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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4막 3장을 준비하며

by 농부김영란 2007. 9. 6.

땀이 많고, 속이 허한 나는 여름이면 기진맥진하며 항상 그로기 직전까지 몸과 마음이 되곤 했는데

올 여름은 5식구 모두가 하루종일 방콕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더더욱 내겐 무아지경(?) 몽롱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부디 이 여름만 어서 빨리 가다오...그 이외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아이들이야 방학을 맞았으니 연례 행사이지만 , 남편은 왜?

드디어, 드디어, 정말로,아직도 실감이 잘 안나는,...

실업자 상태가 되어 동고동락을 하게 된 것이다.수년전서부터...난 이런 날이 오리란 예감에

몸살을 미리부터 앓기도 하고,앞질러 마음을 부대끼기도 하고, 수 많은 생각을 하며

만리장성을 쌓고 허물고를 반복 했건만...

그래서...이젠...다가오는 위기를 맞을 최소한의 각오가 되었노라며 호언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남편의 명퇴가 현실이 되자...감감...아무 생각이 떠 오르지를 않는 것이었다.

정말...무생각, 무중력, 띠~이 ~ㅇ...했다.

 

잘 돌아 왔소, 이제야 가족들이 제대로 자리를 함께 한다며

그동안 고생한 남편께 위로, 격려, 용기백배주를 나누어야 하건만

하루 세끼 꼬박 꼬박 차려야 하는 불편함에서부터

날씨도 더운데 다섯 식구가 좁은 공간에서 복작 거리며 토해내는 열기가

서서히 나를 짓누르기 시작해서 이번 여름에 아이들 공부를 제대로 한번 해 보겠다는 각오는

작심삼일도 못되어 산산히 부서진 허공속의 구호가 되어 버렸고,

덩치 큰 남편이 차지한 공간이 왜 그렇게 넓게만 느껴 지는지...

그렇다고 그새 내색하여 남편을 섭섭케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것만 같아서 안으로 삭힐려니

와이리 깝깝하누...그리고 세 끼 똑 같은 밥 먹자니 지겹다며 아무 생각없이

기분 전환 하자면서 오늘은 외식,내일은 외출...곶감 빼먹듯이 야금야금...

월급에서 공제할땐 실감치 못했던 세금 고지서들이 날아 오는 것 하며...

처음 한달은 6개월치 먹을 것은 있으니 그사이 생각해 보자며 생각없이 지출하던 것이

모두 집에서 몰아내고(아이들은 개학하고 남편은 세상 공부하시라고 등 떠밀어 내 보냈음)

9월이 되고 가을이 정말 왔네하는 실감을 하면서 제정신으로 결산해보니....아이쿠나...

이제야 남편의 실업이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수입이 끊긴 실업자에게 날아온 의료 보험료...말이 안되게 많구나.

부채는 공제하지 않고 보이는 자산만, 그것도 주거개념인 집하나에 부과한 세금이라니...

(1가구 2주택도 아니고 순수 주거용도인...집에서 소득이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

 

정말 웃기는 세금 체계이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여름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

찬 바람이 불어오니 쬐끔 정신이 차려져서 둘러보니...

서울시가 세째 아이를 낳으면 5세까지 매월 10만원을 지급 한다나....코 웃음을 쳤다.

아이를 길러보지 못한 분의 졸속행정? 아니면 생계에 걱정이 없으신 분들께서

머리로만 계산한 정책임에 틀림없다.5세까지 키우면 그 후에는 그냥 크는가?

실제...우리나라에서 육아에 가장 큰 어려움은 막대한 교육비 걱정해서 아닌가?

사교육은 개인 가치관에서 오는 것이니 공교육이라도 대학까지 세째 아이는 학비를

면제한다든가 그러면 또 모르겠다.그리고...이미 아이를 낳은 나같은 사람은

도로 뱃속으로 집어 넣을수도 없고,남편은 사오정이라하여 명퇴 시키고,아무 혜택도 없으면서

젊은이들에겐 당근을 주면서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하는데...

5세 이후엔 아이를 어떻게 키우라는 것인지?

그 젊은이들이 이미 세아이 낳아서 명퇴까지 당하고 허덕이는 우리같은 선배들을 보고

눈앞의 당근이 큰것같이 보여 쑴벙쑴벙 아이를 낳아 주리라 기대하는 정책이었는지?

