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 정보를 찾느라 관계 기관들 사이트를 뒤지다가
올해 새로 신설되었다는 <신규 영농 후계자 창업자금 대출 신청>을
2월말까지 받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귀가 솔깃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올해 새로 신설된 제도이며
45세 미만에 대출금 한도는 5천만원까지이고
금리는 3%에 5년거치 20년 상환이라고 한다.
내가 이번에 담보 대출로 받은 금리가 5.3%에 신용 대출은 6.5%이니
3%란 대목이 특히나 내 시선을 사로 잡았다.
몫 좋은 아파트에 투자했다면 몇배나 올랐을지도 모르지만
빌라나 단독으로 옮기면서 간신히 물가 따라잡기 정도밖에 오르지 않은
집 한채가 전부인 내 실정이고 보니 저리의 융자를 이용 할수만 있다면 하는 것이
유리한 상황인지라 되든지 안되든지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신규 영농 후계자 창업 자금>
전화로 문의 했더니 시청 담당 부서를 찾아가라해서 방문 했더니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고 담당자는 외출중이라며
농업 기술 센터로 가보라하여 다시 그곳에 갔더니 시청 소관이라 하였다.
공무원들이야 내 담당이 아니면 신경 안쓰면 그만이지만
당사자인 나는 속이 타고, 어설프고 미온적인 태도에 짜증이 나려고 했다.
그래도 영농 후계자금을 대출 받겠다고 찾아든 아주머니가
기성 농부(?) 같지 않은 새내기임이 한눈에도 엿보이는지
관심을 가지고 자기 담당은 아니지만 필요한 자료들을 다운 받아서
제공해준 분이 계셔서 감사하다고 인사 드리고 돌아 왔다.
유기농 농사를 지어 보겠다는 내 피력에 호기심을 보이는 공무원들의 눈빛에서
마치 외계인을 바라 보는듯 함을 느끼면서...
서류를 자세히 살펴보니 한숨이 나온다.
해당 사항에 근접하는 내 자격이 너무 미달인 것임을 스스로 알수밖에 없는...
나이는 45세까지라하니 간신히 턱걸이 하는 나이에다가...(내 나이 45세이니...)
여성이 안된다는 조항은 없지만 남성이 유리하다하고...(힘의 우위인지?)
농지가 많은 사람이 가산점을 받는다 하고...(이조항도 난 하위일 것임.)
농업계통학과 나온 사람 가산점...(난 농업학교와는 거리가 먼 출신이고...)
각종 농업 교육 과정을 이수한 자 가산점.(미처 준비 못된 나 자신...)
실제로도 제대로 준비가 안되었음을 스스로 알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 나이에 제대로 준비할 여유가 있기나 한 상황인지?...핑계인가?)
내 투지를 믿고 밀어 부쳐서 나아갈 생각이었는데
그동안 충실하게 나라에 세금만 내왔지 혜택 한번 받아 본적이 없기에
이번 기회에 나도 한번 이용해 볼 요량이건만...
한숨만 나오는 나는 조항마다 자격미달이다.
요구하는 자격으로치면 내가 꼴찌일 것 같다.
(혹 나같이 무모한 지원자가 또 나올지도 모르지만)
상심하는 내 표정을 읽은 공무원이 구비 서류를 다 작성하면
미리 검토해 줄터이니 한번 가져와 보라한다.
말씀만으로도 고마운 말이기에 한가닥 기대를 가져보면서
그래도 미리부터 포기는 하지말고 부딪혀는 보자 결심 하는데...
어떻게 내가 투자 대상자로서 가능성이 있음을 알린단 말인가?
전업 주부로 살아온 10여년 세월동안 변변한 이력 하나 갖추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살아온 세월인데...
낭패감을 느끼는 사오정 아내이다보니 돌파구를 찾기는 해야겠고,
그러다보니 제 2의 인생을 늘 관심있던 유기농법을 해 보기로 하였는데...
나라에서 준다는 혜택이 곰곰 따져보니 내겐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가?
그래도...어차피 던진 주사위다. 무조건 돌진 해보는거다.(무소의 뿔처럼)
작심하고 내 진가(?)를 알릴 방도를 찾아 두리번 거리다가...
이렇게 나를 알려 보기로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그들이 원한다는 사업 계획서니,해당 사항 다 무시하고
내 식으로 작성한 서류 제출 해보기로...
