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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명퇴후 3년째

by 농부김영란 2010. 3. 4.

 

 

오래 달리기를 한 후 가쁜 숨을 고르기하느라 요즘 내 블로그가 불꺼진 창이 되었다.

 3개월을 수확과 판매로 녹초가 된 상태를 이완시키느라 긴장이 풀리면서  일시에 몰려오는 피로감을 녹여내고

다시 올 농사준비를 들어 가려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중에도

온전히 쉴 수는 없는 밀린 일들이 산적해 있어서 천천히 걷는 걸음이지만 여전히 하루 해가 짧은 나날들이었다.

 

남들과 다른 귤을 맛보이게 해 드리겠다고 시도한 (일명 유관순 귤^^)

겨우내내 나무에서 갓 수확한 귤을 내 보내느라 나무도 심하게 지쳐있고

나도 진이 다 빠진 상태에서 쉬이 헤어나오지를 못했다.

 

 

 

 

 

2월 17일 마지막 귤을 수확하고나니 나무들의 기색이 너무나 지쳐 있다는게 확연했다.

그동안 귤이 달려 있을 때는 나무가 마지막까지 새끼들을 보호하느라고 그랬는지 그렇게까지 지친 기색을 못 느꼈는데

귤을 다 수확하고나니 나무의 초췌한 모습이 눈에 확 들어 오면서 내가 너무 과욕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귤나무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최고의 귤을 만들자면서...그 혹한의 눈보라와 영하의 날씨에 귤을 나무에 달아놓고

너의 건강한 생명력을 믿는다며..."정말 눈을 맞고도 괜찮아요?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에게

"보세요. 눈과 영하의 날씨에서도 귤이 이겨내고 회복하잖아요."하며

굳세어라 금순아~하며 <금순이 귤>이라고 명명하다가 3일간의 폭설을 이겨낸 귤을 보니

금순이를 넘어서서 유관순 언니가 떠오르는지라

내 멋대로 <관순이 귤>...일명 유관순 귤이라고까지 명명한 귤!

지하에 계신 유관순언니가 "아니 어떤 에미나이가 거룩한 내 이름을 귤에게까지 도용하는겨?"하고

노하여 벌떡 일어나시다가보니...오호라...이런 기특한 귤이...

모진 고문을 이겨낸 나랑 견주어도 손색이 없구먼 하고 칭찬한 (요건 내생각^^) 그 귤을

2009년에는 반디농장 회원님들께 맛보여 드렸다.ㅎㅎ...

 

 

  

 

 

귤이라고 다 같은 귤이 아니다!

유관순 귤이 그렇게 말하였다.

 

 

 

 

유관순 귤이 탄생하는 동안

세자매네 반디농장 주인공 세자매들은

부모없는 아이들마냥...나홀로 집에~방치된 채

홀로서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댓가를 치르지 않는 것은 없다. 하나를 얻고자 하나를 버려야하는게 세상 이치.

에미 마음은 귤나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맘 금할 수가 없었지만

명퇴 후 3년째...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서 새출발하여

이제 뿌리 하나 만들려는 시점...

너희들도 다 함께 견디어서 이겨내야 하느니라.

 

 

 

 

 

 

명쾌한 마무리도 못한 채 밀려오는 피로를 감당하지못해

내 몸을 그냥 흐르는 시간에 맡기고 해면처럼 늘어져서

몇날 며칠을 보내고나니 실오라기만한 기운이 다시 생기면서

그동안 밀린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4톤의 콩퇴비를 만들기위해 또 다시 분주해졌다.그리고 800kg의 귤효소를 담그는 중이다.

사람도 먹고 귤도 먹을 효소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 모든게 2월안에 끝내야 할 일들이었지만 강행을 할 기운이 나지 않아서

아주 느리게 달팽이 걸음으로 앞으로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 정월 대보름이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얼핏 보았다.

마트에 들렸다가보니 이미 보름이 지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사람살이를 잊고 허겁지겁 살고 있는 내가 자각 되었다.

부랴부랴...부럼 땅콩을 사고 찹쌀과 현미 찹쌀을 샀다.

이미 전에 확보해 둔...괴산 감물장터 유기농 잡곡과

강원도 오지에서 생산한 금자네 사랑방표 산나물이 있는지라

아이들에게 정월 대보름 나물과 오곡밥을 해주리라하고 서둘러 장을 봐서 돌아오니

언제나 그렇듯이 견물생심이라 물건을 볼때는 의욕이 넘쳐서 장바구니가 휘어지게 주워 담아와서

집에만 오면 맥이 탁 풀려서... 한 숨 자고 내일 아침에 해야쥐~하고 또 미루었다.

이렇게하여 맛있는 음식으로 변신도 못해보고 시들시들 배배 골아서 명을 달리한 야채들이 부지기수이다.

냉장고는 음식 쓰레기 창고가 된지 오래고...

집은 폭탄 맞은 난민촌 수준으로 전락...

전생에 공주로 살았는지 아무리 무수리로 훈련시켜 보려고해도 안되는

공주과 예슬이는 엄마, 우리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진 것 같아요...이런다.

아이쿠...삶의 질이라고라?

 

 

 

 

 

 삶의 질 높아졌쥐이~~~!

영화관에 가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외식하고

해외여행 가고...그런거는 안해도...

