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지천에 새 생명이 움 트고 꽃향기 어지러운 계절!
남들은 삼삼 오오 꽃 나들이에 발 걸음도 가볍건만
기억도 아슴한 시절부터 나는 봄만 되면 심하게 몸살을 해대곤 했다.
멀리 아지랭이처럼 봄이 다가오는 징후를 보일 때부터
부활절을 전후해서까지 나는 가슴이 옭죄이고, 아리고, 이유없이 눈물까지 질금거리며
원죄의 고통을 혼자 짊어진 듯 몸과 맘을 부대끼곤 했다.
내 염기서열이 살짝 어긋난 이상한 종족이 아닌가싶게
소심한 성격탓에 크게 돌출하지는 못해도 안으로 이렇게 끙끙 두어달을 앓고 나서야
세상 풍경이 아슴하게 다시 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사춘기 시절부터 시작된 지병이...사느라 혼비백산한 가운데서도
해마다 봄이 되면 영락없이 찾아와서 나를 한바탕 휘젓고 가는데
올해도 귤 수확과 판매가 미처 끝나기도 전부터 내 촉수가 봄이 오는 것을 감지하고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그때부터 내 안에서는 아우성이 시작 되었다.
땅 속에서 뚫고 올라 오는 새싹들의 몸부림도 감지되고
꽃을 피워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꽃들의 아픔도 감지되고
춥고 긴 겨울을 털어내고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세상의 생명 모든 것들의 아우성이
감지되어 내 몸과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만 보고 듣고 즐기면 될 것을,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고, 아파하고,부대껴 하는 이 대책없는 감성을 어이할꼬.
다행인 것은, 한시도 방심할 수 없게하는 가지 많은,바람 잘날 없는 인생.
그렇게 시작된 3월이 정신없이 흘러 갔다.
서른 여덟에 낳은 막둥이가 이곳에 올 때 조기 입학하여 초등 입학 했었는데
어느덧 중학교 입학을 했고, 둘째 예지도 고등학생이 되었고
예슬이는 전국의 고3생과 학부모가 초긴장을 한다는 고 3이 되었다.
언젠가는 내게도 다가 오면 난 어떻게할까 싶던 그 고 3엄마가 되었는데도 나는 무덤덤 하기만 하고.
자연 속에서 살아서인지, 나이 탓인지...
세상의 잣대가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깨달음인지, 체념인지 분간이 안간다.
나이 오십에 이르고 보니... 인생의 절반을 보내 버렸던 나름 치열했던 서울살이도
이제와 결산해보니 고향에 남아서 평안하게 살았던 친구와 별반 다르지 않고...
무엇보다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지향이라는 생각이 들고...
건강한게 최고라며 야간자습하는 아이를 불러내서 외식시키는
느긋하고 대책없고 한심한(^^) 고 3 엄마가 되었는데...
어느 학교,어느 학교...지상 최고의 가치인 양 손 꼽던 그런 잣대가 모호해지고...
아이가 그저 엄마곁에서 오래 함께 하며 맛있는 것 함께 먹고
작은 행복이라도 함께 많이 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앞서니 이래서야 되겠는가?하는 반성도 생기지만
인생 별것 없더라~는 생각만 드는 것은 내 엄마를 떠올려서일까?
3월은 아이들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정신없이 분주하게 지나는 와중에
내겐 또 다른 큰 고민때문에 동분서주 하였다.
지난 겨울 남과 다른 귤을 만들겠다고 겨우내 나무에서 수확하였던 귤은
우리들에게는 최고의 귤이었지만 그 귤을 매달고 있는 나무에게는 최고의 시련이었던 것이다.
이곳에서는 일반적으로 귤을 눈이 내리기전까지 전부 수확하여서 저장 했다가 내보내는데
눈을 맞으면 귤이 상하기도 하거니와 나무에 귤을 오래 달아두면
이듬해 나무가 심하게 해걸이를 하는지라 사람들이 그런 모험을 하지 않는데
저장해서 나가는 귤과 나무에서 직접 수확해서 나가는 귤은 비교가 안된다며
겨우내내 눈을 맞히며 <유관순 귤>이라 명명하며 남다른 모험을 강행했다.
