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의 귀농일기] 한여름 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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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 바람 한점 없는 공기에 숨이 막혀서 몇번이나 깨어서 잠을 설친탓에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뻑뻑하고 입이 깔깔하며 몸 무겁기가 천근만근이다.
낮에 높은 온도탓에 몇시간 일을 하고나면 온몸이 땀으로 샤워를 한 탓도 있고 밤에도 잠을 설치는 날이 지속되니 컨디션 조절하기가 힘든 날들이다.
머리가 작동을 거부하여 일주일에 한번 쓰는 귀농일기 원고 마감일이 되었는데도 도무지 실타래가 풀리지를 않는다. 농사를 지으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농부의 눈으로 가슴으로 풀어내는 일기인데도 소재는 무궁무진해도 틀을 만들어서 활자화시키는 일이 자동판매기의 버튼 누르듯이 나와 주는 것이 아니라서 머리속이 안개속을 헤매는 기분을 경험하곤 한다.
내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아서 오감으로 느낀 살아있는 이야기를 풀어내서 진솔한 농부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글로 표현해 낸다는 것이 가슴을 옭죄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행여나 천편일률적인 생명없는 소재가 될까봐 고심하기도하고 틀속에 갇힌 진부한 언어의 나열이 될까봐 부대끼는 경험도 하곤 한다. 작가도 아니고 유명인사도 아니고,아줌마 수다의 연장선상에서 형식없이 내 맘대로 마구 떠들어 보겠다고 미리 언약을 했지만 막상 활자화 시키려니 정장을 차려 입어야할지 노동복차림 그대로 나설지 캐주얼 차림으로 차려 입을지를 고심하는 마음이 되곤한다.
혼자서 신명나게 놀다가 멍석을 펴주니 관객을 의식하는 기분이 된 것이다. 스스로 신명나야 보는 관객도 흥이 나기에 무겁게 가라앉은 컨디션을 마중물을 보내서 펌프질을 해 본다.
사는게 늘 이렇다. 스스로를 곧추 세우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길. 현실과 낭만사이에서 갈등 하기도 하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가슴앓이도 잊고 살다가도 생채기가 도지곤 한다. 어느 누군들 상처없이 살아내겠으며 희망과 절망을 넘나들며 균형을 잃지 않으려 하지만 방심하다간 나락으로 빠질수도 있는게 인생인 것을.
농부의 삶도 유유자적하니 낭만스럽게 보일지라도 현실의 무게가 만만찮은 직업이라 늘 스스로를 잘 관리해야만 한다. 그래도 영악한 사람들과의 머리싸움이 아니라 우직하고 성실한 자연과의 생활이라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성실하게 임하면 소박한 행복을 시시때때 나누어 주곤 하니까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가도 싱싱한 생명력을 나누어 받고 충전하게 된다.
자연의 일체가 되어서 땀으로 목욕하듯 노동을 하고나면 내 손을 거치고나서 잘 정리되는 모습에 성취감도 생기고 뿌듯한 만족감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쁨이다. 도시생활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 되지만 자연에서 농부로 살아보니 자연은 스스로 잘 살아내는 법을 가르켜 준다. 비우고 기다리고 기원하고... 자연과 일체가 되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행복해지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 같다.
휴가철... 도시에서 사람들이 밀려온다. 내 달력에도 손님맞이 빨간 표시가 빼곡하다. 나에게는 휴가가 아니라 손님맞이 성수기가 온 것인데 그들은 나를 풍경 아름다운 곳에 사는 낭만농부로 보며 부러워하고 도시로 돌아가기도 하는데 나는 그들이 일개미 농부의 일상을 봐주기를 바라고 진한 노동을 통해서 얻어지는 진정한 자유인의 여유를 감지해 주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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