남들은 거금 들여서 오고 싶어하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서귀포에서 사는 것 자체가

삶의 질이 높아진거다! 하며 역설을 해본다.^^

유기농 귤을 생산해내는 농부가 된것만해도 차원이 달라진거고.^^

맨 얼굴에 햇볕과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자유로와진 것도,

노동복 차림으로 그 어딜 가도 의식않고 자유로와진 것도..

엄마에겐 차원이 또 다른 세계로 들어선 건데...

 

그런데 아이들은...

엄마와는 다른 세상에서 다른 꿈을 꾸며

멀리서 환하게 비치는 문명의 세계를 더 동경한다.

내가 그 시절에 그랬듯이.

in seoul 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던 그 시절이 내게도 있었듯이.

그런데 이젠 탈 서울을 꿈꾸어 농부가 되었으니

삶의 질도 나이에 따라  장소에따라 느끼는게 다른 것 같다. 

  

 

 

 

 

 

우얗튼...당장 한끼라도 삶의 질을 높여보자! ^^

보름 나물을 있는대로 불려 놓고  

콩도 가지가지...팥, 돔부, 서리테,밤콩, 선비잡이콩...흐뭇해진다.

취나물, 산뽕잎,곤드래나물,호박오가리, 고사리,다래순...

참 좋은 세상이야. 이 제주도에서도 강원도 오지의 산나물(금자네 사랑방 카페)과

회원으로 가입하여 감자, 고구마, 옥수수, 고추가루, 온갖잡곡, 쌀까지 때되면 배송해주는 감물장터.

가만히 앉아서 주문만 내면 앉아서 즐길수 있는 세상.

간만에 삶의 질을 높이는 보름 나물 오곡밥으로 배를 불렸다.(역시 배를 불려^^)

돼지가족은 내가 나물을 다 볶기도 전에 이미 몇가지를 가져다가 놓고

허겁지겁...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을 보니 우아하게 다 차려놓고

간만에 사진 한판까지 박을려던 꿈은 날아가 버렸다.

제대로 된 나물 반찬 해준지가 언제였던고.

 

 

 

 

 

 

 명퇴후 3년째 어느날 일상의 단면이다.

 

요즘 내 곁에 가까운 지인들이 명퇴하였다는 비보(^^)를 여럿 전해 듣고

며칠째 곰곰 생각 하였다.아직도 진행중이지만 내가 조금은 선배인 입장에서

무언가 위로와 용기의 말을 전해야만 할것 같았다.

이제 베비비붐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 될것이라는 뉴스를 접하고

우리 세대...나와 비슷한 세대들이 겪어내야할 진통앞에서

나는 한걸음 앞서가고 있는 이정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난 누구보다도 많은 변화를 몸으로 이겨 나가고 있는 중이다.

서울에서 제주도로...세아이의 엄마에서 유기농 귤농부로...

남편의 은퇴가 태풍전야처럼 다가오고 있었기에 카운트다운을 세면서

불안하고 두려웠던 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최대한 미루고만 싶었던 명퇴가 현실이 되고나자

더이상 물러설 수도, 멈출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배수진을 치는 심정이 되어

비장한 각오를 안으로 다짐하고 달려온 2년여 시간.

그 사이...많이 달라진 현실 앞에서 나를 많이 비워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욕심은 버렸다. 가지고 있는 한마리 토끼도 건사하지 못할 형편이라

비우고, 가지 치고, 몸집을 줄이고, 기대치를 낮추고...

이 격랑의 파도타기를 3년만 하고나면 버티고 이겨나갈 힘이 생기리라...생각했다.

그 사이 온 가족이 건강만 하면 된다~가 목표였다.

 

 

 

 

 

 

 

그리고...또 앞으로 30년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조급해서도 안되고, 발을 헛디뎌도 안되니

차근차근...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겉으로 화려함이 아닌 내용이 알찬 계획을 세워야한다고 생각했다.

일전에 지인이 남편이 갑자기 명퇴하여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준 후

또 다른 지인, 또 다른 지인들이 연이어 같은 상황과 심정을 토로하는 것을 보고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여전히...

숨 고를 겨를도 없이...홀로서기를 위해 고군분투 중이지만

그래서 지난 겨울은 내 귤이 남을것 같자...

나는 건강하고 맛있는 귤을 최선을 다해 생산해 놓았으니

홍보해 주세요~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내 곁에 나와 연을 맺은 많은 분들이...내 일처럼... 도와 주셨다.

혼자사는 세상이 아님을 또 한번 느꼈다.

그리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 <우리들의 반디농장>임을 또 한번 느꼈다.

 

 

 

 

 

 

내게 응원을 해주셨던 분들...이번에는 내가 응원을 해드릴게요.

우린 해낼 수가 있어요.

아직도 나도 진행중이지만...

이젠 저도 해낼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의 건강이고

이럴때일수록 온가족이 합심하는 계기가 될거라고 생각해요.

명퇴후 3년 째...처음에는 아득하고, 두렵고, 불안한 마음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때 결단 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는 건너야 할 강이라...

우리 모두 잘할 수가 있다고...제주도 서귀포에서 고, 군. 분.투하는

세자매네 반디농장에서 모든 명퇴자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칩니다.

 

2010.3.4 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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