내가 얼마나 식물 가꾸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그동안 어쩔수없이 도회에서 살았지만 쉼없이 가꾸고, 기르면서 느낀
내 경험담도 좋은 이력서가 될수 있지 않을까?(혼자만의 생각이지만)
평가자들이 그런 소꿉장난 같은 것과 농사와는 비교가 안된다고
일언지하에 퇴짜 놓을지 몰라도 그래도 난 농부가 될 소질은
있다는 것을 알려 보기로 하고 작성해 보는 내 방식의 내 소개서.
3년전 4월에 작은 빌라를 처분하고 마당이 있다는 이유로 27년된 낡은 구옥으로 이사를 했었다.
마당은 지저분해진다고 깨끗이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나는 정과 망치로
일일이 다 깨부시고 산에서 흙을 손수레로 실어 날라서 모두 밭으로 만들었다.
새벽 눈뜨고부터 저녁 늦게까지...마당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황량하기 그지없던 회색빛 풍경을 도심속의 전원 풍경으로 바꾸어 나갔다.
포도는 심은 그해부터 번성하여 열매를 맺었고, 화분의 고추들은 여름내내
맛난 된장찌게를 끓이도록 해 주는 양념 역활을 했고,
때로는 소쿠리에 빨갛게 익은 것들은 말려서 고명으로 쓰기도 했었다.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만 하는 보일러 설비나 수도, 지붕 잇기등은 어쩔수없이 남의 손을 빌렸지만
문, 창문, 대문등등의 페인트 칠이나 담벼락 칠하기, 시멘트로 장독대 만들기 등등...
<처음부터 잘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내식의 배짱으로
모두 내 손으로 그림을 바꾸어 나갔었다.
아파트를 짓기위해 철거하는 동네를 넝마주이처럼 돌며 모아 들인
작고 큰 단지들도 내 노력과 내 열정의 산물들이다.
씨앗을 뿌리거나 남이 버린 화초들을 줏어와서 길러내거나 분양받아서 키운 화분들.
내 손에 오면 죽어가던 것들도 다시 되살아 나곤 했었다.
사계절마다 다르게 꽃이 필수 있도록 부지런을 떨었었다.
봄에는 상추, 부추, 고추, 깻잎등을 심었고, 여름내내 이웃과 작지만 나누기도 하였고
가을에는 배추를 심어 김장을 하였고, 한줌밖에 안되어도 들깨도 수확하여
아이들과 도리깨질 흉내도 내어 보았었다.
결과만 보고 쉽게 말하는 이들은 숨겨진 노동과 땀의 의미를 헤아리지 못하고 부러워는 하지만
막상 실제 하라고하면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 일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좁은 마당이지만 자연에대한 갈증이 심했던지라 포도나무 두그루, 감나무도 두그루,회화나무,
주목나무, 공작 단풍나무에 장미,라일락,능소화...빼곡하게 심었었다.
그 나무 한그루마다 뿌리를 내릴수 있도록 돌보아서 이젠 제법 자리를 잡았었는데...
이제는 나무들이 꽃을 피고 열매를 맺을 정도로 컸는데 황망히 제주도로 떠나오니
내손길 내 정성이 듬뿍 담겼던 꽃나무들이 애틋하게 그리워진다.
가뭄이 들면 시들까 걱정이고 영양이 부족하면 영양도 공급해줘야 하는데 혼자서 걱정한다.
마치 자식을 두고 떠나온 어미처럼...
나는 이렇게 회색빛 도시에서도 푸르게 살고자 했었다고...
자연과 일체가 되어 살기를 늘 추구 했었다고...
이것이 나의 살아온 한 부분이며, 농부가 되기에 기본 조건을 갖춘 이력서가 되지 않겠느냐고...
나도 농부가 될 필요충분 조건을 갖춘 사람 아니겠느냐고...
감히...서식 다 무시하고 나를 이렇게 알리는 이력서를 제출해 보고자 한다.
천편일률적인 문서위주의 우리나라에서 나의 이런식의 도전이 먹힐가 싶지만
그래도...나는...내식으로...도전해 볼려고 한다.
그들이 원하는 영농 후계자 조건에서 내가 제일 불리한 것 같아서...
통과할 수 있을까?...통과하고 싶다!
2005.2.14.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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