해걸이를 각오하기는 했었지만 막상 귤을 다 따내린 2월에 나무가 너무나 앙상한 모습을 보니
내가 너무 과욕을 부렸다는 생각에 나무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나무를 온전히 쉬게 해주어 할 것같은데
그러면 회원님들께 드릴 귤이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이 된것이라
나는 또 혼비백산한 심정이 되어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귤밭을 늘이지않겠다 했었는데 막상 이 상황에 직면하니
해걸이를 감안하면 귤밭이 조 금 더 필요한 상황.
그래서 여기저기 임대를 알아 보았지만 마땅한 장소도 없거니와
임대하는 밭들은 주인이 관리를 못하는 외지인 소유의 땅이 대부분이라
나무 상태도 안 좋은데다가(주인의 정성스런 관리가 안된지라)
주인이 언제 맘이 바뀌어서 정성을 들이고 있는 귤밭을 내어 놓으라고하면
그동안 정성을 들인 댓가가 물거품이 될 소지도 많아서 장기 투자를 할수 없는 상황이 염려되고...
귤밭을 새로 장만하려는 것도...땅값이 이미 농사 지어서 수지 타산 맞추어야 할 한계를 훨씬 넘어선지라
비용부담도 만만치가 않아서 내 고민은 또 무거운 추를 달고 깊어만 갔다.
나는 가볍게 생각해도 되는것까지 깊이 깊이 생각해서 때론 인생이 더 고달픈 사람이다.
얕은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을 보면 질색을 하는 사람이라
내가 세운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아직도 고지식한 사명감을 못 벗어나는
범생이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라서 내가 회원님들께 호언한 남다른 귤을
올해도 꼭 보내 드려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앞뒤 분간없이
또 싸고 좋은 귤밭을 찾아서 순례를 하느라 3월 한달이 어찌간지도 모른다.
2년에 한번 수확하는 귤을 만들어 내자면 귤밭이 더 필요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싸고 좋은 땅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땅을 찾자니 더욱 힘든 것.
유기농 귤에다가, 맛도 있고 때깔도 좋고 최고로 좋은 것만 주세요~하던 고객을 만나면 난감해지던 것이
내가 또 땅을 사거나 무엇을 살때는 똑 같은 욕심이 발동하니...
결론은 싸고 좋은 땅은 없었다.맘에 든다싶으면 머리가 띵하게 비쌌고
전체적으로 물가 상승률만큼 해마다 오르는게 땅인지 순수하게 농사 지을 땅으로서는
가격이 너무나 턱 없이 비쌌고 헐한 것을 찾으려면 멀리 외곽으로 나가야 하는데
회원제 농장을 하려면 너무 먼곳도 안되겠고 무엇보다도 귤맛이 없는 지역은 안되는지라
좁은 반경 안에서 충족하는 땅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였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농지로서는 평당가 10만원을 넘어서면
수지타산 맞추기가 어려운데 좀 쓸만하다 싶으면 모두 20만원대를 넘어서고 있으니
농사도 이젠 아무나 지을수 있는 여건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제주도 서귀포 땅은 그런것 같다.
그렇게 헤매고 다니다가 평당 10만원 한다는 땅이 나왔는데 눈이 번쩍 뜨여서 달려 가보니
역시나 하자 투성이다.
얼굴도 이쁜데다가 몸매도 쭉쭉 빵빵, 집안도 좋아요, 학벌도 반짝반짝
거기에 성격까지 좋은 배우자를 찾는 심뽀(^^)나 같은 하늘에 별따기같은 땅 찾기를
하고 있으니 머리에 쥐 날 일만 반복되고...
그래도 하자 투성이인 땅을 가격 메리트에 사로잡혀 계약을 했는데
농업용수도 없어서 빗물로 소독하고 진입로도 좁은 골목길에 경사도가 45도 이상 되어서
매일 택배를 해야하는 나로서는 난감하기 그지없었지만
물은 실어 나르던지하고, 나르는 것은 레일을 깔던지...하면서
싼 땅에 집착해서 계약을 하긴했지만 앞으로 일을 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만 하여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데 매도자가 채무 관계가 얽히고 섥혀서
풀기가 어려워서 열흘동안 시간만 끌다가 결국 매도자 측에서 취소요청하여
계약금을 걸지않고 구두계약한 상태라서 서로 합의하에 취소하고 말았다.
