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뜨겁게 달구던 더위도
이제는 밤에는 이불없이는 잘수없이 된것을 보니
절기의 오묘함에 무릎을 친다.가을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바람결로도
귤밭에서 익어가는 귤들을 보아서도 여실히 느낄수 있다.
올해는 집중호우가 전국 곳곳에 강타하였지만 아직까지는 태풍피해가 없이
지나가고 있어서 한편 다행이면서도 작년 9월12일의 악몽을 잊지않고 있는지라
농부가 섣불리 호들값을 떨면 큰 코 다칠까봐
내심 조심스레 계절의 변화를 살피고 있는 중이다.
작년 9월 12일은 제주도로서는 잊을수 없는 날이였다.
태풍피해로 인명 피해와 나의 귤밭에서도 아직도 그 때를 떠올리게하는
찢어진 나무들이 안쓰럽게 상기시켜 주기때문에
9월이 다가기 까지는 안심할수 없다는 것을 길지않은 농부생활에서도 깨닫게 되어서
회원님 나무를 정하지 못하고 조심스레 관찰만 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까지는 ....이만하면...괜찮아...하고 흐뭇해하고 있지만
꼭 무슨 징크스인양 좋아라하는 순간부터 코가 깨지기 일쑤였던지라
매사 호들값 떨지말고 자낙자낙 조심히 가야지...시샘하는 것이 어디 한두가지라야 말이지...
이렇게 신중(^^)론자로 거듭나고 있다.
살면서 가슴 쓸어 내리는 일들을 겪고 보다보니 때론 너무 신중해지나 싶다.^^
초보농부 1,2,3학년 시절엔 작은 일에도 가슴이 뛰고 들뜨는 일이 잦았으나
4학년인 올해는 여유를 부린다. 귤밭이 풀밭이 되어도
발 동동 구르지 않고 언제쯤 예초를 해야 하는지를 알기에
섣불리 에너지 낭비를 안하려는 꼼수를 부리기도 하고
소독 한번씩 하고나면 일주일은 끙끙 앓았는데 이젠 소독쯤이야...ㅎㅎ...
소독중에 줄이 터져도 안절부절하지 않고 태연히(^^) 고쳐서 다시 소독하곤 한다.
작년 초등학교 4학년 막내딸이 어쭈구리...건방을 떨어~~하던 그 모습...
내가 그 4학년 농부인지라 이젠 응석 부리는 소리도 쏙 들어가고...ㅎㅎ...
우리 귤밭이 어찌 되어가고 있는지 나의 회원들이 궁금해할 정도로 귤밭 소식도
미주알 고주알 올리지 않고 있다.^^
세아이 키운 저력(^^)으로 농사 짓는다며 농사의 원리나
사람농사나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믿어
무농약농사에 도전한 겁없는 농부가 되었는데...
나의 지론이 어느정도 맞았다는 것을 확신케 되었다.
작년, 올해 무조건 나무가 건강해야만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폭식을 할만큼 거름을 많이 주고 강전정을 하여 나무가 너무 지나치게 건강하여
순만 무성하고 열매는 맺지 않았어도 잘했어, 먼저 건강해야만 튼튼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어.
하고 마음 비운 것이 주효했다.마음을 비우는 것이 수입과 직결되는 문제라
의연해지기가 쉽지 않았지만 길게보고 가야하는 길에
자잘한 이익에 연연하면 소탐대실한다는 진리를 가슴에 품고...
그랬더니 올해는 오히려 작년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
기본을 튼튼히 해야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인것 같다.
엊그제 석회보르도액으로 마지막 소독을 하면서 관찰해보니
탁구공만해진 귤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환한 미소를 마구 보내는데
일시에 사소한 근심들이 다 날아가버렸다.
작년에 많이 달렸던 나무들은 어김없이 재충전에 들어갔고
작년에 쉬었던 나무들은 건강한 모습으로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고 있다.
이제부터는 당도 올리기에 만전을 기하려고 한다.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태풍없이,일조량이 풍부하게
마지막까지 하늘이 도와주어야만 될것이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어야 할것 같다.
추석이 지나고 회원님 나무에 이름표도 매달아야지.
이쁜 나무들에게 이쁜 이름표를 달아 주어야지.
날 믿어주고 밀어 주었던 나의 고객님들께...
즐거운 축제 한마당을 열어 드려야지.
이쁘고 기특한 열매들을 보니 즐거움이 스멀스멀 배어 나오려는 것을 애써 갈무리한다.
농사는 끝까지 가봐야만 한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기에...
과장도 부장도 다 싫고, 오직 이 기사가 되고프다며 노랠 부르던 남편을 달래서(^^)
후반전은 내가 뛸테니 50세까지만 달려주라 했건만...
남편은 나와 상의도없이 사표를 쓰고서는 회장님(나) 기사로 살겠다한다.
망치로 한대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지만
"언제는 인생이 계획했던대로만 가더냐.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그렇게 맘 먹고 나도 종이호랑이가 된지가 언젠데 싶지만...
후반전을 달릴 엄두를 내려고 준비중이다.
"마라톤에서는 할아버지격인 이 봉주도 뛰더라.
그래, 김다르크가 되어보지 뭐."
연봉 천만원에(작년기준) 기사까지 둔 자칭 회장님이 되어(사장은 이미 되었고...ㅎㅎ)
나는 인생 후반전을 뛸 준비를 하려고 마음을 동여매고 있다.
젊은 패기도, 용기도, 체력도, 의욕도 모두 예전 같지가 않지만
인생의 룰을 터득했으니 내 보폭에 맞게,과욕 부리지 말고,
일등이 아니라도 끝까지 완주하는 마라토너가 되어보지 뭐.
인생은 내게 이렇게 한시도 방심을 허용치를 않네.
김회장의 인생역전 드라마를 써야할 때가 온 것 같다.^^
음~~~녹슨 칼을 빼들어~~~ ^^
2008.8.31 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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