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수확할때부터 시도 때도없이 비가와서 애간장을 녹이던 날씨가
올 봄 내내 햇볕나는 날도 별로 없고 흐릿한 것이 마치 눈에 뿌연 안경을 쓰고있는 것 같았다.
봄이 가면 여름은 화창하려나 기원했건만 여름도 질금질금...비가 화끈하게 퍼 붓는 것도 아니고
아주 염장 지르기 딱 맞게, 일 하기가 너무 어렵게 하루 몇차례씩 오락가락이다.
지난번 곤파스 태풍은 제주도는 별 피해없이 지나 갔지만 육지에 과수농가나 축산농가등이
한숨과 눈물을 짓는 것이 뉴스에 나와서 보는 내 가슴도 아프게 하는데
이미 제주도 일부에서도 올 봄에 꽃 필무렵 냉해가 와서(3월에) 온 밭 전체가 극심한 해걸이 현상을 겪게되어
올 농사를 일찌감치 접은 농가가 많은데 나도 세밭중에 효돈밭이 전멸하다시피하여
혼비백산하여 밭 하나를 더 장만하여 새로 구입한 밭은 그런대로 귤이 달린 상태라서
있는 거라도 최선을 다해 여름이 한창일때까지 하루도 제대로 못 쉬고 달려 왔었다.
한달전까지만해도 그런대로 잘 가주고 있었기에
앞으로 햇볕만 잘 나주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었는데
하늘은 하루도 얼굴을 펴고 햇볕을 보여주지않고 매일 일 못할만큼 비를 뿌려서 약을 올렸다.
고온다습한 기후라 병해충이 많이 발생하는 한여름이라서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도
수시로 보르도액이나 유황합제로 소독을 해주었는데 소독하고나면 밤에 비 내려 버리고, 소독하다가도 비 내려서
다 씻겨 버리고 그러니 소독효과가 제대로 나지 않아서 요즘 살펴보니 그나마 달린 밀감도
겉모습이 울퉁불퉁...그리고 매일 비가 쏟아지니 뿌리로 물을 많이 빨아올린 귤들이 왕방울만해졌다.
눈을 가까이 대고 들여다보니 보름전만해도 비교적 깨끗하던 표면이 두개의 태풍이 지나가면서 매일 흐리고
비가 내리더니 까만 죽은깨 흑점병이 심하게 보였다.
몇년째 친환경 농사를 하여 이젠 웬만한 병해충에는 대범한 편인데도
농사짓기 힘들다며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이제부터라도 햇볕이 쨍쨍나주면 좋겠는데 올해내내 신경질이 극에 달한 날씨가
마음을 곱게 먹어줄지가 의문스럽다.
농사가 하늘이 90%를 지어준다는 말은 내가 농부가 되고나서
정말 절감하게 되었다. 매일 기상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데
그마저 잘맞지 않아서 비가 안온다하여 소독하고나면 소독중에도 비가 내리고
또 소독한 그날밤에 비를 뿌리고...그리고 계속하여 흐리고...
그러니 방제효과도 제대로 나지를 않는다.
관행농에서는 이럴때 더욱더 약발센 농약을 써서 그나마 방제를 하지만
친환경농사는 대부분 더 나빠지지않게 소독하는 수준이라서 한편은 속수무책이라
건강한 귤나무가 스스로 잘 이겨내주기만 바라게되니 마음이 절로 옭죄인다.
속된말로 미치고 환장하고 팔딱 뛸 노릇이다.
여름이 오기까지 제대로 휴식을 못 취해서 몸과 맘이 뻐근하던 것이
요즘은 제대로 빡세게 일을 해보려고해도 일 하다가 비 맞고 철수하기 일쑤이다.
사는게 만만치가 않다지만...농삿일이 이렇게 내 의지로만 되지 않으니
마음 부대끼지 않으려면 마음 비우고 기도 하는 수밖에 없다.
빛 고운 천연염색을 보면 나도 해보고 싶다가도
매일 매일 정신이 반쯤 들어왔다 나갔다하는 판국에 또 일을 벌려서 부대끼지는 말자며
이젠 여건이 되면 뭐든 전문가가 한 것을 구입하는게 내 신상에 도움이 되리라 작정했는데
설익은 풋감으로 무명이나 면, 광목등에 들여서 노동복으로 즐겨입는 감물(갈중이)에
또 필이 꽂혀 버린 것이다.비 핑계로 탱자탱자 모처럼 놀게 생겼으니
또 맘과 몸이 내달리고 말았다.남이 하는 것을 보지도 않았고, 말로만 들었던 감물 들이기.
풋감을 갈아서 낸 즙으로 빨래 치대듯이 매매 주물러서 햇볕에 말렸다가 적셨다가 또 말리기를 수차례...
