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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춘자싸롱 멸치국수

by 농부김영란 2009. 1. 18.

 

 

남편이 회사를 퇴직하고나서부터 사실 내 마음은 동요되기 시작했다.

내가 지은 농사만 가지고서는 세아이 양육하며 생활을 지탱할 수가 없기에

결국은 남편이 하자는 장사쪽으로 어쩔수없이 마음의 방향을 잡고 있었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이제부터 세 아이 교육비가 만만치 않은 시점인데

남편은 더이상 직장 생활은 하지않겠다 선언하고 또 차일피일 직장생활에 연연하기만해도

어차피 몇년안에는 떠밀려나야만 하는게 현실정인지라

한살이라도 젊을때 새출발 하는것도 낫겠다싶어 더이상 남편을 채근하지 않고 새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08년까지 농사 짓고 육지로 나가서 장사를 하자는 남편의견에 아쉽지만 동의할수밖에 없었는데...

 

내심 혼자 작심한게 있었다.내 농사가 비록 수입은 보잘것 없지만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왔는데다가

무엇보다도 내가 귤로서 맺은 인연들도 아쉽고, 그동안 내가 닦은 길도 아깝고,

이젠 제법 의연해지고 키도 훌쩍 큰 5학년 농부가 되는데...

속으로 목표치를 세웠다.2007년보다 30% 신장하고 12월안에 끝내면GO~GO~

그 누구에게도 이런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 목표대로되면 운명이거니하고

그냥 내달려 본다~가 내 심산이었는데 하늘은 눈치채고 계셨던게지.

어~어~ 불이 난거 아니야~~~미처 수확도 하지 못하고 주문을 대기 바빴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어쨌거나 12월 10일 이제 판매를 시작해야하는 시점에

내 귤은 "매진 되었습니다~죄송합니다!"하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워낙이 작은 밭이라 내 혼자 소일삼아하던 크기라서이기도 하지만

이제 내 귤의 진가를 소비자가 알아 주신게다.

그리고...나를...귤농부로 거듭난 내 의지를 알아 주신게다.

그런 믿음이 휘감았다.

 

 

 

 

하루 매출 200만원씩 올리는 조카의 조개구이집을 다녀 온후론

전공은 무시하고 일구월심 조개구이집 하겠다는 남편도 나의 이런 현상에 놀라워 했다.

이제 우리 귤밭이 두배는 되어야 하는데~~~이런 상황을 보니 수입을 떠나서 이제 시작인데...접는다니...

너무 아쉽잖아~~~귤 밭에다가 조개구이집 차려주면 안될까나~~~슬며시 남편의 의중을

돌려 보려고 회유를 시작했다.그리고...지금 세계경제가...운운하며...거금을 들여서 무얼 할때는 아니라고...

남편을 세상구경을 하라고 육지로 내 보냈더니 아는 지인 모두가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대로 제주도에 있는게 낫다고 조언을 했다며  남편은 슬며시 조금씩 꼬리를 내리는듯 했다.

제주도에서 귤농부라 살라는 하늘의 계시인게다~며 나는 다시 흔들리던 중심점을 한라산에 고정시켰다.

그러고나니...다시...내가 해야할 일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마음이 흔들려서인지 아이들과 가까운 바다조차 한번 나가지 못했구나~하는 생각이...

 

 

 

 

요즘 제주여행중에 새로운 테마로 떠오른 제주올레~~~

내가 온통 흔들리는지라 말만 들었지 결행은 못했는데 올해는 한번 완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주올레 사이트에 가서 코스를 샅샅히 살펴보고 여러가지 경험담을 읽어보고 하던중

제주올레를 만든 이사장 서명숙씨의 글 중에서 눈이 번쩍 띄는 먹거리 집을 발견했다.

표선에 춘자싸롱 멸치국수라는...작년에 남편이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을때 그곳 사장님과

핀크스골프장우동 시식을 가던중에 춘자싸롱 멸치국수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기에

서명숙 이사장이 글에 언급한 것을 보고 반가와서 기필코 내 눈으로, 내 입으로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릴것 같아 한밤중에 그 글을 읽고 날이 새기만 기다렸는데 잡다한 일로 며칠이 또 가버렸다.

대체 어떤 맛이길래 그 허름한 간판도 없는 집에서 한다하는 논객들의 입소문에 대서특필까지 한단 말인고.

이름도 멋져부러~ 춘자싸롱이라고라? 간판도 없는 것을 손님들이 쥔장 이름 붙여서 회자되는 것이라나.

단일메뉴에 가격도 착한 2000원.허걱~! 멋과 맛을 아는 식객들이 그리도 칭송한다면

이 분은 분명... 내공 9단. 숨은 고수임에 틀림없다.

천리길이 대수랴~2000원 국수 먹자고 30분 길을 달려가면 기름값이 얼마냐? 싶지만

오전에 볼일 끝내고 영문 모르는 아이들 바람 쐬러 가자며 태워서 가니

남편왈 애들은 국수 싫어하니 자장면이나 시켜 주란다.그 집엔 국수밖에 없다거등.애들은 심드렁.