그 상황에 남편이 맘에 들어하던 땅이 있었다.
평당 17만원.(가격을 쓰는 이유는 혹시나 귀농하려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까하고...)
이 가격대는 순수 농사 차원이 아니지만 택배하기 좋은 길, 건강한 나무,
2년이상 제초제 안치고,3면이 길로 둘러 싸여서 이웃 밭에서 날아오는 농약 피해도 피할 수 있고...
비싼만큼 장점이 많은 밭이다.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돈만 있으면 훨씬 더 맘에 드는 땅도 많다.
결국은 돈때문에 머리가 아픈 것. 온갖 궁리를 다 해본다.
어떤 융자를 받아서 접근해볼까...
귀농정착자금 3%...일주일이상 통과해 보려고 온갖 심혈을 기울여서 작성한 서류가
결국엔 자격미달로 탈락, 농어촌공사의 2%의 자금은 땅지목이 임야라서 또 탈락.
결국은 일반 융자를 받아서 사야 하는데 아무리 두들겨봐도
숫자상으로는 그다지 수지타산 맞는 일이 아니다.
단지...내가 꿈꾸던 회원제 반디농장을 위해서는 저질러야하는 상황.
그래서 뻐근한 나날이 지속 되었다.
무리한 투자도 싫어하고,겉으로 과대포장하는 것도 싫어하고,
허세부리는 것은 더더욱 싫어하는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규모가 커지는게 아닌가하여 고심했다.
그래도 벌써 반디농장은 그 틀을 갖추어 가는데 내가 회원님들께 약속한 것들도
하나하나 차근차근 실천해 가야 하는데 귤이 모자라서야 되겠는가?
나는 남편과 둘이서 일해낼 만큼만의 규모를 원하는데
속 빈 강정 되는 것도 싫고, 내가 만족하지 못할 물건을 생산하는 것도 싫기에
지난해 수확 판매한 양만큼만 되면 되겠는데 올해는 그 절반 밖에 수확이 안될것 같아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귤밭이 조금 더 필요한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고 필수사항이었다.
그렇게 머리가 복잡하니 명쾌한 생각이 안 떠올라서 지인께 지혜를 구했다.
멀리 생각지말고 지금 당장에 내가 필요한 것을 위해서 일을 해 나가는게 좋겠다는...
나도 어느 정도 생각이 그렇게 가닥을 잡아가던 중이라서 고심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3월 마지막 날...세번째 반디농장을 계약하고 말았다.
이러고보니 내가 엄청나게 땅이 많은것 같지만 사실상 과수원으로서는
셋 합해도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는데 내가 한꺼번에 저지르지않고
조금씩 가늠을 해보고 형편에 맞게 구입하느라 자잘한 것이 세개나 되게 생겼다.
땅이 넓어지는만큼 일도 더 많아 지겠고...
그래서 장기 구상을 했다. 기후조건이나 입지조건이 너무나 따뜻한 효돈밭에는
장차 노지한라봉으로 바꾸어서 회원님께 골고루 보내 드릴 수 있는 품목을 생산하고
이번에 장만하는 밭은 일조량이 풍부하고 바람은 서늘하고
첫번째 유기농 밭과는 멀지않은 곳에 있어서 내가 그동안 관리한 유기농밭은
이미 나와 회원님이 경험 하였듯이 귤 맛을 최상으로 낼수있는 입지에 있으므로
여러가지 감안하여 비용으로는 내게 과한듯 하였지만 십년대계를 위하여 결정을 내렸다.
이런 나날이 지속되느라...
수확이 끝나고서도 나는 한시도 쉴틈없이 몸과 마음이 분주하였다.
