냄새가 나서 좋아하고 이끌려서 일부러 글쓰는 형태를 갖추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다가보니 늘 정제없는 일상을 고대로 보여 주었는데 그게 오히려 나만의 강점이 된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외관상 너무 멋있어서 한순간에 이끌리었다가 실체를 알고나면 서서히 질리는 사람과 글보다는

웬지 부족하지만 사람냄새 퐁퐁나는 그런 사람과 글이 편하고 좋다.

그런데 점점 더 그런 글을 쓰려고 하면 주저되는 부분이 있다.

누군가를 의식하는 부분이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글맛도, 나다운 맛도 점점 더 희색되어 가는게 아닌가 싶어서

오늘은 내 적나라한 남편에대한 감정을 드러내본다.

사실 알고보면 어느 집에나 늘상 일어나는 비일비재한 일들일텐데...

이런저런 이유로 말 못하고 속병 앓을 사람들이 한두명이겠는가?

명예도 격식도 차리지않고 누군가 눈치 보지 않아도 될 위치에 있는 내가 오늘은 너무나 자유롭고 다행이다.

내가 높은 분 사모님이라면 어찌 공개적으로 이렇게 남편 흉을 해보겠는가?

우하하하...남편 흉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반분이 풀렸으니

여자들에겐 수다이상의 명약이 없다고 생각한다.

 

 

 

 

남편 흉, 자식흉(사실은 그 안에 사랑도 포함되어 있겠지만)있는 그대로 다 털어놓고

우리끼리 낄낄 깔깔 거리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서

그대가 간절히 보고싶다.

우리끼리라도 그동안 헌신적으로 살아온 것을 치하하며 노고를 치하해보고 싶다.

남편에게, 자식에게 한없이 주기만하고

거미처럼 빈껍질만 남을 우리 자신들을 우리끼리라도 보듬어 주고싶다.

 

 

 

 

이제 그 수다의 계절이 왔다고,,,,

그댈위해 마련해 둔 기다림의 방에서 우리 맘껏 수다 떨어 보자고  손짓을 해본다.

버리지도 못하고 끊을 수도 없는 천륜을 기꺼이 감내하고 가려면

우리도 어딘가에서 재충전을 받아야만 한다고...

 

 

 

 

 

학력도 미모도 평준화 된다는 우리 나이.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소탈하게, 목젖까지 다 드러내고 환하게 웃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래도 사람이라는 것을...

느껴보는 이 가을이 되고싶다.

 

내 정겨운 사람들을 이제부터 만나고 싶다.

 

 

 

 

이제부터 그대를 맞을 준비를 하겠습니다.

이 가을과 겨울에...날아 오실 수 있는 분은 미리미리 연락 주세요.

귤은 11월 중순부터 딸수있을것 같아요.

제게 오실 때는 필히 하루는 체험 농부를 할 각오를 하고 오시기를.^^

 

 

피에쑤: 남편흉과 자식흉은 보는 순간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이루어진다는 것.

제가 남편흉 봤다고 절대로 위기의 가정은 아니랍니당.^^...오해할까봐서...ㅎㅎ...

 

2010.9.27

 

 

 

 

 

'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절초꽃  (0) 2010.10.10
남외당(남자는 외롭다) 당수 이성호씨의 변  (0) 2010.09.30
가을 장마  (0) 2010.09.09
가을  (0) 2010.09.05
태풍 곤파스  (0) 2010.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