거듭할수록 빛이 짙어진다는 그 말만 듣고 무작정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오일장에서 광목 한마에 이천원이니 열마...아니 해보지도 않고 또 욕심이 발동.
스무마를 끊어서 치대고 치대었다.처음에 갈물들인 천을 보았을 때는
진한 황토색이 아름답다기보다는 웬지 칙칙해보이기도하고 노동복 느낌이 진해서
그리 끌리지 않았는데 내가 점점더 농부연스러워지고 흙과 조화를 제대로 이루고 있는 현상인지
그 노동복 갈중이가 맘에 들고...또 잠자리 날개같은 화사한 빛깔과 천보다도
척박한 땅에서 생명을 길러내고 그 열매를 취하는 소박한 농부들의 갈옷이 멋스러워보이기까지 하는데
무늬만 갈옷이 아니고 진짜 제대로 염색한 것은 생각보다 고가였기에
그러면 내가 만들어 입어야지...하는 생각에 도달.
왕초보 첫 감물 들이기라 얼룩덜룩 제대로 감물이 들지않고 있지만 그런들 어떠리.
내 작업복 몸빼바지 만들건데...
누르스름한 광목에서 이렇게 점점 갈색으로 진해지는 이유는 감에 있는 탄닌이
산화작용을 하면서 점점더 색이 짙어지고 풀 먹인것처럼 빳빳해져서
땀을 많이 흘리며 일하는 노동복으로는 시원하기 그지없다하니 노동복으로는 안성맞춤 천인 것이다.
그런데 햇볕에 말려야 색이 난다고 하는데 바로 위에 것은 갑자기 비가 와서
일부는 젖은 상태, 일부는 안 젖은 상태를 방안에 널어 놨었는데 마르고 나니 이렇게
두가지 색으로 무늬가 되어 버린 것을 보니 꼭 햇볕이 없어도
젖었다가 마르면서 색을 내는게 아닌가하는 관찰이 되었다.
처음에 한참이나 색이 나지를 않아서 실패했나 했더니 점점더 색이 나고 있는 것을 보니...
또 해마다 감물 들일 때가 되면 몸살이 나게 생겼다.
한번 필 꽂히면 진이 빠질때까지 덤비는 내 지병을 잘 다스려야겠다.
애간장을 녹이는 비때문에 이런 망중한도 즐길 수가 있으니
항상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좋고 나쁨이 공존하지만
그래도 내 본업이 본의 아니게 주객이 전도될까봐 걱정이 되는
길고 지루한 가을장마이다.
2010.9.9.英蘭
*갈옷 (갈중이)
감즙으로 염색한 옷을 말한다. 제주도 민속의상으로 농어민들이 작업복이나 일상복으로 입는다.
갈옷은 종류에 따라 갈등지게, 갈적삼, 갈잠뱅이, 갈중이 등으로 불린다.
염색의 원리는 풋감의 타닌 성분이 섬유와 결합하여 응고되면서 섬유를 빳빳하게 만든다.
그것을 햇빛에 노출시키면 산화·중합(重合)되면서 짙은 갈색으로 변한다.
염색 방법에는 옷을 제작한 후에 염색하는 방법과 원단에 직접 염색하는 방법이 있다.
물들이는 시기는 풋감의 즙이 가장 많은 때인 음력 6~7월이 좋다.
감물의 농도는 감과 물을 50:1로 맞추는데, 모든 직물에 같은 농도로 사용한다.
감을 으깨어 염색하려는 옷이나 직물에 고루 펴서 바른 다음 옷감을 돌돌 말아준다.
감즙이 우러나도록 말아놓은 옷감을 10분간 발로 밟아준다. 찌꺼기를 털어낸 다음 평평한 곳에 잘 펴서 널어 말린다.
하루에 2번 정도 완전히 마른 다음 물에 적셔 다시 널어주는데, 이 과정을 바랜다고 한다.
천이 구겨지지 않고 색이 고루 들게 하려면 축축할 때 옷감을 팽팽하게 잡아당긴 후 발로 밟아 펴 준다.
10회 정도 반복 하면서 1주일 정도 지나면 갈옷 특유의 색이 나타난다.
갈옷의 장점은 옷감이 빳빳하므로 세탁한 후 풀을 먹이거나 다림질을 하는 등 잔손질이 필요없다.
통기성이 좋고 열전도율이 낮아 여름에 시원하다. 또 습기에 강해 땀을 흘려도 옷감이 몸에 달라붙지 않는다.
감즙이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땀에 옷감이 상하지 않는다. 염색 후에 내구력이 2배 정도 강해진다.
단점은 염색방법이 까다로우며 디자인과 색상이 다양하지 못하고, 입을수록 색이 빠지면서 변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