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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밭

귤나무와 대화하며...

by 농부김영란 2005. 1. 31.

 
 
 
아이들과 쉬엄쉬엄 걸어 가면 한시간은 족히 걸리는 농장에
강아지 두마리를 앞세우고 걸어갔다.
거름을 만들겠다고 요즘은 모으는 음식물 지꺼기를 핸드카에 싣고
보온병에 물 끓여 담고, 컵라면을 사가지고...
(나가서 먹는 컵라면을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여 특별식으로)
걸어서 가기에는 어른 걸음으로도 조금 먼듯한
택시를 타면 이천오백원정도 나오는 거리에 농장이 있다.
이곳 제주도에서는 필수품이라는 차를 아직도 사지 않고 잘 버티어 왔건만
농장을 사고 부터는 차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농장을 산것으로 융자금이 많아서 차를 구입 하기에는 벅차서
자전거를 사서 다닐까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은 걸어서도 가고, 가끔 택시를 이용 하기도 한다.
매일 걸어 다니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고, 먼저 자전거를 이용해 볼 생각이다.
 
아이들과 걸어 가는 것은 소풍을 가는 기분으로 간다.
강아지 두마리까지 앞세운 우리 행렬은 인적이라고는 드문
서귀포 중산간 도로에서는 눈에 띄는 장면이리라.^^
인구도 많지 않은 서귀포에서 운동이외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것 같다.
차없는 사람들은 우리 아파트에도 없고,아이들 반에서도 없다니 말이다.
차를 사는 값보다도 차를 유지하는 비용이 아깝다며
아직까지 차 없는 생활을 고수해 온 전근대적인 우리집.
알뜰이 아니라 궁상이라고 옆에서들 말하더라만
내가 줄일 수 있는 부분이라면 차 유지비 부분이라 생각하여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왔는데
이런 우리...이제 골동품 취급받지 않을가 싶다.^^
스스로 난, 애국자라 칭하며 위안하고 살지만...
 
길 가다가 민들레도 보고, 제비꽃도 보고,
봄인지 겨울인지 분간이 안가게 피어있는 꽃과 나물들을 들여다 보면서...
그렇게 걸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만끽하라고 아이들에게 늘 강조 하면서 걷는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덤불이 무성한 작은 개울을 지나며 쳐다보니
요즘 한창 피어나고 있는 수선화가 한 무더기 피어서 쓰러져 있는 것이 보인다.
긴 잎새와 꽃대가 바람에 못이겨서인지 쓰러져서 널부러져 있는데
가까이 가보니 꽃 향기가 진동을 했다.
쓰러져서 엉겨 있는 것이 안타까와 한가지 꺾어왔다.
꽃향기가 그 어떤 향수보다 진하고 향기롭다.
걸어가니 볼수 있었던거야,
아이들에게 이렇게 의미 부여를 하고...
 
작은 도로를 따라 들어서 가다가 냉이를 발견했다.
키워서 씨를 받아서 번식시키려고 몇뿌리 캐서 우리밭에다 옮겨 심었다.
무럭 무럭 자라서 많이 번식하기를...
그리고 집 주변에서 채취한 흰소국 한그루도 고이 옮겨 심었다.
건강하고도 아름다운 농장 만들기.
 
