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나라 제주도에 사흘 밤낮으로 눈발이 휘날렸다.
굳센 금순이표 귤로 태어나라고 일부러 눈 맞히고 한파에 내돌리는 마지막 남은 귤.
이곳 사람들이 보시면 혀를 끌끌 차는 시도이다.언제나 역발상...
일명 효소용 귤이 아직도 나무에 달려있기는 하나 일찌감치 매진사태를 빚은 2008년산 귤이었기에
나는 요즘 아주 늘어지게 2007년과는 다른 깊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점을 맞아서 생각이 많은 요즘이라 정리도 할겸
잠시 수확과 판매로하여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마치 활활 타오르던 불길에 찬물을 끼얹듯 갑자기 잠잠...
너무 조용해진 내 블러그에 익숙치 않으실지도 모른다.
이제 손마디에 박힌 옹이와 수십년 농부 저리가라하는 피부가 되어 있어도 무덤덤해진
초보 농부 5학년이 되었으니...제법 절제도 할줄 알게 되었다.
농부는 농부답게, 귤농부는 귤로서 말해야 한다며 온 몸을 투신한 결과...
그래도 부끄럽지않게 당당히 설수 있게 되어서...조금의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작은 씨 하나 뿌린 것이 이제 새싹이 나고 줄기가 뻗어나는 느낌이다.
지난해 8월 남편은 더이상 직장 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거의 일방적으로 내게 사표를 냈다고 통보했다.
처음에는 내가 앞으로 맞이할 미래가 불확실하고 두려워서
덜컥 주저앉는 느낌이 왔으나 여러가지로 생각 해보니 어차피 언젠가는 건너야 할 강이라
미루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귤 수확하고나서
대책을 세워보자고 맘 먹었다.
매월 꼬박 꼬박 들어 오는 월급 봉투가 월급이 끊기고나자
그동안 내가 편하게 살았구나를 실감했다.
내가 귤 농부가 된것도 남편이 언제 그만둘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이왕이면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한다고 도전하였던 것인데
수입으로치면 걱정되는 부분이었지만 생계때문에 늘상 하고싶은 일을 미루며
소모적인 단순일상을 반복하며 살고싶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도전하겠다며 감히(^^) 도전했던 귤 농부.
세월도 빠르지. 그새 훌쩍 4년이 흘러 버렸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 둠으로하여 내 궤도수정도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지난 가을 내내 고심을 했다.그리고...
복잡한거 아무리 머리 굴려도 명쾌한 답이 안나올 터.
주사위를 던지듯 운명의 활시위가 날아가는대로 날아가보자~로
또 내 식으로 내달려 보기로 정했다.
25년 요리사 남편을 전업주부하시라하고 4학년 귤농부가 먹여 살리겠다고 선언!^^
수입도 1/3, 아이도 셋이나 되는데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은
마흔아홉살 아지매의 대반란이다.
(항상 겁이 없으니 이런 도전을 할테지만)
내 나이에 오씨들의 저 찬란한 행보를 보라!(오바마 미국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
새상은 못 다스려도 내 가족 굶어 죽이지는 않으마~~~
남편도 가장으로서 걱정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직장 생활 하느라
많이 지쳤을테니...올 한해는 푹 쉬시라~~~
그리고 주부 역활 좀 바꿉시다~~~
(나도 주부생활 은퇴하고 싶어서 늘 몸살이 났었는데)
이게 내가 요즘 내린 올 한해 계획이다.^^
남편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신라호텔 양식 요리사로 청춘을 보냄)
자신의 가게를 하겠다며 등 떠밀지도 않는 직장을(신라호텔은 명퇴했지만 새 직장에서)
제 발로 용감하게 걸어나온 위인이시지만
내 보기엔 가방 들고 학교만 왔다리 갔다리한 학생쯤으로만 보여서
지금 울매나 경기가 나쁜데 좌판 벌인다고 구름떼처럼 손님이 몰려 온다고?
테이블 세개만 놓인 구멍가게 얻어 드릴테니 실력을 입증해보라며 등 떠밀어 보지만
테이블 30개 놓인 가게라야 눈에 들어 온다니 당신은 세상 너무 몰라하며...
등을 떠밀어 내고 올 한해만이라도 내가 가장 해보겠다고 선언한...
나!
하하하!
귤 농사 좀 익숙해 졌다고 이런 호언 장담을.
2008년 상황으로 봐서는 지금 밭의 두배는 되어야 할 상황이 되었는데...
임대든 매매든 조금 더 늘려 보려하나
여의치 않으면 재충전을 하며 올 한해 보내려한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 가면서...
남편도 나도...일개미처럼 살아왔는데...
올해는 좀더 자유인으로 살고자 한다.
남편 일손도 있으니 창고도 개조 해보고, 꽃씨도 주변에 많이 뿌려 보고
그동안 내가 일에 치여서 미처 정리 못한 주변이나
또 언젠가는 내 손으로 내 집짓기 하고 싶었는데 짬짬이 구상도 해보고자한다.
수입이 줄면 어떻게 살아가나하는 걱정 보다는
마음을 비우고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나니 또 다른 세계가 보인다.
길은...언제나 한가지만 있는게 아니니까.
그러다가 어느날...
귤 나무 아래 테이블 하나 놓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노천식당을 개업할지도 모르고...^^
귤나무숯불 바베큐...노천 화장실...ㅎㅎ...
주인장은 밭일하고 알아서 구워먹고 알아서 치우고...
뭐 그런 식당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 소릴 하니 남편은 기가 막혀 하는데...
나는 왜? 좁은 공간에 갇혀서 지지고 볶는것 보다 자연 속에서
나무도 보고, 새 소리도 듣고, 벌레들도 만나고, 가끔 운 좋으면(^^) 비얌도 만나고...
얼마나 좋아~그런 생각이 들까.
갇힌 느낌이 싫어서, 고정 관념을 벗고, 자유로운 바람처럼.
나같은 생각하는 사람만 고객으로.ㅎㅎ...
올해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까 진지하게 생각해보며
그동안 떠밀리다시피 살아온 삶의 보폭을 점검하고
좀더 깊고 더 그윽한 시선을 지닐수 있도록 철학적 고민을 해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올 한해쯤...내 인생에서 아주 천천히 걸어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느끼지 못했던 것, 즐기지 못했던 것을
피부로 실감할수 있도록.
마흔 아홉살. 오십대가 되기전에
그래도 아직은 젊은 40대를 맘껏 즐겨 봐야지~
2009.1.14 英蘭
'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효소용 귤도 없어서... (0) | 2009.01.24 |
---|---|
춘자싸롱 멸치국수 (0) | 2009.01.18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0) | 2009.01.01 |
구절초 1 (0) | 2008.10.06 |
어승생악오름에 오르다. (0) | 2008.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