그동안 너무나 고마왔던 분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우선 발등에 불부터 꺼야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연락도 없이 한달이 또 훌쩍 지나가 버렸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장만하는 밭은 남편이 너무 맘에 들어하니
열심히 더 잘하라고 선물한다고하니 남편이 연신 뿌듯하다고 말한다.
당신은 뿌듯하지만 난 뻐근하기만 하오....하면서도
이제 2학년에 올라가는 남편이 농삿일에 더욱 매진하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귤나무에서 바로 수확하여 겨우내내 내보내는 귤(유관순 귤)로서
회원님께 보답해 드릴 생각에 뻐근한 마음을 4월부터 산뜻하게 가지기로 맘 먹었다.
그리고 이왕지사...이제는 더욱 제대로 해보자며
위에 보이는 1톤 트럭도 장만해 부렀다.
언제부터인지 내 인생이 중고인생처럼 맨날 남 쓰다가 만 중고로 연명하다가보니
이제는 새것이 오히려 거북하고 불편한 마음이 되었기에
우리도 좀 폼나게 살아보세~하며 장만한 것이...이 트럭이다.
실은 지금 쓰는 아반테도 10년된 것을 구입하여 이미 4년째 쓰고 있는데
길 가다가 한 중앙에서 서기를 몇번째...이제는 길 한복판에서
교통정리 하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지만 중요부품을 계속 교체하면서 드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은지라 쓸때까지 쓰고 이제는 더이상 안되면 조용히 쉬게 해드리겠다고 맘 먹은지라
이제는 중고만 사지말고 새것도 사보자며 큰 맘 먹고 저지른 것이다.
남편과 난 4년전에 이곳에 와서 둘이서 동시에 1종 면허를 취득 하였는데
남편이나 나나 기계치인지라 무작정 차를 몰기만하지 관리도 제대로 않고
실은 아직도 후진주차 할 때는 땀을 뻘뻘 흘리곤 하는데
남편에게 내 등만 믿지 말고 이 트럭 타고 맨날 밭에 가서 스스로 일을 찾으소서~해도
마마보이처럼...(에궁... 젖은 낙엽처럼 휘감긴다더니 그 말 실감) 나만 채근하니
은근히 쌓이는 부아를 삭히려니 "우리 각자 좀 움직이자"가 내 캐치프래이즈이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내 팔자려니하다가도...
남편과 24시간 동행은 웬만한 내공은 소용없이 만들 때가 더러 있다.(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래도...남편이 밭을 하나 더 장만하고서는 "이제는 아이들 교육 시킬 수가 있겠지?"하는 말에
아빠로서의 책무는 잊지 않았구먼~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내 눈엔 여전히 철 없는 남편은 아직도 빨간 마후라를 휘날리며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쌩쌩 달리며 오빠~를 외치며 손짓하는 이쁜 여자들을 꿈꾸는 철없는 상상을 하는 모습에
으이그...철 들자 망령이라더니...ㅉㅉㅉㅉ...철 든 내가 이해해야지 우짜겠노~하며
이제는 지지고 볶아도 삭힐수 있는 내 나이가 된 것이 다행이다.
때론 연민, 때론 애매모호한 사랑 아니면 정, 때론 체념인지도 모를 부부관계.
애인같은 닭살 부부가 아니라해도...
휘감기는 젖은 낙엽같다고 해도...그래도 부부는 천상이 맺어준 인연이라...
한 눈 감고 바라볼 대상이라...때론 아이들보다도 더 아이같은 남편과의 동행이
가볍지만은 않아도 그래도 혼자가는 길보다는 훨씬 수월한 길이기에...
선물치곤 거금의 과한 선물이지만
명퇴한 남편이 스스로 즐거이 일 할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 것이
남편에겐 성취감을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으면 한다.
남편의 꿈은 농부가 아니었기에...한편 나 만나서 남편이 고생 한다는 생각이 이제는 들기도 한다.
그동안은 내가 당신 만나서 고생이야~하며 눈을 흘겼는데...ㅎㅎㅎ...
도망 안가고 따라오는 남편에게 감사의 선물 치곤 뻑적지근한 선물인 셈이다.^^
2010.4.5.英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