귤밭 주변이 너저분하고 산만하기 그지 없어서 그것부터 짬짬이 치우리라 생각 했는데
정작 더 중요한 것이 귤 나무 상태를 찬찬히 관찰해야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무 한그루 한그루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보 농군이 보아도 한눈에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나무가 많았고
벌레가 먹은 나뭇잎들도 꽤 되었기에 올해는 완전 유기농을 하겠다고 서두르기보다도
우선 나무들을 회복시키는데 주력해야 할것 같다.
전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소작을 몇년 주었다하니
나무들을 잘 거두기보다는 수확하는 것만을 비중 두었던 나무들이어서
기본이 튼실치 못한 나무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사람 기르기나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기르는 일은
사랑과 관심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나무 한그루 한그루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부족한 것, 모자란 것,아픈 것 등등
잘 관찰하여  제공해 제때에 필요한 처방을 해 주어야할것이다.
영양 실조 상태인 아이들은 영양을,
병충해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들은 우선 적당한 약을 처방하고
건강한 나무들로 만드는 것이 우선일 것 같다.
사람이나, 나무나 기본이 튼튼하면 웬만한 병쯤은 가볍게 물리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완전 유기농으로 가는 길.
결코 서둘러서도 안되며, 방심해서도 안되는 길일것이라 생각해 본다.
자연 퇴비로 지력을 서서이 회복 시켜가면서
스스로 병충해를 이겨 나갈 수 있는 튼튼한 나무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귤나무들아,내가 이제는 너희들의 엄마란다.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내 아이들처럼 너희들을 돌볼 것이니
건강하게 잘 자라 주기를 바란다."
라고 나무들에게 속삭였다.
 
요즘 나와 제법 감성이 잘 통하는 예슬이 옆에서 이렇게 말한다.
"엄마. 웬지 농장에 오면 엄숙한 기운이 도는 것 같아요.
맑은 영혼들이 속삭이는 것 같아요."
"그럼, 흙도 돌도 다 영혼이 있는것 같은데
살아있는 생명체인 나무야 당연히 영혼이 있고말고...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사랑이 가장 큰 영양소란다."
 
지금까지 길러 보았던 식물들에게서 느낀 것인데
기르는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거름보다 더 중요한 역활을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꼈었는데 요즘 발표되는 연구들에서보면
내 생각이 맞는것 같다.
예슬이는 책에 나온 "green music"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는데
식물에게 음악을 들려 준 것과 아닌 것의 성장이 큰 차이가 있다는
연구보고인데 우리 밭에도 스피커를 달아서(공원에서처럼)
음악을 들려주자고 한다.에고...^^
 
며칠전 사람향기 폴폴이라는 아침 방송에서 본
"시골농부, 서울농부"에서 서울농부라는 분은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시골농부가 어이없어하는 것을 보았는데
아마도 서울농부라는 분이 이 이론을 실제로 적용시켜 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우연히 그 방송을 보고 한편의 코믹 드라마를 보는듯 햇다.
서울에서 온 초보 농부의 기막히는(?) 농법을 전형적인 시골농부라는 분이 옆에서 지켜보며
한편 어이없어하는 장면들이 초보 농부가 된 나도 공감이 많이 갔다.
하지만 서울 농부라는 분의 새로운 시도들도 관심과 공감이 갔는데
궁금한 것은 그분은 자녀가 없는지 아니면 다 성장하여
생활에는 걱정이 없는지가 나는 현실적으로 매우 궁금했다.
현실적으로 먹고 살아야하는 명제가 최우선 과제인 사람들은
여유를 부리기가 쉽지가 않다고 생각한다.
나도 아직은 남편이 직장에 다니기에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는것 같다.
당장 남편이 실업의 상태라면 물 불을 가릴 처지가 아닐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런 극한 상황이 오기전에 미리 대비하고자 준비하는 것이긴 하지만
농부라는 직업이 만만하고 쉬운 길이 결코 아니라는 것은
현실의 농촌 경제가 말해주고 있다.
 
농촌에 밝은 미래가 도래 하기를 바라며...
 
 
나무들과 눈을 맞추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길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나무들의 표정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읽어낼 수 있을것만 같다. 
"나는 너희들의 열매만 강탈해 가는 약탈자는 되지 않을게.
먼저 너희들이 건강을 회복해서
밝고건강한 빛을 찾도록 도와줄게.
흙도 나무도 먼저 건강해지도록 도와줄게.
사람의 욕심으로 너희들을 괴롭히지 않도록 할게."
 
나, 아주 조금...농부로서의 한걸음을 내딛은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막막하던 느낌을 하나씩 정리해 가면서
한걸음씩, 한걸음씩 천천히  내딛어 보리라.
 
 
2005.1.31.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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