멋대가리없는 인간들 같으니라구...그냥 국수가 아니라잖아~~~

그러면서 표선면사무소앞 골목길에 있다구 했지.

무작정 면사무소앞 골목길에서 두리번 거리는데 사진에서 본 그집이 안보인다.

마침 지나가는 아줌마에게 근처에 유명한 국수집이 있다던데~하니

그 집 문 닫았다고 하더라며 춘자싸롱 말인가요?한다.하루 문 닫은게 아니고 아예 문 닫아~아뿔싸~

바로 아래 골목에 있다기에 조금 내려가보니 골목은 아니고 작은 가게 뒷집이었다.

어~~사진에 있던 그 집 맞다.간판도 없고 의자도 5개밖에 안된다는...

어머나...그런데...분명 사진에 있는 그집인데...을씨년스럽네.

안마당에 있는 집은 쓰러지기 일보전처럼 보이고...이 집이 그 유명한 춘자싸롱이란 말인고.

왜? 문 닫았을꼬.마침 앞 가게에 아주머니가 계셔서 빼꼼히 문을 열고 국수집 문 닫았냐고 물으니

그런 질문 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아주머니가 퉁명스러운 성격인지 "닫은가부지" 그 말만하고

입가를 묘하게 찡그려서 더이상 묻지를 못했다.아이들 배고프다고 아우성 할까봐

집 나오기전 얼른 귤쨈 바른 빵조각으로 우선 허기를 잠재운게 천만다행.

돼지가족들의 원성을 들으며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오니...엄마는 외계인! 이런 표정들이다.

할. 말. 없.음.

 

 

 

 

그 유명한 춘자싸롱 문 닫음.....

무슨 이유일꼬.

 

며칠전 목공예 배우러 갔다가 선생님네 사정.일주일동안 내린 눈때문에 갇히다시피하여

막걸리도 떨어지고, 개사료도 떨어지고하여 가까운 무위재 아이가

체인 감고 공급해줬다기에 무위재팬션 이야기를 연재했던 주인장은 잘 계시냐고했더니

그 분은 작년에 간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어머나...밤새 안녕~이라더니...

몇년전 그분이 연재한 글들을 읽으면서

제주도살이 많이 적응하셨나했더니...

제주도의 바람이 되셨구나~

늘...이런식이지, 인생이란.

 

 

 

 

그런 황망한 소식을 안타까이 들은 직후라서인지

소문만 듣고 달려온 춘자싸롱 소식은 한번 맛보지도 못하고

의문만 증폭시키게 되었지만 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명성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내 눈으로 내 입으로, 내 감성으로 확인해야만 가늠이 되고 평가가 되는지라...

이렇게 허름한 집에 간판도 걸지않고 의자 5개에 국수집을 차릴수 있는...

그것도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라면

그 분은 그 어떤 분보다도 깊은 내면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요리사라면 요리로 말하고,작가는 살아있는 글로서 말하고

화가는 그림으로서 말하고 음악가는 음악으로 말하고

가수는 노래로서 말하고

귤농부는 귤로서 말해야한다~~~

그런 지론의 나인지라...^^

 

 

 

언젠가 바람결에라도 다시 문 열었다는 소식 들려오면 혼자 달려와 보련다.

그런 고수...흔치 않거든.

 

 

 

 

돌아 오는 길.

허기진 배를 움켜쥔 돼지가족들에게 양으로도 만족해야만 하는 집

<아서원> 짬뽕을 한그릇씩 안기고(이 집은 양과 질 가격 모두 양호.매일 줄서 있다)

오랫만에 가까운 바다 쇠소깍에 가보니 그동안 많이 정비 되어 있었다.

모래가 다 쓸려가서 황량한 바다를 본지가 한참이나 되었었나...

그 사이 많이 정비하여 검은 모래가 가득한 풍부한 해안이 되어 있었다.

 

춘자싸롱 멸치국수집때문에 오랫만에 바닷바람 쐬고 온 날이다.

 

부디 춘자씨...돌아와 주세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2000원의 전설을 깨더라도

다시 문을 열었으면...

수지타산이 안 맞았을까? 아플까?다른 무슨 이유...

한번 보지도 못한 사람이 왜이리 궁금해지는걸까.

흔치않은 아까운 사람이라는 생각때문에...

 

2009.1.18

 

1월말이었나 2월초였나 다시 한번 춘자씨를 보러 갔다.

완전히 닫은것인지 잠깐 닫은것인지...

그리고 유명한 맛은 반드시 내 입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려서...

만났다 춘자언니.

멸치국수...고개 끄덕끄덕...2000원 드리기가 미안했다.

마구마구 칭찬했더니 커피도 타주고

사진까지...ㅎㅎ...

사알짝 웃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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