너무들 웃기신다.용기를 내어 살 길을 찾으면 없으랴마는 우선은 마음이 무거워지니

사오정이라하며 명퇴를 시키는 이 사회도 미워지고, 정치하는 사람들도 괜시리 성토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누굴 탓하랴, 나만 당하는 것도 아닌 사회현상을...

 

뜨겁고 무거운 여름은 밀어내고,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나도 생각을 정리 하려고 해본다.

내 인생 4막 3장을 준비하기 위하여...

마디마디...편하게 걸어 온길은 아니었지만 지금 내 앞에 놓여진 이 길을 어찌 걸어 가야 할까가

깊은 고민을 하게한다.가장 크고 무거운 짐이 세 아이들이다.

큰 아이가 내년엔 고등학교에 간다.막내는 아직 초등 4학년이다. 내 나이 마흔 일곱이다.

기댈곳 없다, 가진 것도 별로 없다...빈 손으로 시작하여 집한채 장만 했던것.(그것도 부채를 안고)

이것이 나의 현주소인데...그냥 막연하고 깝갑하기만 하다...

 

그런데...뒤집어 생각해 보니...또 내 일생에 내가 지금 가장 많이 가진 시기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빈손이었고, 지금은 아이가 셋이나 된다.반드시 잘 살아 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고차이지만 자동차도 있고 김치 냉장고도 있고(합이 300만원이긴 하지만^^)

책상은 4개나 되고,피아노도 있고, 연습용이지만 바이올린도, 플룻도 있네.

강아지 한마리 잃었지만 남은 한마리도 있고,(사실 아이들과 강아지는 자산이라기보다 소비주체이긴하지만)부채가 자산의 1/3이긴 하지만 작은 귤밭도 있다.

귤밭에서는 남편이 회사를 다닌다면 내 부업 정도의 수입이었지만

귤밭 수입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생활비의 고민을 어찌 할것인지를 고민해야만 하지만

그래도...난 지금...내 일생에 내가 가장 부자인 상태가 틀림 없다.

물론...이제부터...고정 수입을 만들지 못하면 이제는 자산이 점점 줄어들수밖에 없을것 같아서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심지어 서서히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엇을 하느라 송두리째 들어먹고 길거리에 나 앉을수도 있는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더구나...아이들...이제부터 본게임에 들어서기에 내 고민이 깊을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게 가장 큰 자산...나를 믿어주고, 나를 격려해주고, 나에게 응원을 보내는

따뜻한 지기들이 포진(^^)하고 있다.내 옆의 모두가 내가 당당히 우뚝 서주기를 고대하고 있고

또 내가 그렇게 해낼것이라고 과분한 기대까지도 서슴치 않고 있다.

멋지게 잘 살아 내지는 못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 왔다고 생각 하기에

나와 함께 마음을 나누며 가는 내 지인들이 모두 내게 응원을 보내 주는 것을 느끼기에

결코 주저 앉을수는 없다, 아니...이제부터야말로...멋지게...홀로서기를 보여 주어야 할때이다.

 

젊은 날 추구하던  비상이나,반짝임이나,영민함이나,정상...이런 것들보다도

이제는 소박함,분수에 맞게 추구하는 것,작은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기,배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함을 깨닫는다.

그래서...건강한 삶을 추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땀 흘려 열심히 살아내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재물밖에 없음이

늘 내가 깨어 있어야 할 동기가 되기에 때로 버겁고 주저앉고 싶더라도 

쉼없는 행진을 하며 살아있음을 확인케 해줄것이라

역설적으로 생각하며 내게 힘을 만들어 내려고 생각하고 있다. 

내 인생 4막 3장...아이들도, 나도 이제부터 본게임에 들어서게 된다.

정말 중요한 시기인만큼...깊은 고민을 한 후...새 출발, 새 해를 맞을 것이라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10년 후... 숱한 파도를 건너와서...

여전히 나는 건강한 블로그를 쓰는 사람이고 싶다.

내 삶의 흔적을 함께 나누며 함께 걸어간 내 인연들과

사이 사이...우리 살아 있음을 축복하며,삶의 애환을 나누며, 어깨동무하며

내 삶의 축제에 귀한 내 인연들을 초대하고 싶다.

 

2007.9.6, 英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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