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의 귀농일기] 묘목을 심으며 | ||||||
바쁜 봄날 농부의 일상 행복바이러스 전파…마음 비우는 법 깨닫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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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추억 속에 꽃이 가득한 우리집 마당이 떠오른다. 큰 저택은 아니어도 꽃이 가득한 집이라서 계절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고지는 마당에는 벌들과 나비들도 쉼없이 넘나들었다.
엄마가 늘 꽃을 심고 가꾼 덕분에 나도 모르게 공기처럼 꽃이 내 일상의 한 부분에 자리잡게 되었다. 아버지의 잦은 사업실패로 생할이 팍팍한 적도 많았으나 엄마의 꽃가꾸기 덕분인지 우리들은 정서적으로는 메마르지 않고 성장하게 된것 같다.
엄마와 고향을 떠나 단칸셋방 서울 살이에서도 나는 최소한 몇개의 화분이라도 키우곤 했었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꽃들보다는 애잔하고 소박한 꽃들을 좋아하여 들꽃이나 작은 꽃들에 관심을 두고 살았다.
회색빛 콘트리트 도시에서도 내가 숨을 쉬고 에너지를 충전 받을수 있었던 것은 그 화분들 덕택이었는데 늘 미진한 채울수없는 갈증에 시달리는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자연속에서 있어야 행복하고 평안하다는 것을 농부가 되고나서야 비로소 그 갈증의 원인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서울살이는 늘 쫒기듯 부산한 생활이었지만 돌아보니 딱히 이룬 것도 없는 삶이었던 것 같다. 성격탓에 하루도 방심하지 않고 무언가를 추구하고 내달렸던것 같은데도 말이다.
마흔을 전후해서 내 삶에대한 자성이 밀려 오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를 고민하였다. 그래서 재건축해서 편리하기 그지없는 신축 빌라를 미련없이 버리고 30년 가까이 된 마당있는 구옥으로 이사를 하였다. 주변에 개발 바람이 불어서 너나없이 신축건물을 지어서 마당있는 집 찾기가 어려운 주변 여건이 되어서, 온 동네 쥐들이 오래된 우리집으로 다 피신을 하였는지 하룻밤에도 몇마리의 쥐가 끈끈이 쥐잡이 덫에 걸려있던 집이었다. 포도나무를 심어서 장독대위로 올려서 포도를 주렁주렁 열리게 하였고 감나무 , 회화나무 , 주목나무 , 장미,공작단풍,라일락, 능소화를 심어서 대문에 아치를 만들고 일년초 꽃들도 즐비하게 심었다. 그리고도 모자라서 배추, 고추, 상추, 쑥갓, 열무, 갓, 호박등등.. 도무지 여백의 미라곤 찾아볼수없이, 비명을 지를만큼 마당 가득히 채웠는데 그동안 화분에다가 못다한 한풀이를 정제없이 쏟아 내었던 것 같았다.
덕분에 이웃들은 도심속의 시골집같은 우리집을 기웃거리며 예전과는 달라진 풍경에 동경을 하며 몰려와서 마당에 돗자리 깔고 막걸리에 부침개를 먹으며 전원생활 흉내를 내었는데 그 생활도 오래가지를 못했다. 남편이 갑자기 제주도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온 가족이 짐을 꾸려서 제주도로 내려 오면서 나는 결국 내가 가꾼 마당에서 심고 가꾸는 즐거움만 맛보고 누리는 즐거움은 다음 세입자에게 물려주고 이곳 제주도로 왔다. 그 손바닥만한 마당과는 비교도 할수없는 자연 그대로의 정원이 내 눈앞에 전개되어 서울살이를 그다지 아쉬워하지않게 되었다.
공을 들였던 마당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심고 가꾸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되었다 하고서. 누군가가 내가 가꾼 마당에서 행복하였으면 되었다 하고서. 마음을 비우는 것은 식물을 가꾸면서 내게 찾아온 행복 조건이다.
그래서 올 봄 나는 또 갖가지 묘목을 심었다. 누군가가 돌밭을 일구어서 귤나무를 심고 애지중지 가꾸어서 내게 물려 주었듯이 내가 심은 나무들과 꽃들이 또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에너지를 충전시켜 준다면 비록 내가 다 누리지를 못하여도 된다 하고서.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말을 떠올리지를 않아도 나는 식물들과의 오랜 교감에서 그들이 주는 선한 즐거움을 많이 누렸기에 그것이 또다른 누군가에게 행복바이러스가 되어 전파되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먼 훗날 내가 심고 가꾼 나무가 누군가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기를 바라며 바쁜 봄날 농부의 일상을 쪼개어서 나는 올봄 갖가지 묘목을 심느라 봄이 어찌 간지도 모르지만 웬지 뿌듯하다. 아기 나무가 자라서 튼실한 청년나무가 되어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대견히 바라봐 줄 상상을 하면서 충만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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